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5월'…소·돼지와 함께 봄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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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5월'…소·돼지와 함께 봄도 죽었다
  • 김도연
  • 승인 2010.05.14 0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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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구제역 한파 한 달…강화는 온통 '잿빛'

강화로 들어서는 곳곳에 붙여진 플래카드. 강화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취재 : 김도연 기자

'잔인한 5월'이었다. 냉혹했다.

소와 돼지가 죽고, 봄도 따라서 죽었다.

전재산을 잃은 농민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역경제도 말이 아니다. 다른 곳에선 지방선거다 뭐다 해서 시끄럽지만, 강화(江華)는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이 노릇을 어찌 할꼬?
 

구제역이 강화군을 휩쓸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6일, 강화군을 찾았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강화 주민들은 이날 비를 뿌리며 낮게 드리운 잿빛 구름처럼 어두운 모습 일색이었다.
 

이날 오전 10시께, 강화군으로 들어가는 길은 평소와는 다르게 한산했다. 여느때 같으면 최소한 신호를 서너 번 받아야 벗어날 수 있었던 장기교차로를 신호 한 번에 통과할 정도로 강화군으로 향하는 차들은 많지 않았다.
 
두 곳의 방역구간을 지나 강화군으로 들어섰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 만큼 뜸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 그러나 많은 역사문화유산을 간직한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터미널 옆 강화 풍물시장과 인삼센터는 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100대 이상이 동시주차할 수 있는 강화풍물시장 앞 주차장. 차들이 듬성듬성하다.

강화풍물시장이 문을 열면서부터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종병(42)씨를 만났다. 박씨는 대뜸 "상춘객들이 가장 많을 시기인데 주차장이 텅 비었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지난해 봄에는 주말에 넓은 주차장 안팎으로 차들이 가득 들어서서 30여분을 돌아야 겨우 주차를 할 만큼 사람이 많았는데, 올해는 그런 모습을 구경할래야 할 수 없다"며 "이즈음 매출이 상반기 매출의 전부인데도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하소연했다.
 
강화풍물시장에는 211개 상가들이 있다. 하지만 상인회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매출이 지난해보다 30%~70%까지 줄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인접한 인삼센터 상인들도 마찬가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강화터미널 앞 인삼센터.
 
평일 낮에도 강화인삼을 사려고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은 꾸준했지만, '구제역 한파'가 몰아치면서 인삼센터를 찾는 발길은 뚝 끊겼다.
 
20여년간 강화인삼센터에서 장사를 했다는 신규성(50)씨는 이날도 전날처럼 애꿎은 인삼만 만지작거렸다. 신씨는 "지난 IMF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구제역 파동과 함께 관광객 발길이 끊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53개 점포 가운데 개시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인들이 수두룩하다"며 걱정을 했다.
 
그의 얼굴은 한 명의 손님이라도 끌어보려는 노력조차 엿보이지 않을 만큼 힘들어 보였다.
 
실제로 이날 낮 강화인삼센터에는 인삼을 사러 온 관광객들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신씨는 "여기는 농협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관광객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인데, 이 정도니 강화지역 다른 인삼센터는 더할 것"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이 같은 강화인삼센터의 열악한 사정은 주차장 앞 좌판 상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찾지 않아 터미널 인근 좌판 상인들도 매일매일이 힘겹다.
 
수십년간 순무김치와 고구마 등을 만들어 팔고 있는 이순희(62.여) 씨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건 처음"이라며 "구제역인지 뭔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예년 같으면 하루에 순무김치 10통 이상을 팔고도 남았는데, 요즘에는 한 통을 겨우 판다"며 "관광객이 없어도 너무 없어 걱정이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지역경제의 위축은 비단 시장 상인들만이 아니다.
 
지난달 27일엔 강화음식업지부가 주축을 이룬 관광업 주민대책위가 안덕수 강화군수와 면담을 갖고,  '재난지역'으로라도 선포해 달라고 호소했다.
 
강화음식업지부 고문섭 사무국장은 구제역 여파로 인한 음식점들의 매출감소 규모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평균 50% 이상으로 보고 있다.
 
고 사무국장은 "실제로 4월 15일부터 4월 말일까지 회원 업소들의 카드매출 현황을 비교 분석해 보니 적은 곳은 30%에서 많게는 70%까지 지난해보다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며 "축산농가들은 보상이라도 받겠지만 음식과 숙박 등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은 피해를 호소할 곳조차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대책위에서는 '재난지역' 선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득세나 부가세 등의 납부라도 유예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안정기에 접어드는 즉시 '구제역 발생지의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홍보를 억제해 달라고 요청한다.
 
각종 세금의 경우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부과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4월 한 달 매출이 너무 많이 떨어졌고 이달에도 영업이 전년만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덜어달라는 바람이다. 또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도 관광객들이 강화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 홍보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더리미마을의 장어구이 음식점. 지난해보다 손님이 확 줄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 장어요리집이 밀집한 길상면 장흥리 더리미마을을 찾았다.
 
이곳 한 음식점의 한종호(52) 사장은 "지난해 4월에는 평일에도 하루 30~40팀의 손님들을 받았는데, 요즘은 주말에도 10팀의 손님을 받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씨는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겨우 3팀의 손님을 받았다"며 "이런 식으로 하다간 음식점 문을 닫을 상황에 놓일까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찾는 손님들이 없어 삭막함마저 주고 있는 후포항의 한 회집.
 
화도면 내리 후포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조수인(64) 사장은 "지난해 4월과 5월 두 달 동안에만 1억원 넘게 매출을 올렸는데, 올 4월 한 달 동안 매출이 겨우 300만 원에 그쳤다"며 "인건비와 횟집 운영비 등을 감안하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말을 하는 내내 손님이 한 명도 없는 홀을 착잡한 심정으로 둘러보며 장사를 걱정했다.
 
조 사장 말에 따르면 후포항에 밀집된 상가들은 거의 모두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4월부터 꽃게가 한창인 5월과 6월까지 영업으로 1년을 먹고살지만, 올해는 구제역 파동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현상유지도 힘든 상태라고 한다.
 
숙박업소의 사정도 매한가지다.


후포항 인근의 펜션. 예약문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수준으로 줄었다.
 
화도면 내리에 위치한 M펜션은 이 지역에서 유명해 꾸준한 예약률을 보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예약 문의가 지난해보다 확 줄었다.
 
펜션 사장 임인식(61)씨는 "지난해 4월에는 하루 평균 30~40통씩 예약문의 전화가 빗발쳤는데, 요즘은 하루 3통 정도에 불과하다"며 "구제역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걱정"이라고 낯빛을 흐렸다.
 
그나마 이 곳은 고정 고객들이 있어서 인근 다른 펜션보다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한다.
 
임씨는 "현재 예약 문의를 하는 손님들은 구제역 파동을 무시한 채 작정을 하고 온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구제역으로 발길을 끊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지역 상인들의 사정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이 받아들여질지는 불투명 상태이다.
 
실제로 강화를 찾는 관광객 발길은 지난해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강화군에 따르면 강화역사박물관, 초지진, 광성보, 마니산 등 강화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주요 관광지의 매표 현황을 보면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에는 20만5천 건이 발권됐으나, 올 4월 한 달간에는 9만9천800건에 그쳤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관광객 규모가 52% 가량 줄어든 셈이다.
 
구제역으로 가축들이 살처분 된 지역에 인접한 가축 사육 농가들은 불안한 마음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살처분 범위 인근 젓소 사육 농가. 출입차량과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소독을 한다.
 
불은면 덕성리의 한 젖소 사육 농가도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소들을 돌보던 주인 이종훈(51) 씨는 "30년 넘게 소를 키워 왔지만, 이번 구제역 파동 같은 어려움은 처음 겪는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달 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른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지금까지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예년 같으면 며칠에 한 번씩 소독을 하던 것을 요즘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전 오후에 소독을 하고 있다."며 불안해 했다.
 
며칠 전부터 소 한 마리가 아픈데도 수의사를 부를 수 없는 형편이라는 그는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지만 가축의 이동이 전면 제한돼 저러다 죽으면 묻어버리는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모두 108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그로서는 딱히 손 쓸 방법도 없어, 하루빨리 구제역 파동이 잠잠해지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강화군은 현재 초비상 상태"라며 "오는 15일까지가 고비로 그때까지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되지 않으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군은 '구제역 안정기'가 되면 관광객 유치에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강화주민들은 이런 군의 계획이 '실행'되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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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2010-05-12 09:17:11
한산한 곳을 잘도 찾아서 취재를 했네요. 지금이 예전보다 강화갈때 시간 더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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