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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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다
  • 인천섬마을조사단
  • 승인 2013.07.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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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조사단, 백령도 주민 이관성씨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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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섬마을조사단의 두번째 방문 섬 백령도를 취재하며 백령도가 고향인 이관성님(77)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를 통해 간략하게나마 그 분의 일대기를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서 백령도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엿보았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와는 차원이 다른 살아있는 역사였다.
이관성님이 살아오신 삶의 이야기는 백령도를 이루는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분이고, 그 일부분을 통해 백령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6.25를 겪은 어린 시절
 
 
조사단(이하 조) : 살아오신 이야기를 좀 부탁드립니다.
이관성(이하 이) : 여기서 태어났어요. 본래 부모님들은 사변 전(6·25) 38선 갈리기 전에 이북에서 살았어요. 황해도 장연군인데 제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여기서 살고 있어요. 큰집 조상들이 이북에서 살고 있어서 이쪽으로 이주했어요.
 
조 : 6·25 여기서(백령도에서) 겪으신 거지요?
이 : 6·25 여기서 겪고 백령도에 연화리라고 있어요. 거기로 들어왔는데 피난 갈 때가 어디 있어요. 지금은 큰 배가 있지만 그 때는 풍선을 타고 저 충청도 쪽으로 피난 간 사람들도 있어요. 배가 있나 그러니 피난 다니다가 들어와서 사는데 지난 생각하면 하하하...
 
조 : 전쟁 시 사곶해변에 비행기 많이 뜨고 내렸다고 하던데요?
이 : 그럼요, 6·25때 사곶해변에 전투기와 물자수송 미국비행기가 많이 뜨고 내렸어요.
 
조 : 백령도도 피난민이 많이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 피난민 2만여 명이 거쳐 갔습니다. 지금 인구의 절반정도가 피난민일 거예요.
 
조 : 천여 명 살던 섬에 이천여 명이 들어와서 살면, 서로 힘들었겠어요.
이 : 어려웠죠. 초창기에 백령면에서 사곶해변있는 동네에 피난민수용소를 만들었어요. 급식소도 거기다 세워서 밀가루 죽 쒀서 줬어요. 그리고 정부에서 피난민 받아서 누구 집에 몇 명, 누구 집에 몇 명 재우라고 해서 정작 우리들은 남의 집 가서 잤다니까.
 
4.19와 5.16을 겪은 공무원으로서의 삶
 
 
조 : 백령면사무소에서 근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 : 예, 백령면사무소에 57년에 말단서기로 일하다가 59년에 옹진군청에서 근무했어요. 1년 뒤인 60년도에 4·19가 일어났지요. 후에 5·16혁명도 겪고. 4.19 혁명 날 때 투표함 갖고 대피하는데, 학생들이 돌 던지는 바람에 위층으로 도망갔죠.
 
조 : 그럼 그때 개표를 제대로 못하셨겠네요.
이 : 그럼 도망가는데. 돌 던지고 그러는데 어떻게 해. 투표함 열어 놓고 고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망갔는데 그 사이에 투표함을 훔쳐간 거야. 그걸 나중에 법원에서 찾았어. 찾으러 법원에 가니까,“당신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물어보더라고요.“아이들이 돌 던지고 그러는데 어떡해하냐고, 그 사이에 잃어 버렸다고.”그랬지.
 
조 : 그럼 다음날 찾아서 개표하고 그러신 거예요?
이 : 그렇지.
 
대청도를 승격시키다
 
조 : 대청도가 백령도에 속해 있었다고요?
이 : 백령도에 예속되어 있는 거지요. 여기서 근무하다가 대청출장소로 발령 받았습니다. 그 때가 65년입니다. 출장소에서 4년 정도 근무하다가 출장소장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출장소장으로 있으면서 대청도가 출장소였기 때문에 관할 주민들 생활이 낙후되어 있었어요. 제가 안 되겠다 싶어서 면으로 독립을 시켜야 되겠다 그래서 승격을 시켰어요.
 
조 : 그게(대청면으로 승격) 몇 년도 일인가요?
이 : 출장소 승격 시킨 지가 74년입니다. 후에 대청중고등학교 초대 서무과장으로 발령받았고, 백령중고등학교로 옮겨 19년 근무했어요. 행정실장으로 됐지만 학교에서 19년 만에 퇴직을 했습니다.
 
조 : 정년퇴임 하신 거예요?
이 : 네, 자랑이 아니라 나온 김에 말씀을 드리면 제가 일반 행정직으로 24년 정도 근무했고 교육직으로 19년 근무했습니다. 녹조근조훈장도 받았어요. 백령면에서 처음 받은 훈장입니다. 문교부장관, 내무부장관공로표창, 김대중 대통령 때도 표창 받았습니다.
훈장도 보여주시고, 예전 사진들도 보여주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백령도지’ 번역도 시도하고 있다는 이관성님. 인터뷰를 마치고 들었던 생각은 ‘아쉬움’ 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의향이 있으셨고, 냉면 먹고 가라는 말씀도 해주셨지만, 허락된 시간이 짧아 아쉬울 뿐이었다.
 
 
조사자 : 김금전, 김주열, 박주희, 서은영
정리 : 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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