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해 노동자답게 애도하는 법
상태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노동자답게 애도하는 법
  • 이진숙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정책교육국장
  • 승인 2014.05.01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4주년 세계노동절 기고]
 
IMG_4471.jpg

오늘은 124주년을 맞는 세계노동절이다. 세계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쟁취’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자 미국 정부가 총격을 가하며 시위대를 진압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총에 맞아 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그에 항의하며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되었고 그 중 5명이 사형을 당했다. 1899년 창립한 국제노동운동조직인 제2 인터내셔널은 이 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세계노동절로 정하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 아래 함께 싸워왔다.
 
한국 세계노동절의 역사는 굴곡이 깊다. 일제시대인 1923년에 첫대회가 시작되었는데, 자주적인 노동운동 조직인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를 파괴하려 골몰했던 이승만 정부가 1948년 어용노조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해 버렸다. 그 후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서는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명까지 하였다. 세계노동절을 다시 되찾은 것은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민주노조운동이 부활한 1989년이 되어서였다. 그 후 정부에서 5월 1일을 공식 세계노동절로 수용한 것이 1994년의 일이다.
 
이처럼 어렵게 만들고 지켜온 만큼 세계노동절은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생일 같이 소중한 날이다. 매년 5월 1일이면 그 해의 주요 요구를 걸고 세계 노동자들과 한날 한시에 함께 싸우는 투쟁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올해 세계노동절을 맞으며 민주노총의 고민은 매우 깊었다.
 
애초 민주노총의 계획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에 쉴 권리를!’이라는 기치 아래 세계노동절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5월 1일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법으로 보장되는 유일한 유급휴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 특히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은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고 휴일에 일하면 지급되어야 하는 가산수당이 제대로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이 올해 ‘100만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사업’을 중점 사업과제로 잡은 만큼 모든 노동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자는 취지로 세계노동절을 치르고자 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의료민영화 저지,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 개악,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권리 등을 세계노동절을 통해 외치려고 했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했고, 지금도 30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희생되거나 실종된 상태다. 전국민의 일상은 마비되었고, 코 앞에 와 있는 지방선거 활동도 물밑으로 가라 앉았으며, 관공서든 민간단체든 계획했던 행사를 대부분 취소했다. 세계노동절 대회를 어찌해야 하나 민주노총 안에서도 논의가 분분했다. 희생자들과 전국민의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올해 세계노동절을 쉬자는 의견부터,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대회로 치루자는 의견, 이 엄청난 참사를 가져온 부정한 현실을 고발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까지, 어느 때보다 고민이 깊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민주노총의 많은 조합원들이 스스로를 이 참사의 공범자 위치에 놓고 가슴을 치며 자책하고 슬퍼하는 분위기이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이 큰 만큼 어른으로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던 노동운동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인 죄책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많은 토론과 고민 끝에 올해의 세계노동절을 ‘추모와 결의의 장’으로 치를 것을 결정했다.
 
세월호 참사는 발생 원인부터, 대처 과정까지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다.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노후한 배를 수입해 와서 불법적으로 개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과적과 초과 탑승까지 일삼은 청해진해운.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해운사들로 구성된 해운조합에 맡겨진 어이없는 제도. 항만청, 해경 등 책임 기관들의 방임과 책임전가. 사고발생 이후 기초적인 구조활동은 물론 사상자 집계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무능한 재난대응 시스템. 나아가 재난구조조차도 사고업체와 결탁된 민간업체에 위임하려던 정부의 책임방기. 보고 받는 것 외에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각 정부 기관들. 그리고 책임자가 아닌 심판자가 되어 처벌을 지시하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왔던 ‘비정상의 정상화’는 바로 이런 상황에 필요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수많은 국민들을 죄책감으로 내몰고 있다. 이 문제들이 비단 이번 세월호 참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청해진 해운의 자리에 삼성을 가져다 놓아도, 지난 두 달여 사이에 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현대중공업을 가져다 놓아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대구지하철 화재 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고, 씨랜드 화재참사 때도 우리의 아이들은 별로 다르지 않게 죽어갔다.
 
이번 참사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할 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얼마 안 가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는 사그라들 것이고, 비정규직 선원들과 청해진해운 바지사장 감옥 보내고,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는 횡령과 배임혐의 정도로 몇 년 살다오게 하고, 관료 몇몇 옷 좀 벗기고, 관련 법 좀 손질하고... 이 정도면 수습이 될 것이고 몇 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번에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무고한 희생 앞에서, 이 꿈 많은 아이들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 온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세계노동절 대회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해 민주노총이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애도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부평역 앞에서 치러질 인천대회에서 민주노총인천본부 조합원들은 세가지를 함께 결의할 것이다.
 
하나는 세월의 참사의 원인이 규명되고 책임을 져야할 자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국민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민주노총이 이미 오랜 기간 싸워왔지만 힘이 미치지 못해 이번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던 무분별한 규제완화, 민영화를 중단시키는 싸움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는 결의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더 힘차게 싸워나가겠다는 결의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향한 외침을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 민주노총이 노동자답게 애도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진숙.jpg
이진숙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정책교육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