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알츠하이머병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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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알츠하이머병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김정아
  • 승인 2013.11.05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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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 햇살노인전문기관 온가정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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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든 다섯 살 되시는 박ㅇㅇ 할아버님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 받은 지도 벌써 12년째다. 오늘도 부인께서 혈압약을 타러 오셔서 한 달 동안 어찌 지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신다. “영감은 잘 지내고 계세요. 맨날 나를 놀려요. 곁에 와서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헉, 놀랬지?” 하기도 하고 내가 ‘이제 우리도 슬슬 죽을 준비를 해야지요?’ 하면 ‘나는 안 죽어, 자네나 죽어, 그러면 나 새 장가 가야지’하고 낄낄 웃으세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사도 안 틀리고 옛날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면서 요새 유행하는 노래도 흥얼거리기도 하고…  나한테 맨날 놀자고 그래요. 어렸을 때 하던 공기 놀이, 집에 굴러다니는 것 들 가지고 뭔 놀이도 하고, 허리 아프다고 만져 달라고 하는 것도 장난처럼 그러는 것 같아요. 젊어서는 좀 깐깐하고 말도 많이 안 하고 그렇게 흥에 겨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상한 치매가 왔나 봐. 내가 좀 시큰둥해 있으면 나 보라고 재롱을 떨어요. 병이 들어 측은하기는 하지만 그냥 소꿉 장난 하듯이 그렇게 살아요. 어쩌겠어요? 어쨌든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아서 내 손으로 영감 장례 치러야 애들에게 폐가 안 될 텐데 그게 걱정이지요.” 그녀는 우리 환자 중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부인이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대규모 치매 역학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율은 8.4%로 약 42만 명이 넘는 숫자였다. 그 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어 5년이 지난 지금, 치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거부감도 어느 정도 완화되고 새로이 치매로 진단 받는 환자수도 늘어나면서 그 가족까지 합치면 거의 300만 명이 치매와 함께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병원이 노인의료복지와 연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치매, 노인, 잘 늙어가기 등 내 주변은 온통 노인 이야기이다.
 
10월 한 달만 하더라도 2일에는 인천남구노인문화센터에서 노인의 날을 기념하여 건강지킴이 행사를 가졌다. 우리 기관에서는 기본 검진과 함께 우울증과 치매선별검사에 치중하는데, 건강해 보이는 피검사자 140명 중 약 15%가 KMMSE 점수가 24점 미만이라는 결과를 얻고 나서 우려하는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지난 주에는 ‘아이리스(IRIS)’라는 비디오를 봤는데, 주인공 아이리스 머독은 화려한 언어의 유희를 자랑하던 작가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서 그녀로서는 생명과 같은 언어를 잃어가는 과정을 부부의 사랑과 함께 그려나간 영화이다.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EBS 국제다큐영화제 가족 섹션의 네 작품 중에서 ‘마리안과 팸’ ‘나의 어머니 그레텔’ 두 작품이 모두 알츠하이머병으로 떠나 보내는 나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이 가을 우리 병원의 북클럽에 선정된 책은 정신과 의사인 이근후 선생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다. 올해 일흔 여덟 살 되시는 선생님은 이 책에서 치매에 대해 ‘인간의 존엄함마저 잃어버리고 본능적인 욕구만 남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우나 그래도 인생의 기나긴 여정에서 치매 증세가 나에게 일어난다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식들에게도 ‘너희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는 것처럼 나중에 네 아비가 치매에 걸려 헛소리해도 똑같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똑똑하신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저렇게 되셨을까’하고 시비 삼지 말아라. 너희들도 슬프고 나도 슬픈 일을 굳이 표현해서 더 우울해지지 말도록 하자”고 하신다.
이 영화나 책에서나 공통적인 것은 그 어렵고 지치는 과정을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울고 낙담하고 화를 내기도 하였지만 아이리스가, 마리안이 그리고 우리 박 어르신이 변화하는 속도대로 가족들이 맞추어 나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편안하겠냐 마는 그래도 질병과 함께 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이런 발표를 했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백만 미국인들 중에 한 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낸시와 나는 내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유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 불행하게도 내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이 점차 심해지면 가족들이 힘든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내 아내 낸시를 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구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가 오면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굳게 맞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도 치매 병동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정도이다. 가정에서 돌봐드리지 못 할 정도로 행동증상이 심한 경우 입원을 하시게 되니 당연한 일이다. 판단력이 없으신 어르신의 돌발적인 사고도 방지해야 하고 어르신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처치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가족과 의료인이 서로 격려하면서 어르신이 편안하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도 마음 수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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