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갈등,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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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갈등,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부터
  • 강창대 기자
  • 승인 2013.10.19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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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수노조 상황에서 노조 간 경쟁심리는 죄수의 딜레마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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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무실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사무실로 찾아와 노조의 정책에 반대든 찬성이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요. 교섭상황도 동영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궁금하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 찾아와 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삼화고속 해고 승무원 최영완 씨의 항변이다. 최 씨는 <인천in> 8월 6일자에 보도된 ‘복수노조 시행 2년, 노조 운영 빨간불’의 내용이 마뜩잖은 기색이었다. 사실, 이 기사는 삼화고속의 제1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삼화고속지회(이하 제1노조) 이외의 소수 노조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계획했던 것이다. 소수 노조들은 대부분 현 지도부가 독선적으로 투쟁을 이끌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었다.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소수노조들은 소외돼 있다는 불만이었다.

“소수 노조 조합장 대부분이 여기(현 제1노조) 간부였습니다. 2011년 10월에 있었던 37일간 파업의 모든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죠. 현 지도부는 과거처럼 승무원들의 인사를 좌우할 권한도 없고 권위적이지도 않습니다.”

최 씨는 지도부가 독선적이라는 소수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탈퇴하고 새로 노조를 결성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후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승무원들이 좀 더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 모를까, 오히려 후퇴한 근로조건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요. 우리도 제대로 된 식사도 하고 휴식을 취하며 일할 권리가 있는 거잖아요. 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권리조차도 포기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최 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제1노조가 소수노조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양 진영 모두 서로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서운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급여 조건이 개선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회사가 노조와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아요.”

파업투쟁 결과 더 나은 근로조건에 대한 사측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다. 2011년 10월 10일부터 시작된 37일의 파업으로 노사는 ▲광역버스 노선 격일 근무에서 1일 2교대 근무로, ▲고속버스는 4일 근무 2일 휴무를 원칙으로 하고 조합원이 원할 경우 3일 근무 2일 휴무를 허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광역버스의 경우 통상임금 기준으로 240만원에서 260만원으로, 고속버스는 시급 4.5% 인상하는 것으로, 야근수당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삼화고속은 감차운행 등을 자행하며 승무원들이 소정의 근무일수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온전한 급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근로기준법이 정한 규정조차 어기며 노사갈등을 초래했다. 그리고 기어이 노선까지 줄여 노조에 대해 구조조정 압박을 가했다. 이에 노조는 준법투쟁으로 응수해 왔지만, 이 때문에 몇몇 노조원은 부당한 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노사갈등이 심화되고 장기화되면서 노조원들 또한 심한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과가 불투명할수록 가슴 한쪽에서는 투쟁에 대한 회한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매일 반복되는 갈등상황, 그리고 이로 인해 겪는 생활고가 깊어질수록 투쟁에 대한 염증이 있었을 것이다.

삼화고속의 노노갈등은 ‘죄수의 딜레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죄수의 딜레마는 수사관의 심문과정에서 두 공범자가 서로를 배신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말한다. 서로 협력해 범죄사실을 감춘다면 증거가 불충분해 낮은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음에도, 상대방의 범죄 사실을 밝혀주면 형량을 감해준다는 유혹에 서로의 죄를 폭로함으로써 둘 다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는 사회의 매우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사교육이다. 전문가가 사교육의 학습효과는 과장된 것이라 주장해도 좀처럼 사교육 열풍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데 내 아이만 안 시킬 수 없다는 불안심리를 사회가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계층이 부자와 가난한 자로 이중구조화된 사회에서 이런 불안심리는 부의 양극화를 지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사교육이라 하더라도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그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부자는 사교육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흉내 내며 항상 쫓아가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노조 간의 경쟁심리는 죄수의 딜레마를 낳는다. 

제1노조가 처우개선을 위해 사측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노조원의 심리는 불안하게 마련이다. 그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처우개선은 물론이고 더 많은 노동자들을 노조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노조원들은 불만세력으로 낙인찍혀 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이때, 사측이 달콤한 조건을 제시하며 자신들에게 협조하라고 제안한다면 딜레마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갈팡질팡하며 팽팽하게 유지되던 심리적 긴장감이 무너진 노조원은 투쟁의지를 접고 끝내 조직탈퇴로 이어지게 된다. 

아마도 투쟁을 포기한 노조원은 근로조건이 다소 후퇴하더라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리 아니면 패배밖에 없는 투쟁의 상황 속에서 이들은 배반자로만 남게 된다. 투쟁의지를 다지고 조직을 결속시켜야 하는 제1노조의 입장에서 이들은 배신자 또는, 어용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상호협력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호협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해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즉,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두가 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일 것이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익을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타 노조의 것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된 노조가 다르다고 해서 협력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죄수의 딜레마를 ‘착한 것이 이기는 게임’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물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된다면 더 바람직하다.

※ 참고: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정태인, 상상너머, 20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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