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대화록 공방과 뒷전인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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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대화록 공방과 뒷전인 국민
  • 윤세민
  • 승인 2013.06.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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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세민 교수 / 경인여대 교양학부(언론학박사,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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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발언과 그 공개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은 NLL 발언이 담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조건 없는 완전공개를 촉구하면서 물밑으론 NLL 국정조사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공개 맞불을 놓으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국정조사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단계적·제한적 장외투쟁 카드까지 빼들고 있다.
 
 왜 NLL이 또다시 쟁점인가
 
 
최근 NLL이 정치 쟁점의 화두가 되고 있다. NLL은 ‘Northern Limit Line’의 영문 머리글자의 약자로서 ‘북방한계선’을 지칭한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유엔군은 서해 5도와 북한측 육지 중간을, 북한은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해상경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회담이 결렬된 바 있다. 이에 1953년 8월 유엔사령부는 한강 하구에서부터 서해 5도인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따라 11개의 좌표를 이은 선을 양측의 해안 경계선으로 정하자고 북한에 통보하였다.
 
1953년 설정 이후 1972년까지는 북한도 이 한계선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함으로써 남북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973년 들어 북한이 서해 5개 섬 주변수역이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역을 항행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빈번히 NLL을 넘어옴으로써 남한 함정들과 맞닥뜨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국제법적으로도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것이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유엔사령부가 NLL 확정에 대해 통보했을 당시 북한 측의 분명한 이의 제기가 없었고, 이후 20여 년간 관행으로 준수해 왔으며,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의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를 침해할 경우 명백한 정전협정 정신 위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서해 NLL의 경우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선언했을 뿐”이라며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0년 3월 23일에는 해군사령부 보도를 통해 ‘서해 5도 통항질서’를 일방 선포하면서, 임진강 하구를 시작으로 북측 옹도와 남측 서격렬비도, 서엽도 사이의 등거리점, 한반도와 중국 사이의 반분선과의 교차점을 ‘해상경계선’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이 지역은 꽃게가 풍부한 어장으로 해마다 6월 즈음이 되면 북한의 어선이 NLL을 침범해 문제가 되어 왔고, 이미 이곳에서의 남북간 교전이 두 차례나 있었다. 그만큼 NLL은 해양 자원을 넘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남북 양측의 빈번한 충돌과 대립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여전히 주요 논란거리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화록 전문 공개 이뤄질 것인가
 
NLL 관련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 이번에 공개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여야의 공방 와중에 그 진정성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공개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여야 공히 피력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여야 모두 완전공개를 말하지만 '선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의 민주당과 '선 대화록 공개'의 새누리당의 기싸움이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타협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대화록의 법적 지위, 즉 ‘대통령기록물’인지 아니면 ‘공공기록물’인지에 따라 공개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국정원은 보관중인 대화록 전문과 축약본을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판단해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열람시킨 바 있다. 새누리당도 공공기록물로 보고 있어 여야가 합의하면 바로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일각에선 국정원장이 국회 요청을 거쳐 비밀해제한 뒤 대화록을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2급 비밀문건이지만 공공기록물인 만큼 관련 절차만 거치면 즉시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로 대통령기록물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통령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있어야 공개할 수 있는 만큼, 127석의 민주당이 지금처럼 반대하면 공개는 원천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해당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이므로 열람 자체도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대통령기록물은 15년간 열람과 사본 제작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국정원이 보관중인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축약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검찰도 지난해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자(死者)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축약본을 공공기록물로 봐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바 있다.
 
아무튼 이번에 전문 공개에 대한 여야의 의지가 확인된 성과는 있었으나, 정작 한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여야가 내건 전제조건이 오히려 전문 공개를 어렵게 만들어 놓고 있는 상태다.
 
당장 새누리당은 대화록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정조사는 지난해 대선 당시의 ‘관매직 공작 의혹',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인권유린'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검찰수사 이후에나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재차 문제가 된 NLL 발언록에 대한 조사도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새누리당은 박근혜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맞춰 북한과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칠 대화록 공개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 후 필요할 때 NLL과 관련한 대화록을 법에 따라 공개할 수 있다는 게 당의 확고한 입장"이라면서 '선(先) 국정조사'로 맞서고 있다. 또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남북관계뿐 아니라 세계 외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외교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민주당은 인식하고 있다. 
 
 
공개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화록이 공개된다 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 차이'로 논란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 쪽이 명백하게 승복할 만큼의 내용이 아니라면, “해석이 틀렸다”거나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공방이 지속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NLL 포기발언 진위 공방에서 여야 어느 쪽이 승리할 지는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NLL 포기로 여길 만한’ 언급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정확히 ‘포기’라는 용어가 쓰였는지, 실제 ‘포기’의 의미를 담은 발언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공방 과정에서 NLL에 어느 정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것이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시비를 걸 때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었던 해에도 불거진 ‘해묵은’ 논란이다. 새누리당과 보수층은 당연히 NLL을 영해선이자, 안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NLL은 국제법적 영해선이 아닌 만큼, 평화수역을 설정해 남북의 군대를 후퇴시키고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셈법은 복잡하다. 난해한 고차방정식 풀기다. 양측은 당분간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 사항을 계속 제기하면서 주고받기식 공방을 이어갈 것 같다. NLL 발언 공방은 야권의 안보관에 대한 공세 측면도 있어 자칫 사회 전반이 좌우 이념 대결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정치권이 예상하지 못한 국정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민국 정치 시계가 2012년 12월 대선 정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훨씬 넘었는데도 ‘대선 연장전’을 치르는 듯한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여야는 국가정보원 정치·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논란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여부를 놓고 ‘무한 핑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정원과 NLL 논란이 뒤덮어 버린 6월 국회에서 경제위기 대처를 위한 논의와 민생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만큼 뒷전으로 밀린 우리 국민은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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