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와 20%, 선생님은 어느 지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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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와 20%, 선생님은 어느 지점이십니까?
  • 이수석
  • 승인 2013.07.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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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 미래찾기⑮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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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와 20%, 선생님은 어느 지점이십니까?
                                                                                                                   이수석(인천교육연구소, 석남중학교)

일개미를 관찰하다
한 생물학자가 일개미 100마리를 놓고 관찰했데요. 80%만이 열심히 일하고 20%는 대강 어영부영하며 딴 짓을 하더랍니다. 다시 그 열심히 일하는 80%의 개미를 놓고 관찰했답니다. 역시 그 중에 80%인 64마리 정도만이 열심히 일하고 20%가량인 16마리는 이곳저곳을 방황하던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거나 등의 딴 짓을 하더랍니다.
 
세상은 언제나 돌연변이, 지금과는 다른 방법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하거나 멸망하기도 하는 거 같아요. 인류역사를 보더라도 사회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 모범생이랄 수 있는 80%가 차지했지요.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색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통해 보다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몸짓은 20%의 사람들 가운데서 더 많이 나왔더군요. 물론 그 20%중에는 오히려 세상을 전쟁터로, 또는 멸망으로 몰아갔던 사람들도 있었지요.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지금의 삶처럼 굳건히 지켜주는 80%의 일반인들. 그리고 세상을 지금의 구조와 형태와는 조금 다르게 변화 발전시키려고 하는 20%의 이단아들. 물론 여기서의 이단아는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단아들은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있었더군요. 100년 전에도 있었고 1,0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2,200여 년 전에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이집트 로제타의 돌에도 “요즘 학생들이 걱정이다.”는 문구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그때도 젊은이들, 학생들이 문제였나 봅니다.
 
너희를 어떻게 믿고
학생들은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든지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아니 새로운 세대 신세대들은 언제나 문제였나 봅니다. 자대배치를 받아 소대로 발령을 명받았을 때인 1985년도 5월의 군대에서도 이런 일이 제게 벌어졌습니다. 제대를 앞둔 고참병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널 믿고 내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정신 차리고 똑 바로 해라! 이 고문관아!”
세월이 흘러 제가 제대할 때인 1987년 7월이 되었습니다. 저도 신입 병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를 믿고 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냐?”
 
하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만 돌아가고 있었고, 과거보다는 삶이 조금은 더 윤택해졌습니다. 제게 과거는 추억이고 회상할 때만 아름다운 것이지, 실제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일이기에 힘들었던 것이 ‘추억’인 것이지, 사실 그 시절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지 않았습니까?
 
학생들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장차 어떻게 살아 무엇이 될지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른들의 기준과 생활의 지혜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죠. 그런데 어른들이 걱정합니다. 이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라고요. 하지만 이런 고민과 한탄을 하는 학부모와 기성세대들도 야단을 맞고 걱정을 받았던 학생 시절이 있었잖아요.
 
지금 학교 현장은
지금 현장의 학교는 아우성입니다. 무엇보다도 20%의 학생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아이들이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학교가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학교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냐고 이야기합니다. 교사들은 다 어디갔냐고도 이야기합니다. 뭐했냐고 야단입니다.
 
교사인 저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교사인 저는 지금도 학교 교단에서 선행학습으로 알 것 다 아는 학생들에게 새롭고도 재밌는 방법으로 수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사인 저는 생활고에 허덕이는 한 두 명의 아이에게 정부의 복지예산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상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인 저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과 방과 후에 산을 오르며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거북시장을 거닐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기 때문에 말썽을 부리며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저에게는, 교사로서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교사인 저는 학업성적에 좌절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업무처리에 바빠서 아이들과 눈 맞추며 상담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며 스킨십하며 장난칠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저에게 찾아와 상담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학습이다, 학원이다 과외다 등의 일로 너무 바쁘거든요. 새로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교과연구의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사인 저는 업무를 집으로까지 가져가서 일합니다. 지금의 저는 어쩌면 스승도 교사도 선생도 아닌 거 같습니다. 학교의 잡무(?)에 시달리는 행정 업무요원 같습니다. 교사로서의 저의 이런 모습이 싫습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선생, 교사, 스승이라는 자부심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전 감히 싸가지 없게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너는 80%와 20%에서 어디에 설래?”
“선생님은 80%와 20%, 어느 지점에 서 계십니까?”
 
김선생님께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에서의 침묵은 또 다른 동조와 긍정과 찬성이라는 의미로 변했다고 생각해요. 반론할 시간을 안 주고 있지요. 일이 진행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토론할 기회는 더 더욱 주지 않죠. 아니 많은 동료교사들은 그런 일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 하지요. 그냥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발표하면 사람과 사람,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은 서로 잘 되는데, 이런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하죠. 모난 돌이 정 맞는 게 아직 우리 사회의 분위기죠.
 
하지만 선생님처럼 모난 돌이 많아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래서 침묵이 동조나 동의가 아니라 또 다른 항의요 저항이라는 생각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반전드라마를 꿈꿉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은 20%에 설 수 있도록 변해가는 제가 기특하기도 하답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만 더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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