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교사의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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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교사의 3월
  • 김국태
  • 승인 2013.04.02 18:0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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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④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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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교사의 3월
 
김국태(인천교육연구소, 인천부평초등학교)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아이에게나 교사에게나 설레는 때다. 아이들은 누가 새 담임이 되나, 어떤 사람일까,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내 짝은 누가 될까, 모든 것에 관심이 있고 궁금하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새로운 업무는 어떨까, 어떻게 첫날을 보낼까, 교실 환경은 어떻게 꾸밀까, 올해 아이들과 어떤 일들을 해 볼까, 이런 고민들은 바로 설렘을 의미한다.
 
그런데 막상 3월이 시작되면 아이들과 나눠야 할 설렘은 사라지고 처리와 관리해야 할 일들로 넘쳐 정신이 쏙 빠진다. 교사들은 쏟아지는 공문으로 하달되는 업무를 마감시한에 쫓겨 처리하느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아이들에게조차도 학교에서 내준 안내사항과 가정통신문, 온갖 규칙 등등 해야 할 일들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설명하기도 바쁘다. 3월은 더 이상 설렘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아니다. 이제 3월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가 요구되는 시간이 되었다.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 잔인함의 정체는 업무 대부분이 3월에 집중되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교사나 서로를 익히고 바라 볼 시간도 없이 그저 일에 허덕이는 일의 노예가 되어 있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아이들과도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어떻게든 교사의 의도와 룰에 따르게 할 것인가, 소위 ‘말 잘 듣는 무난한 아이들을 만들 것인가 그래서 3월 한 달 동안 아이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아이들과 함께 지낼 일 년이 결정된다는 오랜 경험의 습관을 풀어낼 확률이 높다. 각 반마다 다양한 규칙들과 생활 모습들을 제시하고, 아이들에게 주입하여 훈련시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잔인한 3월의 실체가 되었다. 김 교사는 오늘도 아이들과 시달리고, 매년 똑같이 되풀이 되는 소모적인 업무에 또 지친다.
 
3월의 마지막 날 퇴근길에 김교사는 문든 자신의 차에 있는 구형 내비게이션을 쳐다보게 되었다. 김 교사는 주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을 하는 편이라 차에 타면 항상 내비게이션을 연결한다. 특히 먼 거리로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내비에서 정해진 길만을 따라 가는 편이다. 자신이 잘 아는 곳도 내비가 정해 준 길로 갈 정도로 내비게이션 안내에 충실히 따른다. 김 교사는 매년 똑같이 되풀이 되는 3월의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내비게이션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히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가장 빠른 길이 있다. 무조건 직진해라. 여기서 우회전해라, 아니지 이제 좌회전이지” 단편적인 방향만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처럼 말이다.
 
자신이 ‘내비게이션 교사’라는 생각에 이르자, 문득 작년 여름의 가족휴가 때 일이 스쳐 지나갔다. 작년 여름에 김 교사의 가족은 지리산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었다. 김 교사는 평소의 습관대로 내비게이션을 연결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만 꼬박 5시간 걸리는 장거리 노선이라 오래된 내비게이션에서 정해주는 길에 따라 그저 열심히 달렸다. 이전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의 여행 경험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내비가 없던 시절에 가족여행을 가려면 미리부터 지도를 펴고 장거리 노선에 어떻게 오고갈지 코스를 정하고, 어디서 쉬고 어디 묵을지, 중간에 들러 구경할 만한 것들은 뭐가 있는지, 함께 궁리도 하고 좋아하는 바다도 보고 어디 들러서 오자 등등 논의도 하고 출발한다.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주변 경치도 보고, 가끔 이정표도 확인하면서 함께 들뜬 마음도 나누고, 끝말잇기와 수수께끼 같은 놀이도 하면서 가게 된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달게 되면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서인지 더 이상 이정표를 보거나, 함께 지도를 펼쳐보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지시에 따라 가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조용히 갈 뿐이다. 차 안에서도 각자의 기기들이 있어서인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할 뿐이다. 그러다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에 진력이 나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얼마나 남았는데”, “어디로 가는 거야”, “지금 어디쯤인데”라는 세 질문만을 30분 간격으로 반복한다. 그때마다 김 교사는 “응, 아직 도착하려면 세 시간 정도 더 가야 해”, “응, 지금 우리 점심 먹으로 휴게소에 들를 거야.”, “아빠도 잘 몰라.”로 답해가며 아이들을 달랠 뿐이다. 이렇듯 건조해져만 가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여행길은 즐거움이 줄어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가고 있던 중에 시원찮던 구형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면서 우리는 정말 난감해졌다. 평소 내비에 의존하여 운전을 하다 보니 지금 지나는 곳이 어디인지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항상 내비게이션만 믿고 큰 지도를 더 이상 살펴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내비게이션 안에서 여행의 길을 잃었다.
 
내비게이션 안에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쩜 우리 반 아이들도 이런 기분이 아닐까!” 교사라는 이름의 내비게이션 안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말이다. 교사 혼자서 일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정해진 룰을 설명하다보니 정작 아이들한테 올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3월은 뭘 해야 하고,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고, 학급의 운영은 어떻고 하면서 내비게이션처럼 아이들에게 단거리 정착지만 애기해 줬을 뿐, 처음부터 아이들과 일 년의 큰 지도를 펼쳐 놓고 ‘함께 할 일’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교사가 정해 놓은 일련의 규칙과 계획을 잘 따르지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의 일탈과 반항은 교사가 자신들을 동반자로 함께 의논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학업 성취를 행해 짐짝처럼 싣고 가는 항의의 표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김 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들의 가슴속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의 본능은 한국교육의 문제적 현실 때문에 더욱 더 강력하게 작동 하게 된다. 한국의 학교에서 공부는 행복하고 유능한 성인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는 형식적 장치일 뿐이다. 이렇듯 한국 교육은 맹목적인 훈육, 경쟁, 평가의 덫에 빠져있다. 아이들을 시험 문제 잘 푸는 인간으로 훈육해야 한다. 잘 풀어야 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고, 시험점수로 세운 사회적 서열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보다 강하고 끈질기게 미래를 규정하게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학교는 붙잡아 놓고 공부만 시키는 학업의 장으로만 규정되고 교사들도 어느새 자신의 내비게이션으로 학업성취의 정해진 길을 만들어 제시하려 한다. 각종 규칙들을 동원하고, 칭찬과 보상의 도구를 강화하여 끊임없이 개입하여 학생들을 압박하여 몰아간다. 많은 교사들이 이 나라의 교육현실을 한탄하면서도 가슴속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의 본능을 항시 멈추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서로 어울려 자신의 삶을 조율해가는 공간,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면서 커가는 성숙의 공간, 단편적 지식을 넘어 인간관계의 지혜를 성숙시켜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지금의 친구와 함께 성장한다. 이 성장에는 반드시 거쳐 가는 과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지혜를 구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이기적인 지식, 학업성취만을 논한다. 당연히 어른들의 현실적 목적이 투사된 내비게이션의 본능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
 
김교사는 언제까지 “지금 이 길로 가야 빠르다. 여기서 직진해야지. 아니 거기서는 우회전해라” 하는 내비게이션 노릇을 할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지도를 주는 편이 아이에게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이 아닐까? 아니 차라리 아이들 스스로 완성해 나갈 미완성의 지도가 더 좋지 않을까? 1박 2일이 거리를 3박 4일 걸려 당도한 들 무슨 상관이랴. 길을 놓쳐 헤매고 동서남북을 가늠하는 사이 그만큼 아이도 배우고 성장 할 것이 아닐까’ 잠시 이런 상상을 하면서 좀 더 생각을 키워 보기도 한다. ‘이번 우리 학급의 규칙은 아이들을 어떻게 학업성취를 높일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잘 어울려 놀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볼까?’ 이런 생각들은 점점 더 ‘어떤 규칙을 통해 아이들에게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해법을 만들어 가면 어떨까? 무엇보다도 학습과 학업성취에 종속되고 희생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학습도 하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생각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업보다 서로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 이어지면서 좀 더 득도한 교사의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다 아이들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쩌지? 아이들이 막다른 낭떠러지로 가면 어쩌지? 그래도 최소한 동서남북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김교사의 가슴속에 내비는 또 다시 작동을 개시한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다는 건 교사에게 내장된 내비의 본능과의 질긴 싸움의 연속임에 틀림없다.
 
P. S.
그래도 교사의 내비게이션 본능 호르몬을 줄이는 중요한 경험중의 하나는 아이와 가까이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임을, 아이들과 밀착해서 시간을 보낸 교사의 몸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임을 사실 모든 교사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3월은 계속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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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ol02 2013-04-10 18:48:07
내비게이션 본능 호르몬을 ... 가까이서 보면 이쁘다. 찬찬히 보면 더욱 이쁘다. 난 정말 아이들이 너무너무 이쁘다. 이 이쁜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자기만의 꽃을 피우지 못할까 걱정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생활이 잔인해도...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정은교 2013-04-04 06:58:33
우리의 교육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3월의 교사로만이었으면 다행일텐데요.

김은미 2013-04-03 12:09:31
정말 자조적인 선생님이시고 멋진 분이십니다~물론 현실은 아프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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