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여름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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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여름을 나다
  • 최일화
  • 승인 2013.09.08 23:39
  •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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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최일화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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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3개월 예정으로 <연희문학창작촌>에 와 있다. 올해 안에 시집을 한 권 출간해야겠기에 조용한 곳에 가서 차분하게 부족한 원고량을 채울 생각이었다. 산문처럼 꾸준하게 앉아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나는 비교적 큰 부담 없이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다. 전에 써 두었던 습작시를 다시 손질하고 새로 작품을 써서 시집에 수록할 시 목록에 추가하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곳엔 만 권 이상의 장서가 준비되어 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책을 빌려다 읽을 수 있다. 그동안 책을 읽느라고 읽은 것 같은데 내가 읽은 책이 터무니없이 적고 실로 아무런 계획 없이 중구난방으로 책을 읽었다는 자책이 들었다. 이곳에선 주로 「창비시선」과 「문학과 지성 시인선」을 읽기로 하고 그동안 200여 권 가까이 읽었다. 70대의 노시인부터 20대 중반의 젊은 시인들을 망라하여 읽다보니 아주 희미하게 우리 문학의 현실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시집들을 읽을 때 모든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우선 열 작품씩이라도 읽자 하고 시작했다. 예상은 맞았다. 열 편 읽기도 버거운 내용파악이 거의 불가능한 시집도 여러 권이었고 해설을 읽어가며 간신히 이해는 했어도 나의 취향이 아니라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집도 상당수였다. 그래도 200여 권 가운데 50여 권은 감동을 느끼며 읽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 시집들 중에 40대 젊은 시인들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고 따뜻한 느낌이 훈훈하게 내 마음을 덥히는 것이었다. 오늘은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는 40대 젊은 두 시인의 작품 한 편씩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전에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시인들인데 시집을 읽고 그 이름이 내 마음에 각인된 시인들이다.

고영민 시인은 1968년 충남 서산 출신으로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그는 널리 알려진 그의 시창작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역시 바다에 갔더니, 나와 비슷한 함민복 거북이, 이정록 거북이, 손택수 거북이, 문태준 거북이들이 먼저 장악을 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차별화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글쓰기의 승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차별화의 전략으로 위트, 해악, 쉽게 쓰기, 12남매의 가족사 등을 가지고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가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것 중에 하나가 12남매의 가족사가 있습니다. 남과 다른 가족사를 남과 다른 나만의 작품 구성의 차별화 전략으로 삼겠다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나의 전략이 될까 한동안 생각해보기도 했다. 주제나 소재, 문체에서 남들과 달리 나만의 개성이 빛날 나만의 차별화 전략이 무엇일까. 그것은 내 인생과 내 체험이 모두 녹아든 나만의 독특한 이력이 되지 않겠는가. 고영민의 다음 시는 바로 그의 차별화 전략에 의해 탄생한 가족을 주제로 한 시가 되는 셈이다. 아주 재치와 유머가 반짝이는 재미있는 시다.

주말연속극 /고영민

팔순의 어머니 아버지 두 분만 사시는 고향집에 내려가니 그동안 그럭저럭 나오던 TV가 칙칙거리며 나오지 않는다. 늙은 어머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고 늙은 아버지는 대문간을 지키고 젊은 나는 세워놓은 안테나를 동서남북 돌려보다 신통치 않아 아예, 통째로 뽑아들고 감나무 옆, 뒤란 시누대밭, 장독대 뒤 곁으로 왔다갔다한다.
내가 대문간의 늙은 아버지한테 잘 나와요? 라고 물으면 늙은 아버지는 대문 앞에 서 있다가 할멈, 잘 나와? 라고 묻고 늙은 어머니가 아까보담 더 안 나와요, 하면 늙은 아버지가 다시 말을 받아 아까보담 더 안 나온다, 하고 젊은 나한테 외친다.
나는 또 자리를 옮겨 잘 나와요? 하고 묻고 늙은 아버지는 늙은 어머니에게 똑같이 재우쳐 묻고 늙은 어머니는 늙은 아버지에게 대답하고 늙은 아버지는 젊은 나에게 대답한다.
젊은 나는 반나절 팥죽땀을 쏟으며 그 기다란 안테나를 들고 뒤뚱거린다. 세 사람이 연신 묻고, 묻고 대답하고, 대답한다. 늙은 아버지가 대문간을 지키고 있기가 따분한지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물며 쭈그리고 앉아 대강 나오면 그냥 저냥 보제, 하던 차 굴뚝 옆에 자리를 잡아 안테나를 돌리니 방안에서 아이구야 겁나게 잘 나온다, 라는 늙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늙은 아버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내 귀까지 선명하다. 돌아가지 않게 단단히 비끄러맨다. 방 안에 들어와 채널을 돌려보니 7번, 9번, 11번 다 화면이 선명하다.
저녁 늦게 서울에 올라와 마누라, 자식새끼랑 주말연속극을 본다. 늙은 아버지도 늙은 어머니도 시골집에서 주말연속극을 본다. 참, 오랜만에 늙은 아버지, 늙은 어머니, 젊은 자식놈이 안테나가 맞아 저무는 주말 저녁, 함께 연속극을 본다. 가슴 뭉클하고 선명한 주말연속극. <시집「악어 」에서>

문성해 시인은 196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1998년 매일신문과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비교적 젊은 시인이다. 젊은 시인 중에 쉽게 소통이 되는 시를 발견하면 우선 반갑다. 예전엔 이 시인에 대해 전혀 몰랐다. 시집을 집중적으로 읽는 중에 시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금세 내가 좋아하는 시인 목록에 추가된 시인이다.

각시투구꽃을 생각함/ 문성해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우는 늦여름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멀리 쫓아내 버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
그 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 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
시 한 줄 쓰려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난 각시투구꽃의 모양이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 같다는 것과
맹독성인 이 꽃을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보고서를 떠올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난데없이 우리 집 창으로 뛰쳐 들어온 섬서구 메뚜기 한
마리가 어쩌면 시가 될 순 없을까 구차한 생각을 하다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온
윗집의 뽕짝 노래를 저주하다가
또 뛰쳐 올라간 나를 그 집 노부부가 있는 대로 저주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각시투구 꽃의 밤을 생각한다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고 있을 <시집「입술을 건너간 이름 」에서>

시인이 시 한 줄 쓰는 것은 각시투구꽃이 그 몸에 맹독을 키워가는 과정과 닮은 것인지 모른다. 옛날 궁정에서 사약을 내릴 때 그 사약이 바로 각시투구꽃을 달여 얻어낸 것이라니 그 맹독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한 줄의 시가 그 정도의 맹독을 가져야 읽는 이의 넋을 빼앗지 않겠는가. 독자를 뇌살시키는 마력을 지니려면 그토록 많은 곡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남편 역시 시인으로 오로지 시를 써서 생활을 꾸리고 있다니 얼마나 고단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까. 오늘은 비교적 젊은 두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는 온갖 고뇌와 역경을 체험하고 난 후 남들과 차별되는 고유한 자기 세계가 녹아있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문성해 시인의 시 하나를 더 보기로 한다.

대구/ 문성해

명절이면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손톱이 하얀 동남아인들이 무리지어 제 나라 말로 지껄이며
돈도 마음껏 쓰면서 돌아다닌다
이 도시의 외곽에 기계부품들로 흩어져 살다가
명절이면 텅 빈 도시를 접수한 듯 설치고 다닌다
고국에 보낼 선물도 고르고
영화관도 가고 식당에도 가고 오락실도 간다
밤이면 쌍쌍이 여관도 가고 술집도 간다
이 도시의 명절 매상은 그들이 다 올려준다
일 년 내내 조용하던 이 도시가
명절 다음 날이면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이 도시의 파출소 매상도 그들이 다 올려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늙은 도시가 그들로 인해 회춘을 한다는 것
긴 연휴가 끝나고
이 도시로 복귀하는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왜 물건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섰는가
왜 도로와 골목들은 굽이치며 뒤척이는가
왜 가로수가
전봇대가
공터가 <시집「입술을 건너간 이름 」에서>

문성해 시인은 시 ‘대구’에서도 평범한 일상어를 사용하여 세태의 풍속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혹은 현대시의 새로운 경향을 논하기 이전에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흥미와 감동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물론 쉽게 읽히는 시라야 다 좋은 것은 아니다. 2012년도 노작문학상을 탄 이수명 시인처럼 사물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시를 전개해 나가는 시인의 작품도 역시 훌륭한 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평가나 해설을 떠나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시는 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또 그 시인의 시집을 찾게 된다. 이 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이 바로 읽힌다. 내가 이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매우 독특하고 난해하게 시를 쓰는 많은 시인들 가운데 비교적 평이하게 일상어를 사용하여 시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남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시를 쓰는 비교적 젊은 두 시인의 작품을 함께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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