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천은 늘 낮은 투표율에서 멈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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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천은 늘 낮은 투표율에서 멈추나?
  • 이희환 기자
  • 승인 2014.06.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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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로 돌아보는 인천의 역대 투표율

전국-인천 10년간 투표율.jpg

최근 10년간 주요선거의 전국투표율과 인천투표율(출처 중앙선관위)


이승만, 박정희라는 두 독재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과 함께 부활했다. 1987년 6월항쟁의 가장 중요한 민주적 요구는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민주헌법의 쟁취와 이를 통한 독재 타도였다.


대통령 간선제를 지키려던 전두환 정권의 ‘4ㆍ13호헌조치’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6월항쟁의 결과, 1987년 12월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졌다. 지방자치제도 또한 오랜 논란이 거듭한 끝에 1995년 전면적으로 실시됨으로써, 중앙 중심의 정치논리로부터 지역자치에 기반한 지방자치제도가 시민들의 직접선거로 꽃피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인천지역이 언제부턴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투표율이 바닥권을 늘 면치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한 점은, 인천지역의 투표결과가 전국적인 투표결과를 거울로 비추듯이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6월민주항쟁 이후 처음으로 직선제로 치러진 1987년 12월 16일 대선에서 전국투표율 89.2%에 근접하는 88.1%를 기록했던 인천의 투표율은 1992년 대선에서는 80.3%로 15개 광역시도 중 13위, 2002년 대선에서는 67.8%로 14위, 2006년 대선 때는 60.3%로 15위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의 대선이었던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73.6%로, 신생 자치단체인 세종시(73.2%)와 충청남도(73.3%)에 이어 끝에서 세 번째를 기록했다.


국회의원 선거도 다르지 않았다. 1988년 총선 때 70.1%를 기록해 14개 광역시도에서 13위를 기록한 이후 1992년엔 15개 광역단체 중 14위, 1996년과 2000년엔 최하위, 2004년엔 16개 광역단체 중 15위로 역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선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1995년 제1회에서 2006년까지 모두 전국 최하위에 머물렀다. 전국 투표율과 차이도 5.6%(1995년)에서 9.6%(2002년)의 큰 차이를 보였다. 다행히 2010년 실시된 제5회 지방선거는 50.9%의 투표율로 16개 광역시도 중 1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바닥권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엊그제 끝난 6.4지방선거는 어떤가? 인천에서 출발한 세월호가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초대형 참사 속에 맞이한 6.4지방선거는,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론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요소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 어느 때보다 정권심판적 성격을 내장한 지방선거로 뜨겁게 전개됐다. 게다가 인천시장 선거는 여당의 안전행정부 장관이 장관직과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야당의 현역시장과 맞붙으면서 정권과 야권의 대리전으로 전개됐다.


비단 인천뿐만이 아니라 서울, 경기, 부산, 심지어 대구까지도 박근혜 심판론과 세월호 심판론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투표율이 56.8%로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68.4%)를 제외하면 1998년 제2회 지방선거(52.3%) 이래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이다. 그러나 이번 6.4지방선거에서도 인천의 투표율은 53.7%에 그쳐 전국투표율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대구(52.3%), 경기도(53.3%)에 이어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15위를 기록했다.


왜 인천은 이처럼 투표율이 낮을까? 지방자치제 실시 이전에도 그랬을까? 그리고 과거엔 인천을 야도(野都)라 불렀는데, 언제부터 인천이 전국표심의 바로미터 지역으로 변했는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인천사회가 함께 들여다보고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다. 해방 이후 인천시민들이 직접선거에 의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했던 역사를 우선 살펴보자. 지역단위의 투표율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만 우선 훑어본다.


1952년 8월 5일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의 전국투표율은 88.1%였다. 당시 이승만 후보가 75.3%의 압도적 유효투표를 얻어 2위 조봉암을 누르고 당선됐는데, 당시 인천시의 투표율은 74.3%였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3대 대통령 선거 때의 전국투표율은 무려 94.4%였는데, 인천의 투표율은 89.5%를 보였다. 5.16쿠데타 이후 치러진 제5대 대통령선거(1963.10.15) 때의 전국투표율은 85.0%였는데, 인천의 투표율은 84.2%로 전국투표율에 육박했다.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 때는 83.6%의 전국투표율에서 조금 더 멀어진 79.9%를 기록했다. 유신정권 출범 이전에 치러진 마지막 직선제 대통령 선거인 제7대 대선(1971.4.17) 때는 79.8%의 전국투표율이 나타난 가운데 인천의 투표율은 78.8%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낮은 투표율은 역대 국회의원 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유신체제 선포 직후인 1973년 9대 국회의원 선거 때만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전국 투표율보다 인천의 투표율은 항상 낮았다. 물론 도시지역이 일반적으로 농촌지역보다 크게 낮기는 하지만, 인천의 유독 지방자치제 실시 전후로 낮은 이유를 우리는 지역사회학적 측면에서 깊이 해명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은 그대로 지역에 대한 시민들의 정주의식과 도시적 정체성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후고)


<역대 국회의원 선거(6~14대)의 전국 투표율과 인천 투표율 비교>

역대

시행일자

전국 투표율(%)

인천 투표율(%)

6

1963년11월26일

72.1

67.4

7

1967년 6월 8일

76.1

69.6

8

1971년 5월25일

73.2

70.9

9

1973년 2월27일

73.0

73.2

10

1978년12월12일

77.1

73.0

11

1981년 3월25일

78.4

72.6

12

1985년 2월12일

84.6

80.7

13

1988년 4월26일

75.8

70.1

14

1992년 3월24일

71.9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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