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미군기지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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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미군기지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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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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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천 한만송 기자 '캠프마켓'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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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신문>부터 <시사인천> 기자로 10년 동안 취재해온 한만송 기자가 모은 자료를 종합해 ‘캠프마켓’을 출간했다.

이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부평미군기지, 그러나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 베어있는 가슴 아픈 ‘캠프마켓’의 과거와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천에는 1945년 9월부터 미군이 주둔했다. 보급창, 의무대, 공병대, 통신대, 항공대 등의 주한미군부대들이 부평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1970년 초반까지 미군기지들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때도 부평미군기지는 경기북부, 대구, 부산 등지의 전략적 기지들과들과 함께 계속 존재해왔다.

부평에 주둔한 주한미군은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 Army Service Command)였다. 그래서 부평 미군기지를 ‘애스컴’으로 불렸다. 애스컴은 1973년 6월 부평지역에서의 공식적인 기능을 마치고 해체된다. 그리고 그 자리는 캠프마켓(Camp Marcket)이란 이름이 붙혀진다.

캠프마켓은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의해 2008년까지 반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캠프마켓이 이사갈 평택미군기지 조성사업이 미국의 재정난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2016년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과 인천시는 캠프마켓 부지에 대한 국유재산관리, 처분의 원활한 시행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에따른 토지활용계획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고있다.

이 책은 조선말까지 현 캠프마켓 부지와 주변 땅의 주인이었던 세도가 민태호와 그의 입양 아들, 우국지사 민영환의 이야기와 우여곡절을 거쳐 이땅을 민영환의 식객인 친일파 송병준이 강탈하게된 과정부터 시작한다.


1부 오욕의 땅 부평미군기지

2부 조선 최대 군수 공장, 부평조병창

3부 조병창과 미군기지 노무자들이 선택한 죽산 조봉암

4부 일제에 이어 미군도 병참기지화 한 부평

5부 한국 최초의 기지촌, 부평의 명암

6부 폐허에서 재건사업

7부 한국대중음악의 산실 애스컴

8부 인천 주미노조

9부 주한미군의 감축과 철수는 왜 이루어졌는가?

10부 미군기지 반환 vs 이전

11부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의 시발, 인천시민회의

12부 미군기지 문제 정치 쟁점화시킨 부공추

13부 캠프마켓 환경오염의 실태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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