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積弊)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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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積弊)의 역설
  • 이희동 인천in 이사
  • 승인 2014.06.1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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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일소는 자신의 통렬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청와대 박근혜.jpg
6월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
 
국민들을 충격과 비탄 속에 빠트렸던 세월호 사고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적폐다. 전대미문의 사고 처리과정에서 전 사회시스템의 오류와 작동불능이라는 혼란에 빠진 후 대통령은 원인을 적폐로 지목했다. 그러자 적폐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회적 병리 현상을 반영하는 코드가 돼 버렸다. 현재 세월호 적폐는 관피아가 대표적인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또 해경은 적폐의 표본이 되면서 조직 자체가 공중분해 위기를 맞고 있다. 현상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돈벌이에 눈 먼 사회를 적폐의 본질적인 원인으로 손가락질하며 기성인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적폐에 대해 얘기하지만 사람들마다 원인과 해법이 입장에 따라 제각각이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 양식은 늘 사회적인 관습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선사 이후 축적되고 이어온 경험과 지식은 인간의 몸 속 깊숙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좀 유식한 말을 빌자면 인간을 사적(史的)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적폐를 대하는 저마다의 입장이 아이러니 하다. 모두 적폐를 대상으로 삼을 뿐 정작 자신은 무관한 것처럼 떠들고 있으니 말이다. 적폐라는 단어를 사회적인 키워드로 일약 부상시킨 대통령 자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라는 직은 늘 적폐를 찾아내 고치고 없애는 최고 정점이다. 이런 책임을 망각한 체 사회 곳곳에 내재해있는 적폐를 남의 얘기하듯 하니 당혹스럽다.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끝나고 시정을 책임질 일꾼들이 바뀌었으니 또 얼마나 적폐를 거론하며 혁파를 부르짖을까. 그러나 적폐일소는 자신의 통렬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비로써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빼고 적폐를 얘기하는 순간 반칙과 변칙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도 의사의 손이 오염돼 있으면 수술과정에서 환부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늘 곱씹어야 한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은 결과에 따라 적선(積善)과 적폐(積弊)로 양분할 수 있다. ‘더불어’를 앞세우면 적선이 될 것이고 탐욕으로 얼룩지면 적폐로 작동할 것이다. 살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적폐를 적선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묵자의 겸애를 새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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