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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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 김정아
  • 승인 2013.08.2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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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 햇살노인전문기관 온가정의원 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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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 <인천in>의 기획 연재 ‘인천교육 미래 찾기’에 실린 김진숙 선생님의 ‘교사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선생님의 허락도 없이 글의 일부분을 인용하면,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비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정의, 평등, 성실, 정직의 가치를 가르치면서 그런 가치들이 묵살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부끄럽다.  성적이나 부모의 경제력 등으로 차별 받는 아이들에게 죄스럽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온갖 교육정책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교사의 모습이 무기력하다.’  
어른으로서, 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선생님의 미안함에 아주 많이 공감하면서 내 진료실을 찾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 생각났다.
 
26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작은 병원을 하고 있는 나와 내 후배 계원숙 선생은 사실 우리 환자들과 같이 늙어간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병원에서 예방 접종을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아기를 낳아서 접종을 하러 오니 말이다. 잘 살지 못하는 동네, 근처 초등학교에는 한부모나 조손 가정 아동이 30%가 넘는다는 말도 들었다. 낳아 준 부모가 꼭 키우지 않더라도, 또 좀 가난해도 사랑이 넘치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악순환의 고리처럼 끝도 없이 굴러가면서 아이들이 상처받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한 살 때 엄마 품에 안겨 온 아이가 4살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오고, 6살이나 되었나 하면 오천 원짜리 지폐를 접지도 않고 종이처럼 휘날리며 혼자 병원에 온다. 아이고 누가 돈이라도 뺏으려고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나 신호등은 잘 건너려나 걱정스러운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컴퓨터 게임에 중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우리 손주는 컴퓨터 박사’라고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집을 나갔다가 붙잡혀왔다가 하는 중학생이 되어 있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가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으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워서 어색해하는 그 친구의 손을 잡고 잘 다녀오라고 깍듯이 존댓말을 써 준다.

하루에도 100명 관상을 보는 의사의 눈, 그것도 엄마인 의사의 눈에 보이는 우리 아이들의 어두운 모습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벌써 어긋나 있는 아이를 보면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누가, 어디에서부터 개입해서 아이가 밀려가는 길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  5년 후, 그리고 10년 후 그 아이의 모습이 내가 만난 안타까운 다른 아이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조려진다. 동네 병원 의사가 일시적이나마 엄마처럼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난 달 우리 지역 그룹 홈(공동생활가정) 두 곳과 지역아동센터 한 곳의 4세부터 중학생까지 40명 정도의 아이들을 만나 검진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낳아 준 엄마가 아닌 남의 손에 잘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떠들다가 급기야 와글와글 작은 병원이 울릴 정도로 건강한 수다를 떨었다. 검진 결과 감염성 질환이 있는 아동은 한 명도 없었고 작년 검진에서 빈혈이 약간 있었던 아이들도 모두 정상 수치가 나왔다. 다만 저체중 아동이 눈에 뜨인다. 아동보호기관에서는 이 점이 중요할 수는 있겠으나 7년 전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집 나간 엄마 대신 동네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고열에 시달리면서 영양실조 상태로 병원에 왔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해마다 저체중 상태가 개선되고 있다.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잘 먹고 공부도 그런대로 따라가고 적당히 말썽도 피우면서 자라고 있었다. 시설아동의 인권에 관하여 학교 선생님이나 관할 관청의 감시가 대단하다는 그룹 홈 선생님들의 불평을 들으면서 선생님들로서는 약간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 세상과 부딪혀 나가려 할 때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 왔던 시간과 경험이 그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두려운 느낌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아이들을 마음 조려가며 키운 나는 내 진료실을 찾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빚진 것이 없나 오늘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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