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노동절에 돌아보는 한국 노동계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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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노동절에 돌아보는 한국 노동계 현실
  • 이희환 기자
  • 승인 2014.05.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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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파업연대기금 권영숙 대표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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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광장에서 진행된 노동절 집회의 모습
 
Q. 오늘은 124주년을 맞는 세계 노동절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명절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데,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축소 내지는 취소되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 여러 사업장에서 크고 작은 노동 현안들이 불거지고 있는데, 사회적 조명을 크게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노동계의 여러 현안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권영숙 대표와 말씀 나눠보겠다. 먼저 노동절의 역사적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부터 소개해달라.
 
권영숙  "5월 1일 노동절은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시작됐다. 1886년에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잔인한 진압이 파업 지도부에 대한 사형으로 귀결되었던 사건을 ‘헤이마켓 사건’이라고 하는데, 그 사건과 당시 노동 영웅들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에, 180개국이 노동절을 기념한다고 전한다.
 
한국에서 노동절의 역사는 아주 기구하다. 한국에서 노동절은 정치사와 함께 지워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에 노동자들의 자주 조직인 조선노동총동맹이 처음으로 주도해 시작되었다. 그런데 해방 직후인 1945년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평이라고 하는 조직이 20만의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메이데이를 아주 성대하게 치뤘다. 해방 정국에서의 좌익이 훨씬 우세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바로 미군정의 비호를 받으면서 대한노총이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노동절 행사를 주관했다. 1957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메이데이는 공산도당의 선전도구"라고 하면서, 대한노총의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정하게 된다. 우리가 주로 알고 있던 3월 10일 메이데이는 여기서 시작 한 거다. 군사독재 정권인 박정희 정권이 시작되면서는 아예 노동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며, 3월 10일은 '근로자의 날'로 개편되었다. 이후 87년 민주화 이행까지 메이데이는 치욕의 날로 노동자들에게 기록되게 된 것이다.
 
그러다 100회 메이데이인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시작되었고, 1989년에 민주노조 운동이 처음으로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를 자주적으로, 메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새롭게 시작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지난 94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변경하고, 이름도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메이데이로 하면서 노동자들의 유급 휴가일로 지정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명암은 있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유급 휴가다. 그러나 많은 제조업체, 작업현장에서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메이데이에도 일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노동권이 없기 때문에 메이데이가 축제일이 아니다. 아직도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난제들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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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과 1929년 원산총파업 현장의 모습
 
Q.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힘겨웠던 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노동절이 노동자들의 축제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올해는 세월호 참사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노동절 행사가 축소 혹은 취소되는 상황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권영숙 "세월호 문제는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난맥상,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생명경시, 반노동적, 반민주적인 여러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문제는 노동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이 사고의 배경이 되는, 이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된 선장과 승무원들이 지금 15명이나 기소되었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배가 사고가 나거나 침몰될 때 결정권을 가져야 할 선장도 비정규직 바지선장이었다. 일부 선주들은 이 사람이 도저히 선장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 자가 선장의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4명의 승무원은 일당 승무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의 선원법이 말하는 재난시 구조활동을 열흘마다, 한 달마다 훈련을 하면서 재난에 대비하는 능력이 축적되어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불안정 노동이 이런 불안정한 사회를 만든 것이고 이런 재난을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저는 메이데이의 의미는 세월호 침몰 속에서도 더 값지게 드러나야 한다다. 행사들도 축소되기보다는 이런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권대표님은 최근 노동계의 대표적인 쟁점, 어떤 것이라고 보시는가?
 
권영숙 "최근 3~4년 동안 이루어진 노동자들의 거리투쟁이나 고공농성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리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많은 분이 알게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실제로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재능교육학습지 교사라던가, 화물연대 노동자들, 또 사측에 직접적으로 고용되지 않고 하청업체를 통해서 파견되어 일하는 현대자동차 문제가 대표적으로 알려졌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3년 전부터 서울에서 농성을 벌이면서 정리해고가 얼마나 큰 사회적 학살인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해고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지를 알리고 있다. 얼마 전 25번째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다. 이 사람은 고등법원에서 해고 무효판결을 받았고, 대법원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몇 년의 세월이 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법원이 이렇게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에는 노조 파괴 문제가 심각하다. 민주노조들을 상대로 사업주들이 전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정체가 1987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다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사업주들과 자본가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노조를 파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수법이 너무나 다양하다. SJM의 경우처럼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공장을 위협하는 무력을 사용한다든가. 노무컨설팅을 통해서 아주 조직적으로 노조파괴를 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노동 기본권은 거의 무력화 되고 있다.
 
일터는 거의 사적인 치외법권 지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노동자들 상대로 얼차려를 시키고 PT체조를 시킨다. 노동조합원인 사람들에게 페인트칠 한다든가 다른 옷을 입게 만들어서 지목해서 괴롭히는, 소위 말해서 권력 희롱이라고 불리는 것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현장에서 노동 기본권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의 균형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나 경찰, 검찰, 정부 역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해주는 방향을 취하지 않고 있다. 부당 노동 행위가 적발되고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노동부에서 부당성을 인정하고 기소 의견을 내어도 검찰에서는 무더기로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이런 문제들이 굉장히 심각하다. 최소한의 노동권을 확보하는 것은, 세월호 문제와 같은 문제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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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추모와 함께 진행된 노동절 집회 행진장면 (사진 : 전교조)
 
Q.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나 국가적 위상은 상당히 신장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계의 현안과 쟁점은 전혀 풀리지 않고 있어서 답답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하는가?
 
권영숙 "한국은 87년 민주화 이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좌우가 공히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민주화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던 우파 세력조차도 그것을 한국의 성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민주화와 산업화 두 가지 문제에 모두 결부되어 있는 것이 노동자고, 노동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세력이 했던 역할과 기여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한국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민주화, 경제적인 민주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히 노동배제적인 민주주의이다. 이 부분들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동의 기본권이 시민권으로 인정되는 최소한의 사회적인 지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3년 전에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으로 가면서 노동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식이 형성되었다. 노동의 사회적 연대가 노동이 가진 사회적 고립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희망버스의 기운이 넘쳐야 한다.
 
그 다음에, 노동법 개정과 같은 제도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희망버스가 이례적인 사건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연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기금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기금에 여러분이 힘을 보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길게 보면 노동법 개정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정리해고를 철폐하고, 실제로 노조파괴 사업장에 대해 처벌하는 방식을 통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해서. 한국이 노동도 포함하는 민주주의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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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 앞 광장에서 진행된 세계노동절 인천대회의 모습 
 
Q. 여러 가지 중요한 점을 짚어주셨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해달라.
 
권영숙 "'사파기금'은 99%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을 표방하며 "1만명, 1만원, 월1억 계좌 만들기"를 목표로 2011년 7월에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제안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주 낯설기만 했던 이 이름이 몇 달도 되지 않아 사람들의 입안에서 읖조려지고, 머리속에 각인되고,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파기금은 무엇보다도 돈으로 하는 연대운동이다. 파업기금도 없이 싸우는 노동자들이, "돈의 압박에 스러지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연대"를 모색한 것이다. 사파기금에 참여하는 분들이 재능과 시간과 맘을 담은 다양한 연대방식들과 노조들의 재정을 위한 지원캠페인을 하더라도, 그 본연의 취지는 파업연대기금을 모으는 것이다. 
 
사파기금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이 기금을 믿고 노동자들이 나서서 맘 편히 파업에 임했으면 했다. 그들의 파업이 그들의 목숨을 걸고 가족들의 생계와 자식의 교육을 모두 중단시킨 채 진행되지 않기를 바랬다. 사파기금은 그 누구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예비금고이다. 이 땅의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나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혹은 비정규직으로의 전환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파기금은 바로 모든 노동하는 이들의 미래를 위한 저축이라고 보면 된다.
 
오는 7월이면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출범한 지 만 3년이 된다. 1만인 계좌운동을 시작한 지도 2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매달 꼬박꼬박 참여하면서 쌍용차나 콜트콜텍 등 가장 시급한 투쟁현장에 26차례 꾸준히 기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 올해 3주년을 맞으면 참여해 주신 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준비하고자 한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앞으로도 꾸준히 시민들의 성의를 모으고 기금을 조성하여,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사회전 안전망, 가뭄속의 단비같은 존재가 되도록 애쓰려고 한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
 
Q. 오늘 말씀 감사하다. 나중에 다시 깊이 있는 노동현안에 대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마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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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숙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사회적파업연대기금>
계좌(자동이체): 국민은행 012501-04-230250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자동이체 및 CMS신청:
http://goo.gl/6inTF
"한발씩, 웃으며, 끝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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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5월 1일 아침 경인방송 iFM <상쾌한아침 원기범입니다> 진행된 인터뷰를 협약에 의해 정리,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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