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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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피는 희망
  • 유해숙
  • 승인 2013.09.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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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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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으로 내세웠던 핵심 내용들이 모두 축소 또는 폐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하고 지급액도 소득과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내용의 기초연금 도입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애초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던 대선공약 원안에서 대폭 축소된 것이다.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보장' 공약도 환자 부담이 큰 3대 비급여는 제외하고, 일부 고가항암제 등에 건강보험을 더 적용하는 안으로 축소됐다. 또한 무상보육 문제도 재원 부담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고, '반값등록금'이나 '고교 무상교육' 등 교육분야 복지공약과 지방 SOC사업 등 정부의 재정이 충분해야 실현할 수 있는 공약들도 후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한 모양이다.
예견되었던 일이다. 분명 돈이 들어가는 것이 뻔한데 증세없이 가능하다고 우겨서 무슨 마술이라도 부릴 수 있다 보다 했다. 또한 시혜와 선별에 기반한 잔여적 복지철학을 가진 정당이 갑자기 보편적 복지의 다리를 놓겠다는 것에 대해 설마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작은 희망의 씨앗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분명해진 것도 있다. 분배는 정치의 영역이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세력관계와 철학에 좌우된다. 어떤 세력이 자신의 철학을 정책으로 관철시킨다고 했을 때, 정책의 속살은 철학과 세력관계이다. 그런데 잔여주의 철학과 이것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뭉친 집권당이 보편적인 정책을 낳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새누리당이 뻐꾸기 알을 품은 뱁세라면 혹 모를까!
이제 우리는 집권당이 보편적 복지를 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확실하게 접어야 한다. 이것은 정책의 원리에서도 입증된다. 즉 보편적 복지라는 철학을 가진 세력이 정책을 관철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불가능하다. 서유럽의 역사는 이를 증명했다. 영국의 시민들과 스웨덴의 시민들은 복지국가를 열망했고, 이를 위해 노동조합으로 시민사회로 조직화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에서 조그마한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 정치가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정책 입안가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정책전문가 아카데미’는 시민이 정책을 읽고, 만들고, 관철하는 것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위에서 정책을 내리면 수행하기에 급급한 내 모습이 싫어서 정책전문가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책은 전문가 등 특정한 사람들의 영역이라 생각하여 관심이 없었는데 정책이 내가 하는 일과 나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데 내가 모르면 안될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안산의 한 노인복지기관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정책전문가 아카데미’를 열었는데, 이들은 의회 모니터링단을 꾸렸을 뿐만 아니라 노인정책은 물론 지역정책을 만들고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시작은 항상 작았다. 하지만, 역사는 이런 출발과 새로운 상상이 역사적인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도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정치의 주체이고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입안자가 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자그마한 노력이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차라리 박근혜 정부가 나를 실망시킨 것은 좋은 일
인지 모른다. 새로운 희망은 절망에서 시작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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