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혹은 보스, 그 간극(間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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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혹은 보스, 그 간극(間隙)
  • 김기용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연구원, 인천석남초교 교사)
  • 승인 2014.04.01 0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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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47)
핀란드.jpg
필란드 전 대통령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Tarja Kaarina Halonen)
 
세상에서 살다보면 사람들은 싫든 좋든 자의든 타의든 각종 조직에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소속체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과 뒷받침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앞의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보통 ‘리더’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조직체가 수없이 생기고 없어지는 와중에 누구나 어디선가는 리더라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게는 대통령, 국회의원에서 한 집안의 가장이나 조기축구회의 회장까지 심지어 초등학교 반장도 모두 리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한 가족의 가장으로, 소속 학년의 부장으로, 아이들에게는 담임교사로, 음악동아리에서는 악장으로, 언뜻 생각해봐도 저도 모르는 새 여러 관계속의 리더로 설정되어 있군요.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나봅니다. 유럽의 한 도시 거리에서 찍힌 중년 여성의 사진이었지요. 손에 보자기 쇼핑백을 들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하는 지극히 평범한 유럽의 중년 여성. 그런데 뭐, 큰일이라고 화제에 올랐을까요?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Tarja Kaarina Halonen). 알고 보니 이 사람은 핀란드 법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제11대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실형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을 위해 여전히 국가가 경호를 책임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정치인의 모습이라서 그랬을까요? 누리꾼들 사이에서 왜 화제가 되었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최고의 권력에서 물러나 다시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 핀란드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생경한 사람들, 어디 대한민국에서 저뿐이겠습니까?
 
한번 잡은 권력, 웬만해서 놓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요? 왕조시대의 관료나 근대의 정치인이나 할 것 없이 심지어 학교의 교장만 되어도 일단 권력의 정점에 서면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양입니다. 일선 학교의 교장은 8년을 하면 더 이상 교장으로 복무할 수 없습니다. 8년을 근무하고도 퇴직시점이 남아 있으면 평교사로 돌아가던지 명예퇴직을 하던지 해야 하지요. 그런데 임기를 마친 후 평교사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지내다 교직을 떠나는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한참 전에 한성여중의 고춘식이라는 분이 교장 임기를 마치고 평교사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세간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었지요.
어쨌거나 정말 상층에서 내려오는 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게다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왜 그리 뻣뻣해지는지 오만하다는 혹평 듣는 것도 일쑤입니다. 교만한 사람 누구에게나 미움 받기 십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식인데 말이지요. 나 같은 사람은 백번을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글쎄요,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대장노릇을 하게 되면 나도 그렇게 될라나요? 아무튼 지금의 나로서는 참으로 이상하기만한 일입니다.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교육기관에서도 이런 폐해는 여전해 보입니다. 한때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교육한다고 교육법에 못 박아놓고 상명하복을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지요.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바뀌긴 했습니다만….
일선학교에 학교단위경영책임제라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도입되면서 교장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기간제 교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교장의 전횡을 방조하고 있지요. 어떤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의 비율이 3분의 1이나 된다고 하니, 그 학교에서 채용권자인 관리자의 권력이 얼마나 강대한지는 쉽게 짐작할만합니다. 더구나 초빙교사제라는 정책은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데려오기 위한 변칙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민주적이고 교육 목적에 맞는 학교 운영이라는 당초 취지는 퇴색하고 관리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또 다른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거지요. 이런 경우의 관리자는 대부분 명망을 잃기 마련입니다. 순한 교사들이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비난하는, 교직원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가 되는 거지요. 이런 경우를 조폭세계에 빗대어 보스형 리더라 칭하기도 하더군요.
 
자유로운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강요나 강제력 혹은 지배 없이, 서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모든 공무를 대화하고 서로를 설득하면서, 서로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 고대 그리스에서 쓰인 ‘정치’란 말의 의미라고 합니다. 상대에 대한 어떠한 강제와 지배도 없이 오로지 대화와 설득으로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리더….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기꺼이 진정한 지도자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런 인연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가끔 교권을 하나의 지배적 권력으로 아이들에게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참담한 기분이지요. 어느 날인가는 회의를 마치고 교실에 조금 늦게 들어간 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더군요. 교실 창으로 넘겨다보니 반장아이가 앞에 나와서 칠판에 떠드는 친구들의 이름을 쓰고 있었습니다. 교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름 반장이라고 학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 세계에서도 권력기제가 작용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들여다보는 한 책에서는 지도자와 보스에 관하여 21가지의 차이를 두어 설명하고 있더군요.(박지영,『유쾌한 심리학』, 파피에, 2006, p.415) 그중에 쉽게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를 추려보았는 데, 꽤 일리 있는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도자는 앞에서 이끈다. 보스는 뒤에는 감시한다.
- 지도자는 ‘가자’라는 청유형으로 권한다. 보스는 ‘가라’는 명령형으로 말한다.
-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설득한다. 보스는 숨어서 조종한다.
- 지도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한다. 보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 지도자는 타협을 잘하고 대화를 즐긴다. 보스는 타협을 모르고 대화를 거부한다.
- 지도자는 귀가 여러 개 있다. 보스는 듣기 좋은 말만을 듣는 귀 하나만 갖고 있다.
- 지도자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갈구하는 리더십은 지도자형이신가요? 보스형이신가요? 안타깝게도 요즘 내 주위의 가깝거나 먼 대부분의 리더들은 보스형을 추구하고 선망(羨望)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연 사해동포주의나 이타주의 같이 타인을 위한 선에 가치를 둔다는 이념들은 실현 불가능한 헛된 글 바람에 불과할 것일까요?
 
참, 답답한 세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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