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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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만세!
  • 김기용
  • 승인 2013.10.02 01: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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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27)
  •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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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만세!
김기용(인천교육연구소기획실장, 석남초교)

  대한민국의 초ㆍ중등교사나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거나 접했을 노래가 있다. ‘꼴찌를 위하여’ 라는 노래다. 제목이 조금 도발적이기도 한 이 노래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한돌이라는 분이 만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각급 학교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한돌이나 주세은 등이 취입한 앨범이나 해웃음, 사람과 나무와 같은 그룹의 음반발매에 힘입은 바도 컸을 것이다. 어쨌든 자연스럽고 쉬운 가락의 이 노래는 많이 불렸는데,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다. 아마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락도 좋지만 꼴찌라는 소재의 가사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도 달리고 있지 / 하지만 꼴찌인 것을
그래도 내가 가는 이 길은 / 가야 되겠지
일등을 하는 것 보다 / 꼴찌가 더욱 힘들다
바쁘게 달려가는 친구들아 / 손잡고 같이 가보자
보고픈 책들을 실컷 보고 / 밤하늘의 별님도 보고
이 산 저 들판 거닐면서 / 내 꿈도 지키고 싶다
어설픈 일등보다도 / 자랑스러운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 꼴찌도 괜찮을 거야

2000년대 초반, 내가 맡은 학급에는 늘 이 노래를 부르자고 졸라대는 녀석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수업시작 전에 이 노래를 부르고 1교시를 시작하곤 했다. 표정을 보니 몰입하여 부르는 품새가 노래가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모양이었다.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더니, “‘일등보다 꼴찌가 더 힘들다’요.”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 뒤 이 아이를 어느 날인가 계산동의 맥줏집에서 만났다. 주문 받으러 온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 누군가 했더니 그 녀석이었다. 솜털만 송송하던 턱이 수염터가 짙어져 누가 봐도 어엿한 20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우리 반 꼴찌였는데, 당당하게 제 몫을 하며 열심히 생활하는 걸 보니 무척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간혹 예전 제자들을 만나면 학창 시절과 졸업 후의 모습이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내가 담임한 반의 꼴찌는 동민(물론 가명)이다. 동민이는 덩치가 크다. 몸무게가 80kg을 넘는다. 그냥 보기에 잘하는 것은 없고 취미도 딱히 없어 보인다. 말은 보통 아이들의 두 배정도로 느려 터졌다. 나를 부를 때 내 귀에는 “선생님~”이 아니라 “서언새엥니임~” 이렇게 들린다. 생각하는 거나 대화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도 못한다. 하고 싶어도 아래 학년의 학습이 되어 있지 않으니 지금 6학년 과정을 따라오지 못한다. 물론 글씨도 엄청 느리게 쓴다. 집안에서는 맞벌이 부모님과 더 크고 과격한 형들에 치여 별로 즐겁지 않다. 성격은? 태평만만이다. 성질 급한 담임들 속 엄청 썩였을 스타일. 나는 이런 경우 방치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보듬어주는 편인데, 요즘에 이 녀석이 약간 우울해 보인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기라 그런지…. 느린 말이나마 말수도 눈에 띄게 줄었고…. 그래서 동민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무겁다.
나는 녀석이 매우 행복하진 않더라도 그냥 편안하기만 하더라도 좋겠다.
다른 반, 다른 학교 꼴찌들은 어떨까?
‘선생님 학교나 반의 꼴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보내 온 고마운 동료들의 답변 몇 가지를 옮겨보면,
‘무기력함, 즉 학습된 무기력의 연속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정도가 다르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무기력함, 도전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리고 도전 하고 싶지도 않은 것…. 이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S초교 N교사)
‘일학년이라 꼴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좀 그렇지만 받아쓰기에서 항상 10점, 20점, 심지어 0점을 받은 아이의 경우 결손 가정이라는 것, 돌봄 교실에 있다가 저녁 때 언니가 데리고 가고 오고…. 제 보기에 꼴찌는 부모님 성적이 아닌가 싶어요.’(P초교 L교사)
관성화된 무기력함, 8살 어린 나이에 이미 보호력이 상실된 가정…. 이런~, 대한민국 꼴찌는 매 한가지이다. 무기력하게 늘어져있고, 집에서는 이 상태를 호전시킬 여력이 없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더하다. 언젠가 고등학교 교실을 빗대어 1학년 교실을 입원실, 2학년 교실은 중환자실, 3학년 교실은 영안실이라고 표현한 글도 생각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한국에서 대학공부까지 마치고 남편 유학을 따라 독일에 가서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가 쓴 글이 있다. 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육의 주안점이 소수의 우등생이 아니라 다수의 하위권 아이들을 보통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교육은 우등생이 성적을 더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진급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극소수 아이들만을 위한 응급처치에 불과하다고 했다. 연동하여 교사들의 중요한 임무도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학교의 수업이 중하위권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기초가 부실한 아이들에게 얼마든지 노력하면 따라갈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교사는 자기의 권한으로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시험 날짜를 비밀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 다른 세상 일 같긴 하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초반, 시험이 끝나면 게시판에 100등까지의 명단이 붙었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면 몇 가지 부류로 갈렸다. 언제나 1등만 하는 천재, 노력하고 노력해도 1등을 따라 잡지 못해 불행한 2등, 명단의 끝에서 보였다 안보였다 그래서 웃다 말다 했던 아이들, 이름 한 번 올리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 그리고 ‘꼴찌’라는 주홍글씨가 붙은 뒷자락 아이들….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가난한 아이와 부자가 친구로 지내는 경우는 간혹 봤어도, 1등과 꼴찌가 친해지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아마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라는 사회적 통념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고 누가 꼭 짚어주진 않았겠지만.
국가나 법률에 앞서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가지고 있는 권리가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라고도 한다.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하늘이 준 권리의 영역에서 꼴찌라고 위축될 수 없다. 만일 뒤쳐졌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주눅 들어야하는 분위기라면,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가 만들고 합의한 제도가 틀린 것 일게다.
행복하게 떠들고 큰 소리로 웃음을 날릴 권리가 꼴찌에게도 있다. 인간이어서 존중받아야 할 것들이 일등이라서 더 받고 꼴찌라고 해서 덜 받을 수가 있는가?
아마 15년도 넘었을 오래 전 일일 것이다. 국내 굴지의 ㄷ그룹에서 다음과 같은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그러나 누구라도 때가 되어러나음만 있으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이 채용조건을 우리들의 꼴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3일 동안 밤을 새울 수 있는 사람. 3일 동안 놀 수 있는 사람. 노래방에서 서른 곡은 부를 수 있는 사람. 아버지 시계를 분해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3개 국어는 못 해도 3개국 이상을 배낭여행한 사람. 못생긴 파트너를 만나도 세 시간은 봉사하는 사람. 비 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사 본 사람. 차비를 몽땅 친구에게 주고 자기는 걸어가는 사람. 학교를 가다 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 본 사람.
대한민국 꼴찌들이여! 부디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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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3-10-02 21:36:09
마음에 와 닿는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편집이 조금 엉성하군요. 좋은 내용도 걸맞는 좋은 틀에 담긴다면 더 빛을 발할텐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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