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홍관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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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홍관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 김기용
  • 승인 2013.04.16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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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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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홍관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김기용(인천교육연구소 기획실장, 석남초교)
 
 
여어! 잘 지내고 있나?
 
 
거기는 좀 어떤가 궁금하이. 누구나 한 번 가는 곳이지만 갔다가 다시 와서 거긴 어떻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지난 달 초에는 동료들 몇 모여서 자네 얘기도 하고 막걸리도 한 잔하고 했지.
 
오늘은 오랜만에 좋은 소식 한 가지 전하려고. 아마 자네도 좋아할 거야. 예전 같으면 부리나케 서로 전화해서 계산동이나 작전동 어디쯤에서 막걸리에 부침개라도 먹고 새벽까지 돌아쳤을걸. 다음 날은 분명 술병으로 종일 고생할거고, 퇴근 무렵이면 뒤늦게 타는 갈증에 맥주 한 잔하자고 또 불러냈을 거야. 연이틀 술타령에 별로 세지 못한 자네는 금방 취해서 또 머리를 흔들기 시작하겠지. 그런데 지금도 궁금한 데 자네는 술이 취하면 왜 그렇게 머리를 흔드나? 예전에 한 번은 자네 흔들리는 머리를 보다가 내 눈이 어지럽더라고. 그게 벌써 언제야? 우리가 함께 계산택지의 한 학교에서 근무할 때니까 수년이 지났네, 그려.
 
그 시절 학급일기를 열어보니 어느 날인지 함부로 휘갈겨 쓴 메모가 보이는군.
‘결국은 거리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이런 현실이 너무 실망스러워 화가 나고 참을 수 없다…….’
 
그 날은 일제고사반대를 위한 집회가 수업 후 서울에서 있는 날이었네. 학교에서 내내 좋지 않던 기분은 서울 가는 차안에서도, 도착해서도 내내 참담한 심정이었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그러나 차마 포기할 수 없는 투쟁. 마치 진흙구렁에 빠진 느낌이랄까. 아마, 다들 그랬을 거네.
 
그런데, 글쎄, 오늘 말이야,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올해부터 전면 폐지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어요. 이거 자네가 신날 이야기 거리 아닌가? 일제고사폐지를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얼마나 많은 선생들이 수고를 했는가. 해임까지 감수하면서 거부를 한 동료들이 있었고, 검정리본을 가슴에 달고 수업을 하며 결연한 의지를 표시하기도 했었고, 학교 앞 1인시위의 불편함도 굳게 감내했었지. 이러한 인내가 아이들과 행복한 관계의 실천 고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 아이들과의 행복…….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있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가능한 많이 멀어져 있는 것, 난 이 글만큼 잘 표현된 행복의 정의(定義)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 자네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네 있는 거기는 여기보단 좀 나은가?
 
내가 한 가지 얘기를 해 줌세.
작년 6학년 음악전담을 할 때의 일이야. 5교시 수업. 점심 먹고 뛰어놀다 들어 온 아이들은 식곤증으로 노곤노곤 졸리는 데, 수업은 마침 지루한 이론단원이었지. 돌연 한 녀석이 땀으로 얼룩진 얼굴에 짜증난 인상으로 묻더군.
 
“선생님, 음악은 왜 배워야하나요? 저는 음악가가 될 생각이 없는데요. 시간 낭비인 것 같아요. 배울 사람만 배우면 되죠. 에~이.”
불끈 하더군.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오려는 무서운 말.
“다 필요하니까 있고, 있으니까 배우는 거야, 네가 나중에 뭐해 먹고 살지 어떻게 알아?”
 
나는 요즘도 가끔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네. 미쳤지, 미쳤다네. 이 가증스러운 폭력성은 내 속 어딘가 몰래 숨어있다 가끔씩 돌연 등장하려해서 나를 당황시킨다네. 예전 같으면 정말 한바탕 했을 건데, 비슷한 사태를 통한 몇 번의 경험이 나름 근사한 대답을 만들어주더군.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해. 이때의 경험이 미래의 결정에 바탕과 근거가 되기 때문이야. 바탕이 풍부할수록 좋은 결정을 선택할 수 있지 않겠냐? 이다음에 네가 뭐로 살든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과정이 지금일거야. 조금 애써보자고…….”
 
그날 수업은 폭력성 앞에 발가벗겨진 교사와 학생들의 팽팽한 긴장으로 채워질뻔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위로하고 공감하는 진지 모드로 수업이 끝났지. 마치지 못한 음악이론수업은 아깝지 않았어. 겪어야 할 풍부한 경험에는 교육과정의 수업도 교사와의 진지한 대화도 모두 중요했으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교실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렵고 변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난 교실은 살아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네.
 
그즈음인가에 또 이런 일도 있었다네. 부끄럽지만 그 날 학급 일기를 자네에게 검사받고 싶어지는군.
 
 
2012년 11월 21일(수) - 6학년 8반 정민이
 
 
오늘 3교시, 6학년 8반 수업이다. 음악실로 사용하고 있는 수업연구실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웅성웅성 거린다. 먼저 수업의 경계를 세운 후에 수업 구성이던 수업 디자인이던 해야 한다는 상식에 따라 집중시키려 애를 쓰지만 오늘따라 유난하다.
 
“여러분, 안되겠어요.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군요. 모두 하던 일 멈추고 자리에 눈 감고 엎드리세요. 조용히 수업할 수 있는 진정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쑥덕쿵, 히히히, 깔깔깔”이다.
“아니, 이것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요?”
 
돌아다니면서 솟구친 머리통들을 꾹꾹 눌러준다. 그런데 저쪽 분단의 정민이는 용감하게 머리를 높이 들고는 내 속을 계속 긁는다.
“얌마, 잠시 엎드려있으라니까!”
뒤통수를 콱 누르는 데, 이런, 뭔가 이상하다. 똑 부러져 떨어지는 안경테 하나. 아뿔싸, 안경을 쓰고 있었구나. 일순 분위기는 냉랭, 수업은 너무도 진지하고 고요하게 끝이 나고…….
 
“여보세요. 정민이 아버님이시군요. 오늘 정민이 안경 오른쪽 테가 음악시간에 부러졌는데요. 저는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어쩌고저쩌고……”
“정민이가 잘못을 했겠죠. 네.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와는 이렇게 정리를 하고는 이제 정민이와 정리를 해야 할 차례.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4교시 중에 차에 태워 안경점으로 갔다. 가장 비슷한 거로 골라달라니까 마침 딱 맞춤이라며 끼워주었는 데, 정민이 눈치를 보니까 다른 생각이 있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 다른 색깔로 하면 안돼요?” 한다. 얼굴은 확 밝아져있고. 이놈 생각은 이미 엉뚱한 안경테에 욕심이 가있는 듯…….
 
그러다보니 점심시간.
“밥도 먹고 들어가자. 네 덕분에 점심을 밖에서 다 먹어보네.”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 고르라니까 ‘나들이김밥’을 먹겠단다. 라면도 시키고 김밥은 같이 먹자니까 자기는 라면을 잘 못 먹는다고 굳이 고집해서 김밥 세줄. 그리고 서비스 국물 두 그릇을 함께 먹다먹다 배불러 거의 한 줄은 결국 남겼다.
다정하게 서로
“많이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 좀 하고.”
“네. 알겠습니다.” 중얼중얼, 쩝쩝쩝…….
다른 사람이 사정을 알면 우습게도 그렇게 지내다 다정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음악전담선생이다. 학교 밖에서가 아니고 교실에서 음악을 하며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갈 길이 멀고도 멀었다.
 
 
법에 없는 죄?
 
 
6학년 도덕교과서(생활의 길잡이 183쪽)엔 ‘법에 없는 죄’라는 예화가 나오더군. 전체 스토리는 잊었지만 죄명 중 몇 가지는 기억하고 있네. 그것은
‘자신만을 끔찍이 아끼는 죄’,
‘이웃이 어렵게 지내고 있을 때 혼자서만 배불리 먹은 죄’,
‘이웃의 외로운 노인을 모른 척한 죄’,
‘다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죄’,
‘웃어른의 충고를 잔소리라 여기고 짜증 낸 죄’ 등이었지.
 
요즘 내게는 그 죄들이
‘아이들이 외로울 때 모른 척 한 죄’로,
‘어려운 아이를 보고도 못 본 척한 죄’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생각하고 들어주지 않은 죄’ 등으로 치환되어 자주 가슴을 친다네. 이럴 때 허물없이 편한 자네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주면 얼마나 좋겠나. 내 이야기 잘 들어주고 한 잔 술에 싹 잊어주는 자네의 그 새대가리(?)같은 기억력이 필요하다네, 이 사람아. 하하하, 농담, 농담.
 
교육의 최대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생김새를 봐서는 아마 굉장히 고지식하고 지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 사람은 참으로 멋지게 교육을 정의했지. 일제고사, 어떻게 보면 거 별 것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저변에는 일방적인 지식의 주입과 강요된 몰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내가 매일 일하고 있는 교육일터의 최대 목표가 아이들의 잘 성숙된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이라면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인내로 더 많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뒹굴어야겠지. 지금이야 하는 만큼 어떻게 하는 것 같은 데, 타성에 빠지지는 않을까, 아이들과의 부대낌이 행복감에서 일탈되지는 않을까 가끔씩 두려움에 젖기도 하는 요즘일세.
 
자주 자네가 보고 싶네. 우연히 연 사진첩 속, 함께 어깨걸이하고 서 있는 우리들 모습을 보니 시위현장인가보이. 지금도 가끔 동료들과 들르곤 하는 여기저기 행적마다 늘 자네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해. 웬만하면 조금 더 있다 나이 들어가는 재미도 함께 느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 무정한 친구야. 아무튼…….
잘 지내시게.
 
 
 
 
* 주(註) : 1998년 시작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는 처음에는 초6, 중3, 고2를 대상으로 0.5%의 학생들만 표집하여 치러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에 관한 각계각층의 지적과 비판을 뒤로하고, 200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최초로 초6, 중3, 고1을 대상으로 표집이 아닌 전수시행 하였다. 이후 전수평가는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이 해임 등의 징계를 받아 아이들 곁을 떠나야했다. 지난 3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초등학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폐지하겠다는 대통령업무보고를 하였다. 그 날 작고한 동료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싶었다. 故 김홍관 선생은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3월 고향 통영으로 발령받아 근무한지 열흘 만에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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