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강박에 싸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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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강박에 싸인 아이들
  • 이정숙
  • 승인 2013.03.19 18: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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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 미래찾기②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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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강박에 싸인 아이들
 
이정숙(인천교육연구소, 인천하정초등학교 교사)
 
김교사는 초등학교에서 도덕과 몇몇 과목을 전담하고 있다. 6학년 도덕 첫 단원으로 ‘자긍심’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 단원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으로, 자긍심의 의미를 찾아보게 한 후, 교과서에 ‘자신의 현재 모습’을 생각해 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두 개의 그림이 제시되었는데,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해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아이 그림A와, “나는 재치가 있고 친구들과 항상 잘 자내는 점이 참 마음에 들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 아이 그림B 가 제시되어 있었다.
 
김교사는 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디에 가깝냐고 질문하였다. 아이들은 교사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나마 조금 용기 있는 아이가 ‘중간인데요’ 라고 겨우 말했다. 제시된 두 그림이 극단적이라서 아이들이 선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김교사는 두 상황의 그림을 다시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때, “내가 내 스스로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이 없거나 내가 생각해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면 A, 그래도 나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면 B” 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다시 안내를 해 주었다. “중간정도인 것 같아도 약간 A 같거나, 약간 B 같은 쪽으로 기울어지면 A나 B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선택은 순전히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고 다시 부연설명을 하였다.
 
마침내 아이들의 선택이 결정되었다. 그림에 대한 반응이 반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1반은 주로 A 그림에 손을 들었다. 손을 먼저 든 몇몇 아이들을 주로 따라갔다. 2반은 주로 B그림에 손을 들거나 안 들거나 중간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반응 역시 몇몇의 아이들이 주도한 반응에 따라 반응하였다. 3반은 대부분 손을 들지 않아 교사가 개입하여 중간이라도 약간이라도 A쪽이라고 생각이 들거나 B쪽이라고 생각하면 A 나 B를 택하도록 다시 설명을 하였다. 3반 역시 B 쪽이 많았다.
 
김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생각해 보는 활동에 당황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음 활동에 자긍심을 갖는 사람의 특성과 행동 등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모습을 예를 들어 안내해 준 후, 아이들에게 자신의 단점과 장점에 대하여 쓰고, 고칠 점을 정리하는 교과서 활동으로 넘어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장점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김교사는 보다 못해 자신이 알고 있는 아이마다의 장점을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망설이고 쓰지 못했다. 아마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던 듯 싶었다. 김교사는 다시 “그렇게나 많은 장점 중에 쓸 게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막연히 연필을 굴린 채 자신은 아무 것도 장점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단점은 있냐고 하니까 얼른 단점부터 먼저 쓰기 시작했다. 김교사는 자신이 고쳐야 할 점이 많은 것에 비해 장점은 생각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 모습이 의아스러웠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한번도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몇몇의 아이들은 장점에 운동이나 국어, 혹은 미술이라고 써 놓고도 무척 부끄러워했다. 교사가 좋은 성격이나 잘하는 점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도 ‘국어’나 ‘수학’ 같은 교과목명을 쓰거나 막연히 운동이라고 쓰는 게 전부였다. 김 교사가 알기에 상당히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역시, 자신이 특별히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없다’로 답하거나 막연히 ‘운동’으로 일관했다. 잘한다는 것 역시 공부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또 다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주어도, 인사를 잘한다거나 호기심이 많다거나, 식물을 잘 기른다거나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거나 ‘장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요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장점과 단점에서 각각 좀 더 노력할 점을 쓰는 난이 있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장점을 더 높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을 노력하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지 예를 들어 설명한 후라, 자신의 노력을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것 역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공부나 운동, 혹은 국어나 수학이라고 과목명을 장점이라고 써 놓고는 노력할 점으로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문으로 일관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 제시된 다음 항목인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고 말해 준 것’을 적어 보는 활동에서도 역시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김교사는 지난 해에 목소리가 예쁘고 노래를 잘해서 명가수란 별명까지 지어주었던 아이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쓴 것을 보고 그 내용을 상기 시켰다. 분명히 칭찬을 듣고 부러움을 사는 아이인데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니, 칭찬이 그 아이의 장점으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장점’이라는 것은 학교가 정해 놓은 범주에 국한시켜야 하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것과 장점을 동일시 하는 듯했다. 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자신은 더 노력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아이들의 반응한 내용을 보면서 김교사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공부에 집착하고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성격인지 무엇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 본 경험이 없거나,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길 꺼려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교사가 충분히 아이들의 생각을 끄집어 내지 못한 미숙한 교수학습의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거나 이러한 제재를 다루는 것이 아이들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단순반응 내지는 반항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교수학습 상황에서 아이들 대부분의 인상적 모습을 포착 해 본 것이라고 할 때, 아이들이 보인 반응은 의외의 것이었다. 아이들은 늘 누군가로부터 생각을 강요당하고, 이미 만들어진 틀로 재단되어 자신 스스로의 생각은 늘 차단당해 온 듯한 느낌이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재단 당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자신에 대한 자기의 생각은 자신이 없고 두려운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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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학부모 2013-04-10 15:21:06
1학년 학부모인 저도 가끔 아이에게 잘하는 것을 물어보면 뒤로 꽁무니를 빼다가도 씨익 웃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인 '발레'를 말하지만 그 뒤에 혼자말로 작은 소리로 나는 영어도 못하고, 글씨도 못쓰고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공부를 잘하라고 말한 기억도 없는 것 같은데 고작 1학년인데도 사회적 분위기의 공부에 대한 강박이 심어져있나 봅니다. 학교에서 천천히 교육과정을 밟아서 착실히 따라가는 아이도 다른 아이들의 뭐든 갖춰진 모습에 슬며서 주눅이 드는가 봅니다...학교 교육을 신뢰하고 따라가고 싶은 학부모 입장에서는 참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오늘이 행복한 미래가 되지 않을까요? 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오늘을 살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글을 읽고 나니 가슴에 물음표가 남네요...

이신발예바 2013-04-10 11:30:01
부모나 교사 그 밖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재는 척도가 상당부분 공부에 있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느끼고 생각하는 자긍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너무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의 척도가 분명 금전은 아닐터인데... 사회 요소요소에서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진 가장 큰 숙제일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할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난제들이 들끓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일텐데... 뭐가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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