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이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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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들려
  • 김국태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부평초등학교)
  • 승인 2014.03.25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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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46)
김샘은 작년 3월이 끝나가면서 ‘내비게이션 교사의 3월’이라는 칼럼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샘에게 새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설레임의 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잔인한 3월이기도 하다. 올해도 반복되는 업무 처리로 정신이 쏙 빠지고, 쏟아지는 공문으로 마감시한에 쫓겨 처리하느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설명하기에 바쁘다. 3월에 집중되는 업무속에서 김샘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어떻게든 교사의 의도와 룰에 따르게 할 것인가, 소위 ‘말 잘 듣는 아이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고민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오랜 경험의 습관으로 아이들을 한 달 동안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일 년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다. 지난 번 칼럼의 말미에 썼던 기억처럼, 여전히 김샘의 3월은 내비 본능과의 질긴 싸움의 연속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하지만 교사의 내비 본능 호르몬을 줄이는 중요한 경험중의 하나가 아이와 가까이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임을, 아이들과 밀착해서 시간을 보낸 교사의 몸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임을 오랜 경험속에서 느끼는 김샘은 올해 의미있는 한 가지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작년에 끝난 드라마의 제목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 할 수 있다.
 
너의목소리가들려.jpg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미지제공:SBS> 
 
작년에 방영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가진 수하(이종석)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판사 ? 의사 ? 기자와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차관우(윤상현)라는 변호사의 변론이 기억에 남는다. “피고인 주변에 한 번이라도 피고인의 외침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피고인을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은 피고인 자신이 아니라 귀를 막은 우리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의 변론이 이 드라마의 주제일지 모르겠다. 속물 변호사인 장혜성(이보영)도 수하와 차관우를 통해 의뢰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우쳐 간다. 김샘도 이 드라마의 의미를 잔인한 3월에 시도해본다.
 
가르침은 들어주기에서부터
 
교사에게 3월은 참 말을 많이 하는 달이다. 바쁜 일상속에서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다양한 규칙을 설명하기위해 정말로 바쁘게 말한다. 교사 혼자서 일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정해진 룰을 설명한다. 아이들은 습관처럼 올해의 선생님께 빠르게 적응해 간다. 정작 아이들에게 올해 무엇을 해 보고 싶은지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저 3월은 뭘 해야 하고,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고, 기본학습 훈련은 이렇고, 학급의 운영은 어떻고 하면서 끊임없이 방향을 지시하는 얘기를 한다. 역시 교사는 말을 참 잘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어쩌면 교사는 말을 하기 전에 말을 듣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사에게 가르침이란 가르치는 사람의 고유한 메시지를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의미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앎과 자신의 경험을 일치시키려는 모든 학생들을 매개하는 다리의 역할도 한다. 따라서 가르침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인간적 성숙을 지향하는 만남의 자리일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은 관계적이고 상호적이며 대화적인 것이다. 그 본질은 대화, 주고받기, 상호작용일 것이다. 이 또한 교사의 내비 본능과 함께 존재하는 잠재적 본능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또한 가르침에는 원하든 원치 안든 교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과 배움의 길을 선택한 사람, 이렇게 양축이 있다. 양쪽에 모두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침은 다 방향적 일 수밖에 없다. 한 방향의 목적지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으로 안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교실에 존재하는 교사와 학생들은 저마다의 생각, 목표, 열망을 지닌 온전한 인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면서 배우는 만남이 모두 특별하고 저마다 독특한 것이다. 학생들마다 배우는 과정도 다르다. 다들 자기만의 재능이 있고, 방식이 있으며, 느끼는 어려움과 필요도 다르다. 아이들 모두 독특함에 적절히 반응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잘 듣고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들어주기는 정보파악이 아니다.
 
김샘은 그동안 내비의 본능속에 감춰진 본능에도 충실하고 싶었다. 정확하게 ‘들어주기’에 관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처럼 말이다. 가르침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교육과정의 권위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때 관리와 통제를 우선시하는 좁은 시각이 드러나고, 수동적 태도의 가능성이 높아지며, 치명적 복종의 조종이 강요될 뿐이다. 가르침은 권위를 가진 자가 책임을 지닌 자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김샘의 들어주기는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나름의 적절한 처방전과 계몽을 위한 수단적 듣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며 특히 교사가 정한 일련의 규칙과 계획을 잘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탈과 반항의 표현을 들어주는 것이다.
 
약산초 개학.jpg
 
새학기를 맞아 개학해 학교에 모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이미지제공:문경숙>
 
 
그렇다면 진정한 듣기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려 그 의미의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리’이며, ‘소리’는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이 없는 우리들이 새겨들어야 할 자세이다. 아이들과 가까이서 함께 어우러지면서 함께 밀착하여 시간을 보내는 들어주기가 보다 필요한 3월에 말이다. 더더욱 교사가 정해 놓은 일련의 규칙과 계획을 잘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진정한 듣기를 시도하는 김샘은 어쩌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나아가 <너의 마음이 들려>이지 않을까 싶다.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 가르침은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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