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우(黃梅雨)내리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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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우(黃梅雨)내리는 날을 기다리며
  • 양진채
  • 승인 2013.04.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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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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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일간 제4회 AALA문학포럼이 열렸다. AALA문학포럼은 인천문화재단에서 비서구권 작가들을 초청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연대하고 차이를 드러내고 깊게 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둘째 날 여성의 시각에서 상호 문화적 대화를 통한 지구적 보편성을 모색하는 자리에 토론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대만, 중국 작가가 함께 했다.
특히 살와바크르 라는 이집트 작가는 지구적 보편성의 맥락에서 민족문화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인간 그룹들 속에서 문화적 중재를 탐색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다름의 즐거움을 지켜보고 즐기는 박물관과 같은 형태로 만드는 식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이것은 민족문화의 본질을 잃게 하며 용도가 지정된 하찮은 문화, 즉 시장경제학에 종속된 문화를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전지구적 보편성이라는 미명 아래 통일된 문화적 패턴이라는 환상을 만들고 나아가 현대화란 이름 아래 사이비 지구적 문화를 만들어냄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등한시 한다는 것이다.
살와바트르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무조건적으로 유행에 쫓아가기 급급한 우리 삶의 패턴은 어느새 개성을 잃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리는 소설을 쓸까 유행에 민감해지고, 출판사는 그런 상황을 부추긴다. 천만 원의 창작기금을 받고도 팔리지 않는 소설집을 내주려는 출판사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동료들을 보아왔다. 팔리지 않는 소설집보다는 이야기 위주의 줄거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는 장편소설이 아무래도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쉽다. 그러다보니 출판사들은 노골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없냐며 장편소설을 찾는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출판시장이 나날이 좁아지니 출판사만 탓할 일은 아니다.
비서구권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나와 다르지 않은 문학적 고민을 하고 있다는 연대의식과 지역, 국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3일간의 행사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이에 낙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차이를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 내가 발을 딛고 사는 땅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수성, 한글이라는 모국어의 특수성을 드러낼 때에야 만이 문화적 보편성에 함몰되지 않으며 시류에 휩쓸려 다니지 않으며 남과 다른 문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기회였다.
AALA문학포럼 자료집에 실린 중국작가 완안이의 소설에서 황매우(黃梅雨)라는 단어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번역에서는 중국 남방에서 봄철 매화가 필 무렵 매일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말한다고 했다. 우리는 매화 열매인 매실이 누렇게 익어가는 때에 내리는 비를 황매우라고 한다. 내게는 꽃이 필 때인지, 열매가 익을 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비의 이름을 지을 때조차 풍류를 지녔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 상업화로만 치닫고 있는 요즘이라면 비네게 황매우(黃梅雨)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 벚꽃 날리는 날에 다시 한 번 문학의 자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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