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을 차리는 교사, 밥을 짓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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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차리는 교사, 밥을 짓는 교사
  • 이정숙
  • 승인 2013.09.17 06: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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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25)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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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을 차리는 교사, 밥을 짓는 교사
이 정 숙 (하정초, 인천교육연구소)

사는 우리가 매일 밥을 먹듯이, 매일 수업을 한다. 그래서 교사는 수업을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수업에 있어서는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함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누군가 지켜보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업 공개가 두렵기만 하다. 10년 아니, 20년, 30년이 넘은 교사일수록 수업에 자신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어느 분야든지 십년이 넘으면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마련인데 말이다.
이 십 여 년이 넘도록 경력이 쌓였지만 늘 수업에 자신이 없는 김 교사는 전문성을 신장시키지 못한 무능함을 자책하면서 각종 ‘수업 연수’, ‘수업 대회’를 기웃거린다. 수업에 대한 ‘자신 없음’이 자신의 게으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수업코칭’, ‘수업설계’, ‘수업 동기유발’, ‘수업자료 개발’에 이르기까지 ‘수업’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마다 관심을 갖고 수업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해왔다.
오늘도 ‘스마트수업’ 연수가 있었다. 내일은 ‘스토리텔링 수업’ 출장이 있다. 지난주에는 ‘국어과 새교육과정 수업 연수’ 출장을 갔었다. 다음 주에는 ‘에듀콜 수업’ 연수가 있단다. 수업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김 교사는 연수를 듣고 나오면서 요즘은 점점 한숨이 쉬어졌다.
“왜 나는 아직도 수업전문가가 아닐까? 그 수많은 책을 읽고 이십년이 다 되도록 매일같이 수업을 해왔고, 수업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고, 이렇게나 많은 각종 연수를 다 받았는데도 아직도 수업은 자신이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연수를 계속 받아야 되는 걸까? 연수를 받아도 수업에 대한 자신감은 늘지도 않는데... 그런데 수업을 왜하지? 수업이 단지 지식의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는데... 수업 연수에서는 즐거움 행복, 또 나아가 아이들의 삶과 가치 그런 것들을 수업에서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내 수업에서 그러한 덕목은 어떻게 찾아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왜 내가 본 공개 수업들은 그러한 가치와 덕목을 찾아보기 힘든가.”
김 교사는 며칠 전 공개수업을 참관한 후 수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답답함을 느꼈다. 참으로 잘 준비된 자료와 잘 훈련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수업의 진정성이 멀어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각종 수업연구회나 발표대회를 참관할 때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 교사의 모습이 보인다. 그 수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몇 달을 고생했을 그 준비과정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그 준비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목적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었음도 언뜻언뜻 보인다. 그 ‘성찬’을 준비하기 위해 희생했을 아이들의 시간과 가식의 모습이 보인다.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는 어쩌다 수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개수업에는 아쉽게도 매일매일 맛있는 밥을 먹고 즐거워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빠져 있다. 그들 앞에 놓인 삶들이 빠져 있다. 하지만 그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수업평가’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독일 학자 M. Weber라는 사람은 ‘인간은 가치와 신념을 가진 존재이므로. 인간의 행위는 이해의 대상이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즉 이해한다는 것은 행위자가 어떤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세계를 바라보며, 신념과 가치가 어떠한 행위로 나타나는 지 아는 것’ 라는 것이다. 교사에게 수업 역시 가치와 신념을 가진 존재가 하는 행위라면 교사의 수업행위는 평가의 대상이기보다는 이해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수업행위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평가자의 가치와 평가자의 눈에 의해 측정된 그만큼의 자료 이상의 것이 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교육행위는 수치화하거나 객관화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질료들과 화학적 발효의 시간을 요하는 잠재된 덕목들로 가득 차 있는 인간행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수업이 그 안에 있는 가치들을 창출해내고 그 가치들로 교감하는 것들을 의미롭게 찾아내려는 대상으로 이해 될 때, 교사는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행위로서 수업을 온전히 자기의 몫으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교사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이나 교육 정책자들의 실적 지향적 운용, 효용적 가치지향 들은 이해보다는 판단을, 판단보다는 평가를, 평가보다는 단죄를 지향해 가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교사들은 수많은 시간을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고 투자하면서도 아직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끊임없이 새로운 ‘수업형태’를 위해 매진 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이나 자신이 가진 가치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오류투성이고 허점 투정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수업을 남루하게 만들어 나간다.
교육의 현장이 언제부턴가 ‘성과’와 ‘효율성’에 경도된 ‘경쟁’의 체제를 당연시하게 되다보니 수업 역시 눈에 보이는 화려한 치장에 치중하게 되고 ‘내재되어 있는 것’, ‘남루한 것’, ‘작은 것’, ‘소외된 것’ 들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것들은 가차 없이 ‘제외’되는 천박한 사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교육이 일반사회와 다르게 지켜내야 할 가장 최후의 보루인 것들까지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교사는 자신이 교사인 한, 교사로서의 직무를 다할 때까지 수업을 한다. 마치 주부가 가족을 부양하고 사는 한, 늘 밥을 짓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세수를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처럼 수업도 일상의 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어쩌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일이 될 수 없다. 파티를 준비하는 ‘쉐프’의 모습처럼 최고의 산해진미를 차려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밥 짓는 일이 허드렛일이거나 아무렇게나 하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밥 짓는 일이야 말로 매일 하는 일이지만 정성과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정말 잘하는 음식점에 가면 밥이 참 맛있다. 오만가지 요리가 있어도 밥이 시원찮으면 그 음식점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성찬을 먹을 수는 없다. 아주 가끔 잘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만족할 뿐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려서 못 먹는 것이다. 너무나 화려하고 영양도 있고 최고의 요리사가 지은 비싼 음식을 매일 먹는다면 물리게 된다. 어머니가 해주신 매일 먹는 밥은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교육이 ‘성찬’만을 마련하는 순간 교육의 의미와 가치들은 깨어진다. 모두들 화려한 ‘성찬’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이들 현실의 모습을 보려하지 않는다. 교육이 매일 밥을 지어먹이는 모습을 닮았을 때에 비로소 밥을 먹는 사람의 모습이 생각나고 밥을 짓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느껴지게 되며 밥의 의미가 새삼 다가오는 것이다. 수업은 교육의 본질을 드러낼 때 가장 의미가 있다. 교육 또한 밥과 같은 의미가 있을 때 그 가치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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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ol02 2013-09-17 18:13:27
너무나 공감이 가는, 오늘 나는 똑같은 수업을 3개반을 다니며 수업했는데... 1개반에서는 아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었는데...2개반 아이들은 밥맛이 없다고 수저들기를 거부했다... 문제풀기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문제해결 잘하도록 한 수업인데... 받아들이는 적응하는 반이 있는 반면... 거부하는 반과 아이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내일 다시 밥을짓기위해 정성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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