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예술가-예술과 자본, 그 사이 어디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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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예술가-예술과 자본, 그 사이 어디쯤의
  • 공주형
  • 승인 2013.08.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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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예술가는 비범한 존재라는 믿음 때문일까요. 자살은 천재 예술가들의 낭만적 신화에서 상징적 사건으로 건재해 왔습니다. 미술의 역사도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을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였습니다. 남다른 재능의 젊은 흑인 예술가는 ‘검은 피카소’로 칭송되었지요. 그는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가 누락시킨 흑인의 비극적 역사를 예술로 복권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십대에 스타 반열에 올랐고,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지만 스물일곱의 화가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요절하고 맙니다.
피폐한 모습의〈자화상〉으로 잘 알려진 반 고흐도 그렇습니다. 권총 자살 시도 후 숨을 거뒀지요. 광기와 고독, 절망과 낙담으로 점철되었던 서른일곱 화가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애드 해리스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로 친숙한 폴록도 자살한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예술은 완성된 미학적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과 행위에 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런 시도는 확실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국의 화가’. 서른한 살 그는 이렇게 평가되었지요. 예술가로 명예와 부를 거머쥐었지만 그의 삶은 뜻밖에 끝이 났습니다. 만취한 그가 운전대를 잡고 자작나무를 들이박고 사망한 것이었지요. 그때 그의 나이, 마흔 넷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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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작업실의 바스키아, 반 고흐의 〈자화상〉, 작업 중인 폴록

물감이 묻은 명품 슈트 차림으로 인터뷰하기를 즐겼던 악동 이십 대의 바스키아. 순수한 성품으로 독서를 즐겼던 외톨이 삼십 대의 반 고흐. 술에 취해 추태와 노숙을 일삼았던 알코올 중독자 사십 대의 폴락.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 무엇이 이들 삶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이 만들었을까요.왼쪽부터 작업실의 바스키아, 반 고흐의 〈자화상〉, 작업 중인 폴록
바스키아의 생명을 앗아간 약물 복용은 대중들의 관심이 사그라질 무렵 시작되었습니다. ‘언젠가 세상이 내 예술의 가치를 알아줄 날이 올 거야.’ 확신했던 반 고흐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믿음이 정신 착란과 함께 흔들릴 무렵 권총을 빼들었습니다. 폴락은 ‘더 새로운 예술’에 대한 중압감이 심해질 즈음 폭음과 스피드에 빠졌습니다.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다수와 소통하는 예술을 꿈꾸었던 바스키아. 대성당보다 인간의 눈을 그리고 싶어 했던 반 고흐. 새로움으로 현대미술의 장을 연 폴락. 대중들의 무관심, 인간관계의 단절, 벗어날 수 없는 예술의 진부함은 이들에게 어떤 절망을 안겨주었을까요. ‘지금까지 내가 지속해 온 예술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그럴 이유가 있을까’ 이런 혼란이 예술가들을 자살로 내 몬 것은 아니었을까요.
막바지 더위를 뚫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김종학 PD의 비보가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을 둘러싸고 성공한 연출과 실패한 경영에 대한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최후의 날, 늘 들르던 이발소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이발사와 팥빙수를 먹었다는 고인의 행적은 마치 잘 연출된 그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예술적 고갈이 아니라 자금의 부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은 예술과 자본,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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