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도 여전히 그리워지는 <겨울왕국>
상태바
봄에도 여전히 그리워지는 <겨울왕국>
  • 윤세민 교수(문화평론가)
  • 승인 2014.04.01 16:5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세민의 영화읽기 (2)겨울왕국
겨울왕국의 한 장면.jpg
  
 
꽃 피는 봄이 왔건만, 여전히 <겨울왕국>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 겨울 전 지구촌을 ‘Let it go’(렛 잇 고) 멜로디로 채웠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이 우리 시각으로 3월 31일, 전 세계 흥행수익 10억 7200만 달러, 우리돈 1조 1400억 원을 돌파했다. 이는 2010년에 개봉한 영화 <토이스토리 3>를 뛰어넘는,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순위 1위의 기록이다. 국내 극장가는 이미 지난 2월 2일 <겨울왕국>이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었다. 지난 1월 16일 개봉 이후 46일 만이다. 1000만 관객 돌파는 외화로는 <아바타> 이후 두 번째이고, 한국 영화를 포함하면 11번째다.
‘설마’ 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그 동안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니메이션 영화에 있어 <겨울왕국>은 그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깨면서 1000만 관객 돌파와 함께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파급력 아래 <겨울왕국>은 제71회 골든글로브와 제41회 애니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또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애니메이션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가운데 거뜬히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겨울왕국>이 국내 영화 시장을 강타한 이유
 
 
 
한국 관객들은 유난히 <겨울왕국>을 사랑했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렛 잇 고’를 부른 나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국내 영화 시장을 강타한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왕국>의 흥행 코드는 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토리와 유머, 기술력과 노하우가 결합된 까닭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전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은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다.
<겨울왕국> 흥행에 대해 언론은 물론, 평단과 일반 관객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공통점으로 드는 것은 성인 관객도 흡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와 OST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힘 있는 구조와 화려한 음악은 남녀노소를 모두 흡수했고, 여기에 다양한 개봉 버전을 모두 보는 ‘겨울왕국 마스터하기’ 열풍과 관객 스스로에 의한 홍보가 더해져 ‘천만 관객’이라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자매애를 전면에 내세운 신선한 스토리와 캐릭터
 
 
 
우선 스토리에 있어서, “남녀 간의 사랑이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백마 탄 왕자님이 구출한다는 식의 전형적 구조)를 탈피하고 독특하게 자매간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워 신선함을 가미했다. <겨울왕국>이 과거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진화된 스토리란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만이 흥행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스토리의 완성도로만 따지자면 <토이스토리> 같은 작품이 훨씬 정교하다. <겨울왕국>은 그러나 스토리 완성도의 단점을 캐릭터의 매력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으로 상쇄하며 인기몰이에 박차를 가했다.
<겨울왕국>은 신선하고도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여주인공 엘사와 안나 캐릭터 덕분이다. 언니 엘사와 동생 안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우선 귀엽고 예쁘다. 차가운 매력까지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건 이전에도 여느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이라면 당연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아주 독특하게도 유머 넘치는 디즈니 공주를 형상화 한 것이다. 조연 캐릭터만 웃기란 법은 없다. 주연인 공주가 농담도 곧잘 하고 유머감각도 있고 조금은 허당 기질이 있는 주연 공주~, 매력적이지 않은가.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 주변 환경과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강인하고 독립적인 캐릭터까지 완성해 냈다. 이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성과 고정관념을 깨는 참신한 도전이고 또 성공이었다.
 
 
 
 
 
 
한 편의 뮤지컬 같은 화려한 음악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화려한 음악은 <겨울왕국>의 최대 강점이다. 주제가 ‘Let it go’(렛 잇 고)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국내 음원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렛 잇 고는 사물을 얼리는 마법의 손을 지닌 엘사가 사랑하는 왕국을 등지고 먼 곳으로 떠나 자신만의 얼음성을 짓는 데서 나오는 노래로 비로소 자유로워진 엘사의 심정을 대변하는 곡이다. ‘렛 잇 고’ 이전까지 자신을 숨기느라 대사마저 많지 않던 엘사는 이 노래 하나로 카리스마 있고 당당한 여왕의 이미지를 단숨에 구축한다.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멜로디가 돋보이는 ‘렛 잇 고’는 개봉되자마자 많은 인기를 끌며 <겨울왕국> 흥행몰이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 ‘렛 잇 고’에 푹 빠진 국내 가수들은 너도나도 따라부르기에 앞장섰다. 한국어 주제가를 부른 씨스타 효린을 비롯해 디아 손승연 에일리 다비치 이해리 박현빈 등이 불러 다양한 버전으로 관객을 울고 웃게 했다. 이외에도 관객들은 자신들이 부른 ‘렛 잇 고’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으며, ‘렛 잇 고’에 영상을 입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자발적인 힘이 영화를 더 끌어올린 것이다.
이렇듯 영화의 흥행을 도운 가장 큰 요소는 단연 음악이다. 영상과 절묘하게 떨어지며 세련되고 웅장한 음악은 영화의 감흥을 한껏 북돋았다. 강렬한 음악으로 인해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 정립되고 군데군데 비어 있는 스토리마저 채워질 수 있었다.
 
 
 
 
 
 
다양한 버전과 관객 스스로의 홍보
 
 
 
아울러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겨울왕국>의 다양한 버전과 이를 적절하게 홍보했던 영향도 컸다. <겨울왕국>은 ‘자막’, ‘더빙’ ‘디지털’ ‘3D’ ‘4DX3D’ 버전에 더해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제공되는 특별관에 따라 또 여러 가지 버전이 더 추가됐다. 적게는 6개, 많게는 10개 버전으로 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거기에 흥행에 힘입어 극장에서 직접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싱어롱’ 버전까지 나왔다. 남녀노소 관객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버전이 관객을 극장으로 더욱 이끄는 구실을 한 것이다.
여기에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발달로 관객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 것도 흥행 이유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겨울왕국>은 개봉을 하자마자 <겨울왕국> 갤러리가 생길 정도로 강력한 팬덤이 형성됐다. 500만 관객이 넘어가는 즈음부터 겨울왕국은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합성과 패러디 자막 등이 각종 SNS를 통해 퍼지면서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고, 아울러 서적과 여행상품,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원소스 멀티유즈 효과를 냈다. 이외에도 <겨울왕국>과 관련한 다양한 유튜브 동영상이 각종 블로그를 통해 널리 퍼졌고, 관객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로 영상을 전파했다. <겨울왕국>의 가장 큰 홍보는 관객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캐릭터 간의 부조화와 시간 흐름의 미스
 
 
 
이렇게 <겨울왕국>은 여러 장점을 보이며 ‘천만 관객’ 동원이란 흥행몰이에 성공했지만, 여러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우선 캐릭터 간의 부조화이다. 특히 남성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디즈니가 이번 작품에서도 어떻게든 ‘남녀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남성 캐릭터를 강제로 밀어넣는, 즉 ‘버림 카드’로 써버린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반전시켜야 하는 캐릭터인 ‘한스’의 캐릭터는, 캐릭터가 겪는 변화의 계기가 딱히 설명되지 않고, 그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임의적으로 선과 악을 오가는 데 그치고 있다.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랑이 확인되고 깊어지는 과정이나 복선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고 단순 처리될 뿐이다. 영화 속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야기의 전개가 긴장감과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린 것에 비해서, ‘버림 카드’ 식의 남성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부조화는 결국 영화의 정밀도와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겨울왕국>에서 남성 캐릭터는 여성 캐릭터들의 단순 조력자이거나 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결국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것은 여성 캐릭터 간의 연대였다. ‘안나’와 ‘엘사’의 지극한 자매애가 그것이다. 영화의 주소재인 ‘진정한 사랑’을 남성과 여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여성 간의 자매애로 치환했다는 것은 디즈니가 자체적으로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영화의 흐름이 너무 빨랐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흐름이 빠르다는 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엔 그만한 설정과 이유가 따라야 하는 건 필수이다. 그런데 <겨울왕국>에서 영화가 흐른 시간을 보면 대략 한 일주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자매가 생이별을 하고 얼음왕국을 짓는 가운데 동생은 북쪽 숲을 찾아가고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배신당하고 또 새로운 사랑을 쌓고, 언니는 좌절에 빠졌다 새롭게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왕국을 회복하며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데 이 정도가 걸렸다는 것은 현실로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판타지를 주제로 잡았다고 해도, 너무 시간 흐름에 대한 설정이나 초점을 잘못 맞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의 개연성과 정밀성, 캐릭터 간의 조화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콤플렉스를 축복으로 - “렛 잇 고(Let it go)~~”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왕국>은 흥행을 넘어 수작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았다. 위에서 얘기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토리와 유머, 기술력과 노하우가 결합된 까닭, 그리고 성인 관객도 흡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힘 있고 절묘했던 OST, 다양한 개봉 버전과 관객 스스로의 홍보 등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런 한편 흥행한 애니메이션의 대중적 파급력에 편승해서, 너도나도 ‘Let It Go’(렛 잇 고)의 커버 곡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내놓고 관련 상품과 상술이 판치며, 이를 언론이 무작위로 보도 내지는 홍보하는 행태는 대중 매체가 소모적으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가치도 풍성하다.
‘엘사’는 아름답고 신비한 결빙(?)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자 자신의 능력을 무서운 저주처럼 여기고 마는 측은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동생 ‘안나’는 지극한 자매애를 바탕으로 ‘엘사’가 콤플렉스라고 여기는 그녀의 능력을 ‘축복’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해낸다. 결국 <겨울왕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해서는 그 누구와도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혹은 다른 이의 사랑의 여부에 따라 콤플렉스는 얼마든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리라.
그러기에 우린 겨울을 지난 이 봄에도 새삼 뜨겁게 부를 수 있다.
“렛 잇 고(Let it go)~~.”
 
 
 
  윤세민 증명사진.jpg
윤세민 / 경인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언론학박사).
대학에서 스토리텔링, 시나리오 작법, 커뮤니케이션 등을 강의하며,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주로 출판, 방송, 영화 등에 대한 평론을 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프밍아웃 2014-05-09 00:09:57
이분 최소 프갤러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