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가 아닌 당장의 농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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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가 아닌 당장의 농지 위기
  • 박병상
  • 승인 2010.06.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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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전남 무안군 몽탄면과 나주시 동강면 경계에 흐르는 영산강 줄기(농경지)를
지난해 10월 헬기에서 촬영한 모습.
물줄기가 180도로 휘돌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지역에도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인천 선학지하철 역에서 버스종합터미널 방향으로 걸으면 오른편 길가에 비닐하우스 여러 동을 엮은 화원들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인천 시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농토가 제법 넓게 펼쳐진다. 올해 이맘때면 밭이랑에 검은 비닐멀칭이 덮이고 고추와 상추 묘가 심겨야 할 텐데, 올봄의 날씨가 하도 수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개발 신호가 나와 그런지 조용하기만 하다. 어느새 도시 한 복판이 된 농토라서 땅값이 여간 아닐 테니 금싸라기 땅이다. 농사 이외의 개발행위가 제한된 지역이 아니라면 농사 수입으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겠지. 개발 압력이 매우 드셀 지역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개발이 예정된 모양이다. 고추 묘를 심었던 밭 한가운데 대책위원회 펼침막을 붙인 작은 비닐하우스가 새로 섰고 그 안에 접이식 의자와 탁상이 놓여 있지 않은가. 주민 동의 없는 토지수용을 결사반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위원회 사무실은 찾는 이 거의 없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데, 주민들은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 않다. 보상 조건을 조율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건가. 도시의 여백 한 군데가 또 사라지겠군. 시민들은 얼마나 답답해질까. 개발보다 수지가 작다고 이렇듯 도시의 농토를 없애버리면 정작 시민과 후손 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농촌의 땅값도 전 같지 않다. 농지를 구입한 귀농인은 농산물로 융자금의 이자도 나오지 않는다던데, 수입농산물이 더욱 늘어야 하나.

지난 3월 21일 정부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10’ 보고서에 의거, 현 추세라면 10년 뒤에 우리 농지가 목표치 이하로 줄어들 수 있어 ‘식량안보’에 빨간 불이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27퍼센트인 식량 자급률을 30퍼센트로 끌어올리려면 최소한 165만 헥타르의 농지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2008년 기준 176만 헥타르였던 농지가 10년 뒤에 17만2천 헥타르가 줄어 목표치에 미달한다고 한국농촌경제연구소가 전망했다는 거다.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시설과 세종시, 기업과 혁신도시의 부지에 대규모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하는 정부는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고 사회간접시설의 기반도 충분히 확보한 만큼 당분간 농지 전용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행인긴 한데 정부는 갯벌 매립지의 일부가 농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언뜻 정부가 우리의 고질적인 식량 사정과 농지 부족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음이 흔쾌하지 않다. 30퍼센트의 식량자급도 채우지 못하면서 농지보전 운운하다니. 자급 30퍼센트 이하가 되면 빨갈 불이 켜지는 식량안보는 무슨 이유로 30퍼센트가 넘으면 괜찮아진다는 걸까. 현재 우리가 먹는 식량의 70퍼센트 이상을 가깝거나 먼 외국에서 거대한 배나 비행기로 크거나 작은 돈을 부담하며 운반해야 한다. 그런데, 수입 양이 69퍼센트 이하면 안전하고 71퍼센트 이상이면 비상이 걸리는 이유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은 없다.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높인다면 식량안보를 위한 최소 농지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편 농촌경제연구원의 담당 연구위원은 “농지를 최대한 보전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전했지만 우리 정부는 경각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30퍼센트 미만의 식량 자급률은 내일을 대비해 진정 참을 수 있는 수준일까.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 식량 부족을 해마다 호소하는 북한의 식량 자급률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건데,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보다 사정이 나을 수 있을까. 필요한 식량을 보유한 외화로 언제든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알량한 30퍼센트 자급률로 식량안보를 확신하게 만든 걸까. 그런 가정은 수출국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할 텐데, 지구온난화가 견인하는 지구촌의 사정은 이미 전 같지 않다. 자국 사정이 불안해도 남의 나라에 제 식량을 흔쾌히 퍼줄 국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경작지의 사막화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지나친 화학농법은 세계 식량의 생산량을 점점 감축시키는 실정이다. 그 뿐인가.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을 끌어 올릴 석유위기는 농작물 운송과 보관 비용을 상승시키면서 국제 식량 가격과 연동될 텐데, 수입으로 확보하려는 우리의 ‘식량 안보론’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게 아닐까.

아무리 많은 돈으로 협상하려 해도 유권자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모자라는 자국의 식량을 남의 나라로 넘기지 않을 것이다. 거대 창고를 소유하는 기업은 은근히 수출하려 들지 모르지만 그 나라 정부가 말릴 게다. 평소 남는 밀을 수출하던 카자흐스탄은 몇 년 전, 기상악화로 생산량이 줄자 긴급 수출관세로 해외 반출을 억제한 바 있다. 그러자 선물 거래로 곡물 가격을 조절하는 투기세력의 준동으로 국제 밀 가격이 일제히 수직상승했는데, 우리의 외환은 언제나 쾌청한가. 외국의 투기자본이 물러서는 순간 갑자기 쪼들려지는 우리의 구조에서 70퍼센트가 넘는 식량의 해외 의존은 내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최근 의식 있는 세계의 농업 활동가들은 ‘식량안보’가 아닌 ‘식량주권’을 제창한다. 식량기지를 주권 차원에서 자국 내에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말하는 거다.

정부는 갯벌 매립으로 확보될 농지가 있다는 점을 덧붙였지만 그 정도의 면적은 식량주권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갯벌이 가진 식량 기지 가치는 매립으로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하지 못했다. 우리 해양연구소는 10여 년 전, 육지의 농지로 효율이 가장 높은 논과 비교할 때 갯벌에서 생산되는 어패류는 칼로리로 10배, 가격으로 3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지 않았던가. 통일을 대비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둥, 개발로 사라지는 농지만큼 보전할 것이라는 둥, 약속을 남발했던 정부의 새만금 간척공사는 대부분의 부지를 역시나 개발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농번기가 따로 없고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어도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보장해준 갯벌은 식량주권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제한다. 게다가 더워진 바다에서 전에 없이 빈번해진 너울성 파고를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완충해준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더욱 소중한 갯벌을 매립하고 식량안보 운운하다니. 손바닥만큼 남은 갯벌마저 매립하지 못해 안달하는 인천 역시 단기 수익을 위해 내일의 삶을 저당한 선조였다는 후손은 원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화 억제를 위해 지방도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지점이 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세종시 들을 위해 멀쩡한 농지를 반드시 매립해야했나. 기존 주거공간을 얼마든지 보완할 여지는 없었나. 그나마 이제 농지 훼손이 당분간 없을 거라 확인해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지방자치단체마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그린벨트 개발행위는 농지 파괴와 무관한가. 어지럽게 흩어진 비닐하우스는 시민들이 주로 먹는 잎채소를 재배한다. 비닐하우스가 지저분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깨끗하게 개선하면 된다. 잎채소는 우수한 식량이다. 수입 잎채소에 번번이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는 마당에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이라며 우리 유기농의 역사이자 산실인 팔당마저 파괴하려 든다. 자전거도로와 위락시설을 위해 유기농산물 단지를 파괴하려는 정부의 행위는 식량주권의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을까.


부산지역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는
28일 오전 부산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 낙동강권역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항공사진, 동영상 등과 함께 공개했다.

성주보 강창교 사이 구간의 둔치가 잘려나가고 준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낙동강지키기 부산시민운동본부 제공)

지금 눈이 있다면 ‘4대강 사업’ 현장을 환경운동가들과 둘러보고 귀가 있다면 그 처참한 결과가 후손에 미칠 악영향을 생태학자와 수리학자, 그리고 인문학자 들에게 들어볼 필요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탐하는 게 아니라 후손의 내일을 걱정한다. 강물을 정화할 뿐 아니라 밀물고기의 산란장이 되는 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배가 다닐 정도의 깊이인 최소 6미터 이상 준설되고 있다. 그로 인해 드러난 처참한 광경은 이 나라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의 종말을 연상케 한다. 심각한 건 작업자들이 과로로 쓰러질 지경으로 밤새 퍼올린 토사가 인근 농지에 막대하게 쌓인다는 거다. 미국 기준치보다 높은 중금속과 독성물질이 농축된 토사를 정화 처리 없이 6미터 이상의 높이로 농지에 안정장치 없이 쌓아 놓기만 한다면 식량주권은 물론, 정부가 되뇌는 식량주권에도 역행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시방 선조가 온전히 물려준 4대강과 주변의 풍요로운 농지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생태적 범죄,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농지는 10년 뒤에 부족해지는 게 아니다. 현시점에서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보아야 옳을 지경이다. 식량주권의 확보를 위해 식량기지를 확보하려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기존 농지의 절대보전은 물론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농지 자원을 세심하게 살펴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골프장이나 목장으로 사용하는 부지를 건강한 농토로 전용하는 방안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갯벌 매립의 중단은 물론이고 기존 간척지라도 둑을 헐어 갯벌을 복원하는 일도 멀지 않은 내일 다급해질 게 틀림없다. 아무튼, 당장 후손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 농지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봄의 날씨가 유난히 추워 제대로 농촌은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고, 냉해를 입은 과수원에 꿀벌이 찾지 않았다는데, 이렇듯 기상이변이 심화되는 이때, 농지의 확보처럼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다. 10년 뒤를 걱정할 만큼 절대 한가롭지 않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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