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장님께... "우리의 일상을 되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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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장님께... "우리의 일상을 되찾아주세요"
  • 김보람
  • 승인 2013.11.22 2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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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보람 / SK석유화학을 반대하는 인천엄마들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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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천시청 정문 앞에서 'SK석유화학을 반대하는 인천엄마들 모임' 등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시장님께.

처음, 인천에 집을 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사할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인천에 산다는 것은 옆 도시의 쓰레기를 내 집 앞에 받아주면서 “미안해, 고마워”라는 소리 한 번 못 들어본 채 “앞으로도 너희 집 앞에 영원히 버릴 거야”라는 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들어야 한다는 의미였고, 주택가 한복판에, 초등학교 바로 앞에 발암물질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공장이 들어서면서 주민설명회 한 번, 공청회 한 번 없어도 된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그리고 인천에 산다는 것은 높은 굴뚝위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냄새를 맡으면서도 기준치 이하니까 참아야 하고, 내 노후를 책임지고 지켜준다는 국민연금이 발암물질을 내뿜는 공장에 투자해도 지역정치인 어느 누구 하나 항의하지 않는 곳에 산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수천 명의 엄마들이 거리로 나와 내 아이의 생명권을 지켜달라고 울부짖어도 방송이나 언론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지역에 산다는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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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에 서구청 앞에서 열렸던 집회에서 결의문을 낭독하는 엄마들.

분당엄마들이 보호관찰소를 이전하라며 2천 명이 모였을 때는 긴급 대책회의까지 소집하던 국회의원들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우리의 외침에는 묵묵부답일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 일하겠다며, 꼭 뽑아달라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지역의 구의원, 시의원들이 삭발투쟁, 단식투쟁은 고사하고 어쩌면 저렇게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 노후를 책임지겠다며 안심하라던 국민연금이 내 돈으로 우리 동네에 발암물질을 내뿜는 공장에 투자해놓고도 사과한마디 없이 어쩌면 저리도 태평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강남 시민이었어도, 목동 시민이었어도, 분당 시민이었어도 국회의원들이 저랬을까? 국민연금이 아직까지 저토록 당당할까? 언론사, 방송사가 이렇게까지 무관심할까?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인천시민인 게 더, 더 서럽습니다.

9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10월의 첫날을 서구청 앞 집회로 보냈습니다. 수천 명의 엄마들과 함께 붉은 물결을 이루고, 어린 학생이 나와 대통령께 쓴 편지를 읽고, 아기엄마들이 아기띠를 두르고 나와 행진을 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고, 그래도 답답해서 SK 공장 앞에서 촛불을 들고 다시 모였습니다. 추운 밤, 따듯한 이불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재워야 할 그 시간에, 퇴근하고 들어오는 지친 신랑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 손에 촛불을 하나씩 쥐어주고 차가운 길바닥에 앉혀 불 꺼진 공장 앞에서 ‘SK아웃’을 외쳤습니다.

높으신 국회의원님들 한번 뵙겠다고, 환경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국회의원들께 우리 문제도 다뤄달라 말하려고, 내 아이와 가족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고 호소하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매립지 정문에서도 기다렸습니다. 그날은 내 아이 유치원도 못 보내고 매립지 먼지 마시게 하면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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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매립지관리공사 입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한 엄마들.

집회다, 일인시위다, 민원이다, 커져만 가는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떼만 늘어가는 아이에게 “미안해. 정말, 정말 마지막이야. 너를 위해서야”라고 눈물로 다독이며 서구청 앞에서 우리의 요구를 외쳤습니다. 

그러고도 시청집회까지 나갔습니다. 추운 그날에도 아이에게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엄마, 여기까지만 할께”라고 말하면서 못난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와 길바닥에 세웠습니다.

시장님, 인천에 사는 것이 서럽습니다.

인천에 산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바로 앞, 우리 집 코앞에 발암물질을 내뿜는 공장이 지어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서럽습니다. 이렇게 목소리 높여 울부짖는데 중앙언론사, 방송사 어디 하나 우리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것이 또 서럽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민원을 넣어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는 국민신문고가 서럽습니다. 집회를 몇 번이나 해도 요지부동 아무 변화도 없는 서구청이 우리 관할관청인 게 서럽습니다. 

더 서러운 것은 내 가족과 내 아이의 생명권이 침해받고 있는데 공장이 1조 6천억 원짜리라며 자본의 논리를 들이미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1조 6천억짜리 어마어마한 공사라고, 지금 중단되면 손해가 엄청나다고, 나라경제가 휘청할지 모른다고.

그런데 1조 6천억짜리 저 공사가 과연 1조 6천억답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그 거대한 돈에 걸맞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해서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사전에 설명회를 하고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지금 주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경청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위법, 탈법사항 없이 공정하고 바르게 증설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1조 6천억답게 진행되지도 못하는 공사입니다. 1조 6천억이라는 멍에를 우리에게도 지우지 마시고 시장님도, 인천시도 지지 않길 바랍니다. 부디 1조 6천억이라는 자본의 눈이 아닌 인천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인천시의 수장으로서 저희를 바라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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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지역의 한 아파트와 초등학교 뒤로 현재 증설 중인 SK인천석유화학 공장이 보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 하셨습니다. 군(君)은 군답게 임금의 일을, 신(臣)은 신답게 신하의 일을, 부(父)는 부답게 어버이의 일을, 자(子)는 자답게 자녀의 일을, 그렇게 맡은 바 자기의 소임을 다하면 나라가 평안하다는 말이지요.

저희는 어버이입니다. 다 평범한 엄마들입니다. 아침이면 신랑 넥타이 매주며 출근시켜 보내고,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에 간식 챙기고, 저녁이면 주방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퇴근하는 남편을 맞는 주부입니다. 저희가 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군군신신부부자자’하게 힘써주세요. 

인천시의 수장인 인천시장님! 인천시민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장님으로서의 소임을 다해주세요. 인천시 공무원님들! 인천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해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어버이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엄마들이 아이에게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생명의 눈으로 저희를, 저희 아이를 바라봐주세요. 

그래서 인천에 사는 것이 서럽지 않도록, 인천에 사는 것이 자랑이 되도록 그런 인천을 만들어주세요.

SK석유화학을 반대하는 인천엄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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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1일, 공장 증설 현장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엄마가 인천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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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냄 2013-11-23 13:17:54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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