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난 ‘개천’,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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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난 ‘개천’, 그 후의 이야기
  • 김영수
  • 승인 2013.01.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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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김영수 / 인천YMCA 갈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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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겪어 감에 따라 단순하지 않은 삶의 속성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릴 적 들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조금은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 백설공주는 왕자와 만나 ‘그 후’로도 행복했을까? 백설공주의 미모에만 혹한 왕자는 또 다른 미모에 혹해서 백설공주의 속을 시커멓게 만들 지 않았을까? 신데렐라는 신분의 차이, 경험이 만들어 준 성격의 차이를 잘 극복하고 왕자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졸지에 부자가 된 흥부의 자식들은 재산분배 문제를 잘 해결했을까? 홍길동이 만든 나라는 갈등 없이 행복한 나라가 되었을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지만 가난하고 불행했던 사람들에게 찾아 온 느닷없는 행운에 기뻐했던 기억들은, 기적 같은 행운이 아니고서는 벗어나지 못할 답답한 현실 앞에서 빛을 잃어간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속담 역시 같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개천’이 아니라 ‘용’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여 마침내 거대한 몸을 일으켜 하늘로 올라간 용의 성공 이야기가 핵심이다. 용이 되어 이 보잘 것 없는 개천을 떠난 이야기를 통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으라는 것이 이 속담이 전하고자 하는 뜻 일게다. 하지만 용은 떠났다. 개천은 용이 살 수 없는 곳, 용은 하늘로 떠났다. 다만 개천은 어쩌다 용이 태어났던 곳으로 기억될 뿐, 오늘도 간신히 물줄기를 이을 뿐이다.
가난과 전쟁의 상처 만 남은, 간신히 물줄기만 유지할 뿐이던 우리 사회에서도 용이 났다. 그것도 꽤 많이 났다. 곳곳에서 용이 된 이들의 이야기와 그와 더불어 성공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남았다. 밤을 밝힌 노력, 꺾이지 않은 의지, 힘겨웠던 삶의 여정 등은 성공신화가 되어 천변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들도 떠났다. 범접하지 못할 기세를 뿜으며 용들만이 거하는 성을 만들어 이곳을 떠났다. 떠났더라도 가끔은 이곳의 어려움을 기억하여 구름을 모아 적당한 비를 내려 개천을 풍성하게 해주길 은근히 기대도 하였는데, 비는 커녕 여기저기 물줄기를 끌어 모아 용들이 사는 성을 지키는 해자의 물을 채우고 있다하니 좋았던 기억은 잠시뿐, 같은 곳에 태어나 용이 되지 못한 친인척들을 원망할 따름이다.
개천은 용을 나았지만, 용은 떠난다. 성공은 개천을 떠나는 것이다. 더 큰 물,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속담의 뜻을 새겼다. 하여 떠나기 위해 애를 썼다. 떠나 좋은 곳으로 옮김을 기뻐하는 집들이는 큰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용이 떠난 개천은 생각한다. 용이 태어난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용이 되고나선 그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속한 이들이 아닌데... 떠날 용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우리의 물줄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나무를 심고, 물을 맑게 하여 좀 부족한 긋 하지만 이곳을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어찌하여 권세를 쥐는 이들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 불렀다. 한데 그 용들이 하는 일들을 보니 한심하다. 아니 한심을 넘어 자신을 길러준 공동체에 해악이 되고 있다. 하여 개천을 생각한다. 물줄기를 따라 살고 물줄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작은 생명들을 귀히 여기고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떠나기 보단 더불어 살고 흐르는 이웃을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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