당당한 가난뱅이의 직접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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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가난뱅이의 직접행동
  • 박병상
  • 승인 2013.01.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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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난뱅이의 역습>,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규원 옮김, 최규석 삽화, 이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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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였나.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던 이는 자신이 매우 가난했다고 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대학을 마쳤다고 토로했다. 수석으로 졸업한 덕분에 대기업에서 특채되어 언론에 주목을 받은 그는 당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다만 불편할 따름이라고. 편의를 도모해줄 제품을 구할 수 없으니 그 시절에는 더러 불편했을 텐데, 요즘 불편이라는 말은 가난한 계층도 그리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여유가 생긴 걸까. 그럴지 모른다.

한 경제학자는 일인당 소득이 1만 달러 될 때까지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천박한 수준의 행복은 비례하지만 1만 달러가 넘으면 소득만 증가할 뿐 행복은 정체된다고 주장한다. 4만 달러가 넘으면 행복은 오히려 퇴보한다는데, 필요가 아니라 질투나 시기가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과시를 위한 소비는 남이 더 값나가는 물건을 소유했을 때 질투로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나 에어컨 소유한다는 건 이제 자랑이 아니다. 가스레인지나 컬러텔레비전이 없는 집은 거의 없다. 일부러 들어놓지 않았다면 모를까.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일인당 평균 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일본에서 부자들이 반드시 행복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가난한 이가 부자보다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일본이나 우리나 부자는 가난뱅이를 부러워하지 않겠지만 가난한 이는 부자를 부러워할 수 있다. 또는 부자들의 소비행각을 미워할 수 있다. 특별한 원한 관계도 없지만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백주대낮에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한다. 가난한 자의 불행이 그리 만들었을 텐데, 가난한 이의 불행은 기회의 불균형이나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독특한 제목,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마쓰모토 하지메는 부자 집안의 태생은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고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란 괴짜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그는 우리의 성공회대학교처럼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교토의 호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른 학교보다 생활하기 편하고 부담이 적었는데, 자본이 끼어들면서 분위기가 바뀌려하자 저항했다.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학교에서 사회로 넓혔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기상천외해 주목을 받았다. 괴짜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단지 돈이 없기 때문에 당하는 부당함에 있고, 그래서 자신의 창발적인 직접행동에 돌입했다. 그 기록이 《가난뱅이의 역습》이다.

거품이 꺼지자 먼저 지방정부는 교육예산부터 긴축했고, 교육당국은 기업을 끌어들였다. 교내에 음료수 자판기가 들어온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러자 아이들에 비만이 늘었다. 특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고칼로리의 음료를 많이 마셨고, 영양분은 적고 칼로리만 높은 음료 때문에 몸이 비대해지면서 공부에 열의도 생기지 않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 사회문제가 되었던 사례는 아직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대학에 상업문화는 침투한 지 오래다. 연구비로 교수 길들이기, 건물을 지어주며 재단 길들이기, 고급 커피점으로 학생 길들이기는 이미 흔하다.

오른 등록금을 내면 하숙비가 모자란다며 교내에 버젓이 노숙을 하는 학생이 있는 성공회대학교는 학생이나 교수들이, 그러려니 한다. 다른 대학교는 어떨까. 일본의 호세대학교의 분위기를 알 수 없지만, 그 대학교는 점차 속물화되는 모양이다. 자본이 들어와 식당이나 기숙사를 지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 마쓰모토 하지메는 순응하지 않았다. ‘호세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결성하고 식당에 난입해 난장판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았다. 냄새 고약한 생선을 구우며 찌개 곁들인 술판을 교정에 벌였다. 그뿐인가. 자본의 교내 진입을 논의하는 총장실로 난입해 페인트를 뿌리고 소화기를 난사했다. 그리고 장렬히 체포되었다.

대학 경험은 바로 사회에 적용했다. 대기업 제품으로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고급 상점이 즐비한 거리에서 찌개를 끓이며 지나가는 이들과 술 마시는 직접행동으로 저항했다. 일본 교토의 대표적 번화가인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전단을 뿌리면 경찰은 아연 긴장하다. 소스라치게 놀란 경찰이 집결하니 한가롭게 찌개를 끓이는 식의 직접행동이다. 선거에 후보로 등록하면 대놓고 난장을 벌일 수 있다는 걸 착안하고 괴짜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기도 했다. 트럭에 음향시설을 실고 괴성을 지르며 가난뱅이 찬가를 마음껏 부를 수 있었다.

구속되었을 때, 고급호텔에서 최고급 음식 공짜로 먹는 비법을 전수받기도 한 마쓰모토 하지메는 이유 없이 저항한 건 결코 아니었고, 엄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저항만이 아니다. 그는 돈 없이 여행하고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을 독자에게 선뜻 알려준다. 가난한 이들도 여행도 즐기고 중요한 회의에 나설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가난뱅이의 역습》은 일종의 괴짜의 직접행동 가이드북과 비슷하다. 노숙도 좋고, 하숙비 떼어 먹는 방식도 괜찮다. 하지만 몸도 몸이지만 얼굴 피부가 두툼해야 쉬울 듯하다.

가난한 이를 위해 부자들이 버린 전자제품이나 일용품을 수리해 헐값에 파는 고물상을 도쿄 변두리에서 운영하는 마쓰모토 하지메는 어처구니없게 이명박 정권에서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았다. 두려워서 그랬을까, 속 좁아 그랬을까. 강연에 초청돼 입국하려던 그를 강제출국 시키는 야만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어느새 40세에 가까워진 마쓰모토 하지메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도 괴짜고, 세계에도 그런 괴짜는 드물 텐데, 우리는 그가 쓴 《가난뱅이의 역습》을 박장대소하며 읽으면서 많은 걸 느낀다. 가진 자의 탐욕이 만든 부정의와 편견에 저항하는 마음에 절로 동의하게 된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돈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뜻을 같이하고 함께 행동하려는 친구와 동료가 많다는 거다. 가난을 면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 일인당 4만 달러는 분명히 아닐 터. 경제학자가 동의했지만, 1만 달러면 가난할 리 없다. 삶이 불편하지 않다. 진정 가난한 이는 마음 나눌 친구가 없는 자 아닐까. 비싼 등록금과 선행학습으로 쌓은 학력이나 스펙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교양이 친구를 진정성 있게 끌어들인다. 교양은 책 뿐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고, 그런 교양은 부자들의 전유일 수 없다. 직접행동이 요란하더라도 이유가 분명하고 진정성이 있다면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이 모인다.

마음 통하는 친구가 많은 마쓰모토 하지메는 자신을 가난뱅이라고 했지만, 부자들의 탐욕에 저항하는 투사라 해야 옳을지 모른다. 일인당 평균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이 땅에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에게 《가난뱅이의 역습》을 권하고 싶다. 직접행동으로 가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으므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직접행동은 다양하다. 거리에서 찌개를 끓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친구와 보람과 긍지로 인생을 펼칠 길을 흔쾌히 안내해 줄 것이다.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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