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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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다
  • 이수석
  • 승인 2013.03.26 21: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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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 미래찾기③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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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지독한 사랑에 빠져있다
 
이수석(인천교육연구소, 석남중학교)
 
내가 학교 가기가 싫었어
 
오늘 아침은 정말 학교 가기가 싫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이런 날은 그냥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휘적휘적 걸으면서 공기와 햇볕과 바람과 그리고……, 말 붙이고 싶은 그 모든 대상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너희들도 학교 오기 싫을 때가 있지? 나에겐 오늘이 그런 날이야. ……너희들이 더 자유로울까, 내가 더 자유로울까? …선생님은 결혼을 했고, 대학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있어. 그리고 아내는 맞벌이를 하지.
 
오늘 내가 학교 오기 싫어서 안 나왔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좋아하겠지.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내 수업을 못 들어서 실망할 거야. 내 수업은 정말 재밌거든. 하지만 내가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다면,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믿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딸과 아들은, 내가 자기들의 아빠인 것이 창피할거야.
 
시간 약속을 안 지키고 직장생활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내 처는 내가 자신의 남편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정말 오기 싫은 학교를 올 수 밖에 없었어. 나는 내 한 몸만이 아닌,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되어 있던 거였어.
 
너희들도 학교 오기 싫을 때가 많지? 숙제를 안했거나, 자율학습을 도망쳤기 때문에, 또는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중학생으로 하지 말아야 화장을 했기 때문에, 머리에 염색을 하거나 너무 길기 때문에, 또는 학교의 복장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이유 때문에 학교에 오기 싫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너희들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뭔지 아니? 그건 너희들이 나보다 훨씬 자유롭고 삶의 기회가 많기 때문이야. 난 학교에 올 수도 있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었어. 그리고 너희들도 학교에 올 수도 있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 하지만 너희들과 나는 지금 학교에 나와 있어.
 
너희들은 그저 담임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야단맞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난 살펴보고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부모로서 교사로서 인생 선배로서……. 너희와 비교해서 난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어. 그래서 책임지는 일도 많아지는 거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그만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거든. 학생인 너희들이 난 부러워. 너희들은 실패하거나 못해도 다시 도전할 시간과 여유가 있잖아. 그리고 격려해주는 든든한 백(?)이 있잖아.
 
하지만 나에겐 이제 물어보아야 할, 야단쳐 줄 어른이 없어.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야단을 많이 쳐 주시고, 사랑의 매를 드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사랑으로 다독거려 주시던 어머님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든. 이제 나는 무엇이든지 내가 결정해야 하고 내가 판단해야 해. 책임은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하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외롭고 힘든 일이기도 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함을 배우는
 
인생은 그런 거 같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할 때도 있음을 배워 나가는 거. 학생은 바로 이런 과정을 배우고 훈련하는 기간인 거야. 비록 너희들이 지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지나보면 학생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학생은 어른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편한 상태야.
 
그런데 요즘은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 도무지 너희들을 기다리지 않거든. 어른들 대부분이 ‘빨리 빨리’ 병에 걸린 거 같아. 기다리면서 뒤쳐져 오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거든. 모두들 빨리가기, 앞서 가기만은 행하는 거 같아.
 
조금 기다리기만 하면,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는 학생들이 많아. 그래서 너희들을 그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씨앗’이라고 어른들이 이야기 한 거 같아. 고등학교에서는 잘하지 않았던 행정 처리를 하다 보니, 난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일을 조금 늦게 처리하였어.
 
그러다보니 너희들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어. 그런데도 너희들은 오히려 나를 도와서 일을 잘 해 주었어. 선생님인 내가 못하자, 너희들이 알아서 잘해 주더군. 난 정말 너희들이 좋아. 너희들은 스스로를 정리할 줄 알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구분할 줄 알았어.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너희들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거 같아. 고등학생들에 비해서 너희들은 참으로 느려. 무엇을 시작해도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가라는 식으로 천천히 시작했어. 난 고등학교 2학년만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너희들 모습에 화가 났어. 참지 못하고 소리도 지르고 욕도 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너희들은 아직도 한참을 배워야 하는 학생이고, 책임의식이 무엇이고, 관계와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중학생이었어. 하지만 너희들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란 걸 깨닫고 이해한다면, 그 습득도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걸 깨닫는다면, 너희는 그 일을 금방 받아들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이런 너희를 알게 되면서 난 너희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하지만 나는 아직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았어. 그래서 더러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 때로는 욕을 할 때도 있었어. 그럴 때면, 너희들이 나를 이해해 줘. 선생님이 아직 여러분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그리고 선생님도 배우는 학생이라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랫사람은 감히 두려워할만 하다는 공자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가슴깊이 체험하며 지내는 요즘이야. 나는 동산고등학교에서 철학/논리학의 교양강좌를 20년 넘게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였어. 그러다 인천 석남중학교의 사회교사로 오게 되었어.
 
배움의 공동체라는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수업을 하게 되면서 난 나의 잘하는 점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런데 나의 행정업무처리가 부족했어. 다른 선생님들처럼 매끄럽지 못했어. 그런데도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일을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어.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도 가르쳐 주셨지. 나를 더욱 황홀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내 이름을 호명하지 않고, 그 분들이 직접 내게 찾아왔어. 그리고 내가 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알려 주고 도와주었어. 음료수 하나, 음식 하나, 전화가 왔을 때도 함께 일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은 내게 다가와서 전해주고 말씀하셨어.
 
난 지금 지독한 사랑에 빠진 게 확실해. 매일매일 학교에 오는 게 행복하고 즐거워. 학생들이 되바라지게 ‘왜요?’라고 묻는 게 예쁘고, 동료 선생님들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 오는 게 너무나 행복해. 그리고 정말 인사말처럼 나는 사랑에 빠졌어. 그래서 난 학생과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큰 소리로 행복하게 인사 올려.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만 더 행복하세요.”
 
 
 
그리고 나는 지금 기다리고 있어
 
배움의 공동체라는 수업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공부하고 있어. 정말 수업이 재밌고 행복해. 아직은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이 때문에 실제 수업에 적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이 수업의 모형에서 미래의 수업 모형을 보기도 해.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서 4만, 5만으로 가려면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해.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야. 남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 남들이 쉬고 있는 동안에도 일했기 때문이지.
 
앞에 일등을 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목표로 삼아 부지런히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돼.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우리 국민이 맨 앞에서 걸어가야 할 때야.
 
선두에 선 사람은 방향을 잘 잡아야 해.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뒤따르던 사람들 모두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길을 잘 찾아야 하고 부지런히 열심히 가야 해. 하지만 남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면 선두로 나설 수 없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해. 여태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해. 다른 삶의 모습이 필요 해. 무한경쟁의 시대에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해.
 
열심히 일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차이가 있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어. 하지만 지금부터는 열심히만 해서는 안 돼. 열심히도 하고, 잘하기도 해야 해.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잘하는 인재를 길러야 해.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고도 깊게 파야 해. 학생들이 넓고도 깊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 자기 주도형 학습과 공동체 수업방식인 '배움의 공동체' 수업이야. 모르는 학생은 옆의 친구로부터 배우고, 잘하는 학생은 그 모르는 친구를 알려주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그래서 결국에는 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모두 열심히 잘하는 것이 되는 거지.
 
 
 
낳고 기르되 가지려 하지는 말자
 
노자 『도덕경』 10장에는 생이불유(生而不有)라는 말이 나와.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말라는 의미야. 낳고 길렀으면 나머지는 그 생명체에게 맡기라는 지혜야. 그런데 사람들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한다는 오만을 부리기도 해. 이 때문에 비극이 탄생하지. 왜냐하면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니까.
 
이어서 노자는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말라’는 장이부재(長而不宰)를 말해. 지배하려하기 때문에,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인간의 집단에서 비극이 탄생하지.
 
아이들에게 올곧은 길을 알려주었다면, 그리하여 아이들이 한마음을 내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그 때부터는 기다려주자고. 그런데 많은 어른들과 선생님들과 사회와 국가는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않아. 그저 빨리빨리 만을 외치지.
 
기다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 그리고 낮은 곳으로부터 출발하였던 그 첫마음을 어른들이나 선생님들, 그리고 정치가들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높은 곳을 오르려면 낮은 곳으로부터, 천한 곳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등고자비(登高自卑)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으면 좋겠어. 아니 개구리 올챙잇적의 일을 기억하면 좋겠어.
저는 지금 정말 지독한 사랑, 기다림의 사랑에 빠졌어. 그리고 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천천히 확실하게 할 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거야. 학생여러분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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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ol02 2013-03-27 07:53:37
오타가 있네요. 학생들을 기다리자, 낳고 길렀으되 소유하지는 말자. 등고자비. 아이들에게 사랑에 빠졌다.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 정말 쉽지만 어려운 말이다.하지만 이런 행동이 생활화 되어 있는 아이들이 행복하리란것. 인성이 따뜻하고 착하리란것을 믿는다. 석남중의 학생들은 행복하겠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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