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주', 인천사람 손에 닿아야 맛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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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주', 인천사람 손에 닿아야 맛이 산다.
  • 이장열 기자
  • 승인 2013.01.27 20: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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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탁주 70년 맥 잇는 정규성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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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목) 오전 11시 부평구 청천동 인천탁주합동제조제1공장(이하 '인천탁주')을 찾았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막걸리 냄새가 은은하다.
 
사장실로 들어가는 사무실에는 오래된 태극기와 오래된 장부와 오래된 시계와 오래된 백묵으로 사용하는 칠판이 눈에 들어 왔고, 그 곳에서 오래근무한 사람들도 눈에 들어 왔다.
 
"소성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래 오래 근무해요.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고 머리가 히끗한 57년생 정규성 인천탁주합동제조제1공장 대표가 말했다.
 
소성주 쌀 막걸리를 맛을 이어준 공장장이 작년에 69세로 그만두고, 그 전에 후계자로 지목한 직원이 그 자리를 맡아 맛을 이어가고 있다.작년에 일선에 서 물러난 공장장은 처음 청천동 공장 시절부터 있었던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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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등도 몇 개만 켜져 있다. 사장실로 들어가는 문짝도 낡았다. 사장실도 마찬가지다. 낡은 책상과 오래된 손님맞이용 쇼파도 단촐하게 작다.손님들이 와서 앉으면, 손님도 곧장 벗이 될 거리에 낡은 소파도 그렇게 몇 십년을 지키고 있다.
 
정규성 대표는 작업복을 입고 있다. 작업복 왼쪽 표찰에는 이름 대신 '소정주'가 붙였다. 원래 인천탁주 근무복이 있지만, 정 대표는 이게편해서 입고 다닌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정규성 인천탁주 대표는 인천 중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한번도 인천을 떠나보지 않았다. 자기 말대로 '인천 토박이'이다. 정 대표는 충청도당진 출신 할아버지가 1938년에 인천 중구에 만든 대화주조(주)을 정 대표의 부친(정정훈)으로부터 자연스럽게 1988년도에 이어받았다. 그 후인천의 11개 탁주 회사가 연합해서 만든 인천탁주합동제조 회사의 대표를 1997년부터 맡았다. 현재까지 인천탁주 쌀먹거리 소성주의 맛과 경영을책임지고 대표로 있다.
 
 
정규성 대표는 쌀막걸리 소성주의 품질(맛) 개선으로 막걸리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점에서 그 나름의 경영이 뭔가를 기자가 물었다. 미리예상한 것과 달랐다. 정 사장은 '품질'이 제일 우선이고, 그 다음은 '믿음'이라는 정의했고,굳이 경영철학이라고 붙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랜 위기와 좌절을 통해, 얻어낸 경험으로부터 정 사장도 막걸리 만드는 일도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고객과 늘 긴장감있게 만날 수 있다는 판단한 것이다. 막걸리는 음식을 만드는 제조업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입맛을 읽고, 그것에 맞게 연동해 가는 시간의 제조업이라는판단을 한 것이다. 옛날 입맛이 지금 사람들과 맞다고 단정하는 순간 ‘시간의 제조업’에는 찾아 온다는강조한다. 시대와 함께 사람의 입맛도 변해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런 자세로 대응하지 않으면 쇠퇴하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것, 현재 소성주로버티는 힘이 아닐까 싶다.
 
정 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술꾼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해줬다. 소성주 병뚜껑이 완전 밀폐가 아니라 바깥의 공기가 들어올 수 해놓은 빈틈을놓아 둔 것이 소성주가 제 맛을 내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귀가 솔깃했다. 술꾼이 아님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소성주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폐허, 그리고 근대화로 이어지는 인천의 지역 근대사의 부침과 오롯이 호흡하면서 걸어 온 인천에서유일한 향토기업이 만드는 막걸리다. 내려 갔다고 올라갔다가, 그리고 또 되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인천 서민들의 애환과시름을 한식경이라도 털어주는 그 손길에 소성주가 있었고, 호흡했다.
 
1974년도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건물에 들어 있는 소성주 제조공장문이 잠시 열리면서 흰 작업복을 입은 한 사내가 나와, 사장을 보고 빙글레해맑게 웃었다. 사장도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이 유난히도 밟힌다. 오래 오래 지속되길.
 
 
다음은 정규성사장과 낡은 쇼파에서 짧지만 긴 대화를 나눈 일문일답이다.
 
 
소성주가 인천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가장 두렵다.
ㄱ. 기장 힘들었던 때는?
소성주가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시골에서도 막거리 대신 맥주를 마셨던 2000년대후반까지는 막걸리는 죽을 쒔고, IMF 시절에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함을 안고 살았다.
 
흔히 사람들에게있으나 마나 한 술로 막걸리 이름 조차 생소해져 갔다. 이것이 막걸리 제조업 사장으로 가장 힘들었고, 이것을 돌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2008년까지 막걸리시장은 위기였다. 여전히 입맛에 맥주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서서히 막걸리를 다시 찾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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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로 빚게 되면서 막걸리가 대중의 입맛으로 다가갈 수 있어
ㄴ. 막걸리가 서서히 살아나기시작한 이유가
아마도 쌀로막걸리를 빚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 찾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 전까지 밀가루로 막걸리를빚다보니 맛이 사람들의 입에 오래 남지 않았다. 그것이 막걸리가 대중들의 입맛에서 사라져 간 가장 큰 이유였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쌀로 막걸리를 만들어지면서, 막걸리가 기존의 주류 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2006년 12월 쌀소성주를 출시한 게 계기가됐다.
 
 
잠깐 쌀 막걸리 역사를 말하자면, 1988년 올림픽에 맞춰 쌀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있었지만, 공급문제와 회사 내부 문제로 결국 쌀 막걸리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정부가 외국산 쌀 개방에 맞춰 쌀 막걸리를 만들게 했는데, 그 때사용한 쌀이 동남아에서 수입해 온 ‘안남미’였는데, 오래 기간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 쌀 막걸리를 만드는 필요한 경험과기술이 모자라 제대로 된 맛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쌀로 만들었지만, 제대로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밀가루 막걸리에 입맛이 길들여진 고객들이 쌀 막걸리 맛으로 돌아서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막걸리 제조업은 기호상품이자 시간상품이기에 그만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으로 힘든 점이 많은 데다.
 
한번 입사한 직원들은 정년까지 나갈 일이 없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새벽부터 나온다. 오후 1시까지 소성주 반제품을 출하하기까지 공장 이곳 저곳을 챙긴다. 이게 사장으로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다. 오후에 소성주를 만들기 전에 준비하는 것들을 준비한다. 오후 6시 퇴근한다. 소성주가 출하되는 시점에 들어가는 물량은 맞는지 다른 요구사항이 없는지 체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성주의 입맛을 책임지는 품질 부분은 품질을 책임지는 부서에 전적으로 맡긴다. 오랜 경험이 들어가서 만들어지는 만큼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랜 근무가 필수조건이다. 작년에 공장장이 67세 나이로 은퇴하고, 그 자리에 공장장이 지목한 후계자가 맡아서 소성주 품질에 정성을 쏟고 있다.
 
 
ㄹ. 소성주 열성팬도 있는가
있다고 들었다. 늘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그런 애정이 소성주가 버티는 또 다른 힘이다.
 
소성주는 지역 원로의 조언으로 명명
. 소성주라는 이름 누가 짓었나
 
제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한 이름인데, 소성이란 신라 경덕왕 때 붙어진 인천의 옛 지명인데, 지역의 원로분들에 자문을 구해 만든 브랜드명었다. 소성주라는 이름으로 막걸리가 나올 때 상표에 유래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사용한 지 30년이 지나서 이제는 설명을 하지 않고, 품질에 관계되는 설명을 덧붙인다.
 
ㅂ. 탁주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 제일 우선이다. 그 다음 믿음이다. 이것을 제 경영철학이라고말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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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청전동 시대는 어떻게 열였나.
청천동에 자리잡은 것은 1974년도 5월 24일이다. 청전동은 제1공장으로 현재'스페이스 빔'이 있는 중구 배다리 인천양조는 제2공장으로 있었다.
 
 
인천양조가막걸리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하수가 예전 같지 않아 1996년도에 가동을 중단하면서 제1공장이 유일하게 남아서 전통을 잇고 있다. 11개 탁주회사가 만든 회사는부평에도 있었고, 남구 주안동, 중구에 골고루 있었다. 현재 청천동 1공장만이 유일하게 가동하면서 옛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소성주의맛은 정성에서 결정된다.
ㅇ. 인천탁주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몇 명인가
현재 30여명 정도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줄어들곤 하는데, 보통 이 정도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우리 회사는 이직하는사람이 거의 없다. 이게 큰 자산이다. 사장의 역할은 이 사람들이 일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골몰하면, 이 사람들이 품질을 좌우하는 정성을 들여서 소성주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제맛을 내는 반제품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소성주는 정성이 깃들어졌다고 저는 생각한다. 음식점은 맛을 결정하는 것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주인장의손맛과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정성을 쏟아내기에 소정주가인천사람들에게 사랑을 다시 받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늘 고맙고, 직원들도저를 고마워하고, 서로 고마워한다.
 
 
막걸리는기호식품이다
ㅈ. 막걸리는 무엇인가.
막걸리는 기호식품이다 소비자가 선택으로 죽고 사는 것이 기호식품이다. 입맛이 빨리 변화되지는않지만, 한번 변화하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 사람 입맛이다. 한번선택되면 쭉 가는 것 기호식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소비자의 입맛은 늘 변화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을 대응하는 회사들도 변화되기에 늘 그 자리라고느껴질 뿐이다. 고객의 입맛에 변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경영전략에넣어 두어야 최소한 기호 제조업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바로 퇴출되는 시장이 기호 식품 시장이다. 그래서 탁주회사 사장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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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막걸리 만들 때 , 한잔 마시며 일했다.
ㅊ. 소성주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나.
저는 기록을 남겼다고 생각했으나, 많이 구체적으로 기록을 하지 못했다. 뒤를 돌아볼 새가 없었다. 과정 과정이 위기에 봉착해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는지 기록이 없다. 저도 30-40대는 앞만 보고 걸어와서 볼 여유가 없었다. 제가 5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한번 소성주의 역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하고 있다.
 
사실, 옛날에 술찌꺼기도 먹을 것이 없어서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40년 전에는 인천에 3층이 이상 올라간 건물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많이 변화된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옛날에는 돈이 있는 사람들을 눈치를 봤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돈 없으면 무시하고. 그런데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돈 많고 적고 간에, 무시하고 눈치 보지 않는다.
청천동 인천 탁주 공장에 기계들이 들어 오기 전에는 막걸리를 만들는 과정이 막노동이었다. 힘든과정이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술도 한잔 하고 그랬다. 알면서도 눈감아 줬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계화되고 안전사고가날 가능성이 그렇게 못한다. 이게 소성주의 역사인데.
 
기계화하면서, 술 맛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장비와 배관등은 스턴레스 재질로 한 것도 소성주 약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
 
청천동 공장은 지금까지 한번도 쉰 적이 없다. 그것은 막걸리 제조공정이 반제품으로 나오기까지 10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한순간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에도 1-2명이 나와서 탁주 발효과정과 숙성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시간 제조업이기에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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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주는반제품, 사람들 손에 들어갈 때까지 맛이 다르다
ㅎ. 막걸리가 왜 반제품인가
이게 소성주 막걸리만의 특징이다. 출하되는 모든 소성주는 반제품이다. 탁주에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방부제 첨가되면 발효가 정지되기때문에 소성주의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소성주는 서서히 발효되는 살아 있는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인천사람들이 냉장고든 골목 점포에서 소성주를 꺼내 들고 흔들 때 소정주는 완제품이 되고, 그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소성주 병뚜껑도 반제품이라는 특성으로, 바깥이 새도록 만들어 놓았다.소성주를 비스듬이 두면 소성주가 약간 샌다. 바깥에 호흡해야 소성주 막걸리는 살기 때문이다.
 
소성주가 출하된 것 바로 마시는 맛과 이틀 지나서 맛은 다르다. 술꾼들은 출하한 지 5일 정도 지난 소성주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바로 나온 소성주가입맛에 맞다는 많이들 이야기한다. 소성주는 시간에 따라 선택해서 마시는 재미도 있는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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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식 2019-06-06 20:52:30
5덕에 빛나는 막걸리!
대한민국 최고의 막걸리, 소성주!
소성주와 친구를 맺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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