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회관 앞, 5·3인천민주항쟁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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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회관 앞, 5·3인천민주항쟁의 현장
  •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14.05.05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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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 협약 연재] 인천 민주화의 현장을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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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회관앞에 집결하는 시위 군중〉
출처 : 디지털인천남구문화대전(http://incheonnamgu.grandculture.net/)


“군사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


1986년 5월 3일, 인천시민회관 앞 사거리는 바리케이드와 사람의 장벽으로 작은 광장이 만들어졌다. 수많은 플래카드가 거리를 채우고 ‘군부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 ‘속지말자 신민당 몰아내자 양키놈’, ‘민중정권 수립하자’ 등의 짧은 구호들이 하늘을 메웠다. 각 단체에서 만든 유인물도 눈처럼 쏟아졌다. ‘인천을 해방구로’, ‘해방인천만세’, ‘천만노동자해방투쟁승리만세’, ‘철천지원수미제와 그 앞잡이 깡패적 반동정권의 심장부에 해방의 칼을 꽂자’ 등이 제목으로 붙어 있었다.


이 날은 신한민주당(신민당)의 ‘헌법개정추진 인천·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인천시민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개최 시간은 오후 2시. 이미 오전부터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며 일대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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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정추진 인천·경기지부 결성대회’ 팜플렛(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신민당은 민주화운동추진협의회의 1천만 명 개헌서명운동에 맞춰 시·도지부별 개헌추진위원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신민당이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결성대회를 끝내고 인천 대회를 앞두고 있던 4월 29일,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민국련)가 갑자기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와 반미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와 김대중·김영삼 양김씨,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의장이었던 문익환 등이 모여 구성한 단체였다. 재야 세력과 학생들은 보수 야당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며 ‘헌법개정추진 인천·경기지부 결성대회’가 열리는 인천시민회관으로 향했다.



인천시민회관을 향한 행진


문익환의 기소장에 의하면, 민통련은 인천에서 배포할 유인물 등을 미리 제작한 뒤 봉고차에 싣고 5월 2일 밤 서울을 출발, 주안5동성당을 거쳐 주안1동성당에 머물고 있었다. 5월 3일 아침이 되자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을 비롯한 민통련 소속 회원들은 플래카드와 앰프 등을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정오 무렵 인천지역노동자동맹, 서울노동운동연합 등의 단체들이 주안역 광장에서 인천시민회관 방향으로 행진을 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인천시민회관 주변에서도 인하대 등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은 주안1동성당 앞에서 플래카드를 펴 들었다. 신기촌 쪽에서는 전국반제반파쇼민족민주학생연맹(민민학련)과 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 등이 집결하고 있었다.

각 방향에서 행렬을 이룬 시위대는 인천시민회관 앞 사거리에서 만났다. 그 사이 군중은 4천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현장에 뿌려진 유인물은 ‘압제와 착취’에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느냐고 묻고 있었다.


여러분이 선택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의 압제와 외세의 침탈 밑에서 계속 신음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자주적으로 민족통일을 이루는가의 양자택일이 있을 뿐입니다.

민중의 삶이 헤어날 길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전에, 민족을 영원히 외세에 예속시키는 기반이 더욱 다져지기 전에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싸움의 대열에 모두 앞장섭시다. 이 역사적 과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민주헌법 쟁취 서명을 비롯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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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인천민주항쟁에서 배포된 민통련의 유인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오후 1시 30분경, 시민회관 앞에서 ‘민주화촉진 인천시민대회’가 어수선한 가운데 개최되며 연설과 구호가 이어졌다. 마침 주안역 쪽에서 행진을 해온 이민우 총재와 김영삼 등은 시위 군중에 막혀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지구당 사무실로 이동했다.

신민당이 추진하려던 결성대회는 결국 무산됐다. 이 무렵 신기촌 방향을 향해 있던 민민학련과 민민투가 민주정의당 지구당사를 공격하고 길가에 있던 신민당 소유의 승용차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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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차량〉
출처 : 디지털인천남구문화대전(http://incheonnamgu.grandculture.net/)


8시간의 항쟁


시위는 계속됐다. 2시 30분경, 시위대는 버스정류소 시설 등을 넘어뜨려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성조기를 불태우고 경찰 가스차 1대의 무장을 해제시키기도 했다. 4시 30분경, 경찰 트럭을 빼앗아 방어선을 구축하자 경찰은 1시간 가량이 지난 후 진압을 시작했다. 경찰에 밀려 사람들은 석바위와 주안역 등지로 흩어졌고 일부는 철로를 따라 제물포역으로 이동해 시위를 계속했다. 오후 8시를 조금 지나 도화초등학교 앞까지 밀린 일부 시위대에 의해 경찰 봉고 차량 1대가 전소되는 것을 끝으로 항쟁이 마무리돼 갔다.


약 8시간 동안 계속된 이 날의 항쟁으로 현장에서 연행된 사람은 324명, 구속자는 129명이었다. 60여 명은 지명수배를 당했다. 인천시민회관은 2000년 철거된 후 ‘옛 시민회관 쉼터 공원’이 조성됐다. 공원 한쪽에 2011년, 5·3인천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표지석을 세웠다. ‘1986년 군부독재에 항거한 인천 5·3 민주항쟁 터’라는 글귀가 그 위에 새겨져 있다.


해마다 인천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주관해 5.3민주항쟁기념식을 열고 있다. 5월 3일 저녁 6시 30분에 옛시민회관터에서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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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도 군부독재에 항거한 인천5.3민주항쟁 터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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