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진초 네 번째 소설집 '당신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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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진초 네 번째 소설집 '당신의 무늬'
  • 배천분
  • 승인 2013.12.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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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방탕, 그 ‘사이’를 가로지르다
 
당신의 무늬.jpg

김진초 소설집 '당신의 무늬'가 출간됐다. 등단 이후 두 권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소설집을 내놓은 중견 소설가 김진초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소설에는 기둥, 재혼, 사랑, 성폭행, 관계, 억압, 바람둥이, 집착, 가난, 기억, 싱글맘, 생존, 지구, 불통, 사육, 외도 욕망, 스타의 이야기가 결결이 물들거나 뼈아프게 파인 슬픔으로 절절하게 수 놓여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집착하고 연연하며 살아가는 이 무정한 사람들이 인생에, 유연한 삶의 대처 방식을 아울러 일러주고 있다.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언어의 의미나 상징을 뛰어넘어 육체가 본능으로 느끼는 ‘사람 무늬’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그런 ‘사람의 무늬’는 이 작품집에서 특유의 단층으로 맞물려 다층적 서사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주지영 문학평론가는 “김진초 소설가는 소중한 대상의 죽음에 대한 애도 끝에 도달하게 되는 ‘자기’의 회복으로 작가는 그 바탕에 늘 ‘사랑’을 깔아두고 있다. 그것은 <이과두주>에서 볼 수 있는 타인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고 <거울을 보는 여자>에서 볼 수 있는 자기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라며 사랑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으로 고통과 상처에 대한 고민이 거듭된 뒤에라야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평론했다.
 
작가는 여기서 신산한 사람의 속내를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우연, 폭력, 사랑, 원한, 죽음, 등 복잡하게 다면성을 가진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데’ 누구보다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본능, 본성을 다각적으로 묘사하고 언어의 의미를 넘어선 어떤 감으로 다가오는 느낌에 더 치중한 이야기를 특유의 감성과 정직성으로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김진초 작가는 “그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묶는데 의미를 두었다. 어차피 독서를 등진 세상 사람들한테 눈 흘길 기운도 없다. 세상 공부, 사람 공부하는 게 좋아서 소설가가 되었으니 쓰고, 발표하고, 묶어내면 그만이다. 돈도 명예도 얻지 못하지만, 직무유기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여섯 번째 책을 내놓는다.”라며 좀 슬프지만 그래도 나는 소설 쓰는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전했다.
 
작가의 말에서
무늬 한 상을 차려 낸다.
얼룩이나 흠집이 만들어낸,
기둥, 재혼, 사랑, 성폭행, 관계, 억압, 바람둥이, 집착, 가난, 기억, 싱글맘, 생존, 지구, 불통, 사육, 외도 욕망, 스타의 무늬다.
결결이 물들거나 뼈아프게 파인 슬픔의 무늬 열여덟 개를 모아 무늬 전시회를 연다.
 
아무리 종이 책이 없어지고 소설이 죽었다고 코웃음 쳐도, 누구인가 영혼의 색깔이 같은 사람은 그의 소설을 읽고 ‘슬픈 기둥’의 깊은 뜻을 알아볼 것이다. 정연희/소설가 예술원 회원
 
김진초의 작품들은 자연이 빚어놓은 수석처럼 아름답고 천의무봉 하다. 정건영/소설가
 
여기 실린 소설들은 앙상하게 저 혼자 메말라 버린 사유가 아니라, 골이 욱신거리는 자의식의 신음이 아니라, 오로지 ‘이야기’들이다. 그저 범상한 네 이야기, 내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솟고 재미가 배어나오는 것인지……. 지나쳐 걸으려 해도 저절로 발이 멈춰 다음 이야기를 마저 듣게 된다. 김윤식/시인,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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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초의 《다양한 무늬》는 사람 개인이 역사가 쌓아온 무늬의 모습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수놓아진 작품이다. 김성달/소설가
 
소중한 대상의 죽음에 대한 애도 끝에 도달하게 되는 ‘자기’의 회복, 작가는 그 바탕에 늘 ‘사랑’을 깔아두고 있다. 주지영/문학평론가

김진초는 경기도 송추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계간 ‘한국 소설’ 신인상에 ‘아스팔트 신기루’ 당선으로 데뷔하였다. 1999년 한국소설문학상에 ‘귀먹은 항아리’가 추천 우수작 선정되었고, 2001년에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가 출간되었다. 2002년에는 이노블타운에 장편 ‘머플러’를 연재하고 2004년에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소설집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을 출간하고2005년에는 장편소설 ‘시선’을 출간했다. 2006년에는 제17회 인천문학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 계간 ‘학산 문학’ 편집장 직을 맡았다.
 
이 소설집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함피로 떠나는 그 과정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슬픈 기둥》. 핏줄의 고단함과 처연함이 절절히 녹아나는 《엄마가 간다》. 붉은 달 보다 더 달뜬 첫사랑 이야기 《자월도》. 성폭력의 과거에 사로잡힌 여인의 모습을 아이의 울음소리에 접목시켜 큰 울림을 주는 《울음소리》.
남의 삶에 간섭하고 거들다 낭패 당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오지랖 보고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모습을 무궁화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수작 《백단심 지다》.
평생토록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죽은 친구를 기리는 술 한 잔 《이과두주》. 죽음의 탐미적인 모습 《자이살메르에서 죽다》. 평생 소식 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기막힌 사연 《아버지의 허기》. 집 안과 밖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배터리를 뺀다》. 딸과 어미의 시린 과일즙 같은 모정이야기 《시드니 통신》. 지하철 역무원들의 달려야 사는 이야기 《달려야 산다》 지구남자와 우주여자의 살아있는 살점을 느끼는 섹스 《에우로파》. 딸이 삼십 년 기다린 선물 《미미인형》. 꾸미고 가꾸기에 강요당한 여자의 삶 《거울 보는 여자》. 화투의 파투를 인생의 파투로 확장시킨 《파투》. 조선족 여인들의 꿈과 신산한 현실 《지금》. 스타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야식》. 

이렇게 18편의 이야기가 난장(亂場)처럼 펼쳐진 것은 작가가 이런 무정한 인생의 난장(亂場)의 삶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부피의 횡적 시간으로 흘러버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았거나 지나쳐올 예측의 순간까지 종적인 시간으로 두텁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것은 작가 김진초의 지겹도록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보아서 얻게 된 기다림의 미학 혹은 보상인 것이다.

독자들은 김진초의 소설 《당신의 무늬》를 읽으면서 몸 곳곳에 느껴지는 자신의 무늬를 느낌으로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집착하고 연연하며 살아가는 이 무정한 사람들이 인생에, 유연한 삶의 대처 방식을 아울러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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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자는 새해 소망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치’ 소설집을 내고 싶다. 3년 전부터 각종 김치를 주제로 단편소설을 썼다. 현재 12편을 완성했고 그중 10편은 각종 문예지에 발표했다. 아직 한 편을 못 썼는데 그게 바로 보쌈김치다, 보쌈김치만 완성되면 출간할 계획이다. 새해엔 김치 소설 내줄 출판사부터 알아볼 생각이다.”라며 할 일이 분명한 새해가 기대되고 설렌다. 나를 설레게 하는 소설이 이래서 좋다. 소설가는 지루할 새가 없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비극적인 결말이 오히려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부른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날 선 불편함, 둔중한 울림이 더 많은 작품에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삶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이번 작품집에 이어 작가는 또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궁금증과 함께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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