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좋아한다면 '버텀라인'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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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좋아한다면 '버텀라인'으로 가라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5.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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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일의 재즈카페 '버텀라인' 주인장 허정선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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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지? 스스로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클래식, 발라드, 록, 재즈…? 혹시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 있다면, 그 음악을 접한 경험이 적어서는 아닐까.
 
재즈는 어떨까. 글쎄, 좋아하긴 하지만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5월 1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에서는 ‘2014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 국적에 관계없이 최정상 뮤지션들이 함께할 예정이다. 또 해마다 4월 30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재즈의 날’이다.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재즈 음악은 핍박과 슬픔의 역사를 사람들과 함께해왔다. 모든 형태의 압박에 저항해 열정적인 목소리를 냈으므로 인류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기리고 알리는 목적에 의해 정해졌다. 재즈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다.
 
인천에서도 재즈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버텀라인’. 중구 중앙동, 100년이 넘은 근대건축물에서 술 한 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재즈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1983년에 문을 연 버텀라인은 허정선 씨가 21년째 주인장이다. 음악이 끝날 때마다 턴테이블에 LP판을 바꾸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텀라인’이 31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재즈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제가 가게를 시작한 건 21년 정도 됐습니다. 버텀라인은 1983년에 문을 열었고, 저는 10대 후반부터 음악을 들으러 드나든 단골손님이었습니다. 다니면서 주인장들하고 친해졌고, 1994년에 인수하게 됐습니다. 이 건물은 100년 넘은 근대건축물입니다.”
 
“재즈라고 딱 정하고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음악 자체를 좋아했어요. 80년대에 이 동네는 음악카페도 많아서 장르별로 골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홍대 쪽 분위기랑 비슷한 데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곳을 인수할 때는 칸막이로 돼 있었습니다. 무대도 없었구요. 눈 오고 비 오는 걸 보려고 창을 냈습니다. 입구는 거의 전과 비슷하죠. 계단도 그렇고… 특별히 손을 많이 대지는 않았습니다.”
 
 
-21년 전, 이곳을 인수하셨을 때 동네 분위기는 어땠나요. 예전에 이곳은 ‘인천의 명동’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해서 어떤가요.
 
“당시에는 음악을 틀어주는 뮤직카페가 많았습니다. 재즈 음악을 틀어주는 곳은 여기말고 또 한 군데가 있었는데, 문을 닫았습니다. 사실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그러고는 중구 쪽으로 침체기가 왔습니다. 사람들이 주안이나 구월동 쪽으로 옮겨갔거든요. 많이 사라지고, 이전해서 신포동 이쪽이 무척 한산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요 근래에 중구 쪽에서 원도심 살리기로 이런저런 가게들이 조물조물 많이 생겼습니다. 작은 커피숍, 갤러리를 함께하는 커피숍들이 조물조물 생겨났습니다.”
 
 
 
교류전 사노마사루팀클럽전.jpg
교류전 사노마사루팀 클럽전.
 
 
-오래된 만큼 단골손님도 많을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변하는 게 많은 세상입니다.
 
“네,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저는 워낙 오가는 분들이 많으니까 일일이 기억하진 못해도 찾아오십니다. 예전 단골손님이 아주 오랜만에 올 때는 참 반갑습니다. 그 손님도 '아직 있네' 하면서 반가워하십니다. 연애할 때 오시던 분이 스무살쯤 된 자녀와 함께 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이민가거나 지방으로 이사간 분들이 들러서는 아직도 버텀라인이 있어서 좋아하십니다. 추억이 서린 공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살면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턴테이블과 LP판이 참 정겹습니다. 카페 분위기가 아늑하고 편안합니다. 손님들도 그렇게 여길 것 같은데요.
 
“LP판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어떤 곡을 원하면 당연히 틀어드립니다. 요즘엔 모든 게 파일로 음원이 나오니까 할 수 없이 파일을 다운 받아 틀기도 하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틀지 않았습니다. LP판과 CD는 아마 몇 천 장은 될 겁니다. LP판에 대한 향수들이 있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많이 갖고 있던 분들도 이사 가면서 짐이 되니까 처분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아깝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겠죠.”
 
 
-죄송스러운 질문이지만, 가게 운영은 잘 되는지 궁금합니다. ‘버텀라인’이 이사 갈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괜찮은 건가요.
 
“어차피 제 건물이 아니니까 2년에 한 번 계약하면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웃음) 이번에 계약할 때도 힘들었습니다. 가게를 임대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시한부인 셈이죠.”
 
 
-돈을 많이 벌어서 이사 갈 일이 없게 건물을 지으시죠.(웃음) 그러려면 재즈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많아져야겠습니다.
 
“(웃음)그건 꿈이죠. 재즈 카페로 뭔 돈을 벌겠습니까. 일반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소주집이나 호프집이 아니라서요. 그렇다고 재즈를 들으러 오는 손님이 갑자기 늘어나는 일도 없으니까요.(웃음) 저희 ‘버텀라인’은 인천에서 하나밖에 없습니다. 재즈카페라고 표방하고 문을 여는 곳이 있지만 결국 오래 버티질 못합니다. 아직 재즈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재즈를 좋아하는 손님들은 금요일마다 챙겨서 찾아오십니다.”
 
 
-금요일마다 밤 8시30분에 정기공연을 하는데, 손님들이 많이 오나요.
 
“공연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시작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죠. 1996년인가, 그때는 잘하는 분들을 모셔다 어쩌다 공연했는데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2007년부터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이 31년째 문을 열고 있어도 아직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가게도 밖에서 보면 출입구가 작아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고도 하구요. 하지만 들어오면 다들 놀라십니다. 널찍하고 분위기도 좋고….(웃음)”
 
“저희는 홍보는 따로 하지 않습니다. 다음 카페나 페이스북을 보고 많이 오십니다. 손님이 많이 올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우리끼리 보기도 하지만,(웃음) 어느 때는 넘쳐나기도 합니다. 물론 기획공연일 때는 예매를 공지합니다. 그때는 늘 많습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편인가요. 요즘엔 좋아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늘어났습니다. 아, 인천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국적으로는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재즈 동아리도 많고, 대학 실용음악학과에서 재즈를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홍대 쪽에는 재즈카페가 서너 개 정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도 재정난을 겪고 있습니다. 재즈가 대중적이지 못하니까 어렵습니다. 하지만 홍대 쪽에서는 입장료가 1만원입니다. 열명이 와도 10만원이 되니까, 그렇게 서너 팀 와도 힘겹더라도 운영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주인이 떠안고 가야 하는 게 많습니다. 저희는 입장료가 5000원인데 그것도 뭐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웃음)”
 
 
-‘버텀라인’을 찾는 손님들 연령층은 어떻게 되나요. 젊은 사람도 많이 오나요.
 
“저희는 일단 오래 됐으니까 연령층이 다양한 편입니다. 젊은 친구들도 있고, 30~50대가 많습니다. 60대도 재즈를 좋아하는 분들은 오십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러 세대가 공존하면 좋은 점이 정말 많잖습니까. 젊은이나 나이든 분들이 함께하는 공간은 참 보기 좋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음악을 들으러 오면 좋겠고, 자연스럽게 공연을 보러 오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 영역은 참으로 다양한데, ‘버텀라인’이라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찾아오시면 좋겠습니다. 가격도 비싸지 않습니다.(웃음) 요즘은 술을 많이 드시지 않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퍼져 있어 와인을 싸게 드리고 있습니다. 대개 1차로 밥이나 한 잔 하고 오시는 분들이 오시는 편이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라 저렴하죠.”
 
 
교류전클럽공연.jpg
교류전 클럽공연 모습.
 
 
-주변에 한국근대문학관, 차이나타운, 신포시장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내려오진 않습니다. 차이나타운까지 와도, 신포시장까지 와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신포시장에서 공갈빵이나 닭강정을 사느라 줄을 서지만… 여기는 오지 않습니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공연하는 클럽, 음악카페, 소극장… 찾아보면 많거든요. 이 동네는 문화랑 함께 가는 동네입니다. 자유공원 있죠, 마음만 먹으면 바다도 볼 수 있습니다. 동네가 참 예쁩니다. 구월동이나 주안에 사람들이 몰리는데, 그쪽은 다 똑같은 건물입니다. 똑같이 생긴 건물에서 밥 먹고, 거기서 나와 또 똑같이 생긴 건물에서 차 마시고… 마치 목욕탕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죠.(웃음)”
 
“또 저희는 2007년부터 비영리단체 ‘버텀라인플레이’를 만들었습니다. 만든 목적은 재즈 연주하시는 분들이 다른 장르에 비해 설 무대가 없어서, 그 분들을 지원하고 함께 공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년에 몇 번 공연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단에 지원금을 신청해서 하고 있는데, 지난 4월 25일, 26일에 한일교류전, 국제교류전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규모를 줄여서 행사를 치렀습니다. 워크숍도 하고 준비를 많이 한 공연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전문가를 비롯해 새내기들이 참가하는 공연은 계속 할 겁니다.”
 
“물론 계속 하겠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더라도 이곳이 오랫동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안 했을 때도 여기가 있었던 것처럼, 유지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때 여기 단골손님이 해외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한국에 왔다가, 이곳을 지나다 들어올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이 고스란히 보이는 오래된 건물 안은 재즈 음악의 선율이 부드럽게 흘렀다. ‘버텀라인’의 나무계단을 내려오면서, 기자는 문득 결의에 찬(?) 생각을 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즈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버텀라인’을 꼭 와봐야 할 것 같았다. 그 까닭은 단 하나, 인천사람이 아주 오랜만에 그곳을 찾아도 그 자리에 ‘버텀라인’이 여전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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