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하지 않는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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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하지 않는 수업
  • 김국태(인천교육연구소, 인천부평초교)
  • 승인 2014.04.22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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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49)
 
학교 교실.jpg
 
“수업시간만 때우면 되지 뭐”
 
학생들과 교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제 수업에서 관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교사는 정해진 지식의 공급자로, 학생은 지식의 구매자로 존재할 뿐이다. 교사와 학생이 맺는 최소한의 관계 또한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교사는 정해진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일방적인 전달만 강화한다. 학생 개개인의 의견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학생들도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 것에 부담스러워 한다. 그냥 “수업이나 하시죠.”, “그래, 그냥 수업이나 하자”는 소리만 오간다. 지식은 교류되지 않고, 사람들은 소통하지 못한다. 서로에게 용인된 포기의 관계 앞에서 우리의 수업은 지식시장 혹은 지식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수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세계는 추상적일 뿐이고, 그에 따른 수업도 역시 억압적이고 단순 반복적일 뿐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 질식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학교의 수업은 사실 지식과 생각이 교류되고, 앞으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성찰하는 장이다. 단위 수업은 교과 지식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1차적 목표라면 궁긍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삶을 꾸려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가는 것이 어쩌면 2차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이기에 이런 고민과 성찰을 스스로 이끌어 나가는 것은 어렵다. 교사의 존재 이유는 이를 돕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상호간 관계의 형성은 바로 ‘관계적 진동’을 의미한다. 관계적 진동이란 사회적 존재들이 만나서 일으키는 떨림 같은 것이다. 서로의 떨림이 단절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해 줄 고리를 만들어 주고, 축적되는 지식이 아니라 적극 수용되고 확장되는 양상을 만들어 간다. 관계적 진동은 자신의 지적 경험이 공적인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학교를 졸업하고 나가는 학생들은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입 닥치고 공부나 해”
 
이 말처럼 우리의 수업은 사실 자신을 열어 누군가와 친밀하게 만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왔다. 아직도 서로 의논하려는 행위는 그 자체로 경쟁에서 밀리는 짓이며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있다. 학교건 학원이건 회사건, 모든 것에 등수를 매기면서 가시적인 성과만을 강조해 온 조직은 ‘관계적/협동적 자아’의 영역을 제거하기 바빴다. 이제 학교의 구성원인 교사, 학생, 학부모는 서로의 관심과 애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샌가 누군가와 더불어 한다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라는 자유로운 만남속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던 경험의 장은 사라지고 홀로 된 개인으로 무기력한 학습을 이어간다. 결국 지금의 수업은 ‘앎에 대한 의지’가 아닌 ‘무관심의 의지’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관계적 자아를 만들어가자
 
이렇듯 서로의 일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공적으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지금의 학교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학교에서 우리는 ‘지루한 것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워갈 뿐이다. 공부의 성공도 개인 덕, 실패도 개인 탓이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공적 논의로 진전시키지 못하고 타인과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학교는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한다. 결국 수업의 지적 경험은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로 한정되고, 타자와의 단절속에서 그저 끊임없이 자기 단속만을 강요하게 된다.
 
이렇게 ‘내 옆 자리 누군가의 곁을 함께하겠다는 일이 몽상이 되어가는 학교’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 그 곁을 회복해서 관계적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수업 시간에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기보다는 더불어 하는 시간 자체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합리적인 펙트를 알려주는 친절한 선생님보다는 ‘친밀한’ 인연을 이어가는 선생님이 늘었으면 좋겠다. 수업을 함께하면서 조금은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맺다보면 뜻하지 않은 선물이 우리들 곁에 다가오지 않을까? ‘관계적 자아’를 만들어가는 일들로 우리 자신의 수업을 채워보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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