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교사 합숙소의 사라진 '공간적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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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교사 합숙소의 사라진 '공간적 아우라'
  • 이희환
  • 승인 2014.07.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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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인천일보 협약]

▲ 공사중인 여선교사 합숙소 주변 /사진제공=민운기

인천 동구 창영동 42번지에 위치한 여선교사 합숙소 건물 주변이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이 건물의 현재 정식 명칭은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1993년 7월 시 지정 유형문화재 18호로 등록됐으며 2003년 창영교회에서 인수한 후, 지금까지 창영감리교회가 유지 및 관리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공사는 복지관 주변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고, 근처에 창영교회의 교육관인 비전센터를 건설하는 공사다.

문화재 주변의 공사를 위해서는 사전에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공사를 위해 창영교회에서는 2011년도에 인천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았다.

총 3단계로 2015년까지 진행되는 현재의 공사는 그러나 여선교사 합숙소가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주변경관과의 조화와는 크게 상반되는 대규모 공사로 진행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인천기독교사를 깊이 연구하고 있는 이성진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여선교사 합숙소가 처음 건축된 건 1890년대라고 한다.

19세기 말 미국 북감리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들이 합숙소로 사용했던 중요한 근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건물로 외형은 간소한 상자형으로 되었지만 지붕구조가 독특하고, 벽체구조는 적벽돌로 석화 몰타르를 쌓은 근세 르네상스(Renaissance) 양식이라고 한다.

누구나 한번쯤 이 일대를 지나다 이 건물을 발견할 때면, 자연스럽게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이 건물은 한국기독교사에 있어서도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1885년 북장로교회 언더우드 선교사와 북감리교회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제물포항을 통해 우리나라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기독교 포교가 시작되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고, 부인과 함께 온 아펜젤러 선교사는 6월21일 재차 인천항으로 들어와 7월 19일 인천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 예배의 열매가 바로 오늘의 내리감리교회로, 이 시기 미구 선교회에서는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했고, 자연스럽게 선교사들이 기거할 수 있는 숙소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 필요에 의해 지어진 건물 중에 하나가 바로 여선교사 합숙소였다.

지금까지 이 건물은 1905년까지 3채의 건물이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성진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여선교사 합숙소는 1894년에 준공됐다고 한다.

지상 2층, 지하 1층에 건평 142평짜리 문화재 건물 옆에는 남자선교사들의 숙소(현재의 인천세무서 자리)가 지어졌고, 또 다른 건물은 아펜젤러가 사택 등으로 사용했다.

여선교사 합숙소 건축을 주도한 사람은 1892년 인천에 부임한 내리교회 존스 목사(한국명 조원시)였다. 그는 이 일대에 한국 서지방(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연안 등)의 기독교 선교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일 일대의 땅을 매입했다.

1895년 멕시코 은달러로 600달러를 들어 우각리 38번지와 42번지 일대를 매수하였고 1897년 7월 뉴욕주 감리교 감독인 휴즈 목사의 재정지원을 받아 벽돌조 1층 건물인 에즈베리 목사관을 건축했던 것이다.

에즈베리는 감리교 창시자 웨슬러 목사의 지시로 미국에 최초로 파송된 감리교 선교사이다. 선교사 조원시는 미국 최초로 감리교를 선교한 에즈베리 목사처럼 기독교의 불모지인 한국 서지방을 선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예배당을 그리 명명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감리교 자립예배당과 남녀선교사 합숙소가 위치한 우각리 40, 42번지 일대는 이후 인천, 부평, 부천, 연안, 강화, 남양 등 도서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이곳의 성경교육을 통해 각 지역의 선교를 확산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한국기독교사에 있어 상징적 가치를 갖고 있는 여선교사 합숙소 건물은 언젠가부터 홀로 남아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파노라마를 상징적으로 전달해왔다.

여선교사 합숙소 앞의 100여 년이 넘은 노송과 나무, 정원 등이 어우러져 범접하기 어려운 공간적 아우라를 뿜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여선교사 합숙소 주변지역 공사가 자칫 건물만 댕그라니 남기고 여선교사 합숙소가 갖는 역사적 가치를 박제화시키고 문화재적 가치마저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지역문화계는 매우 우려하고 있다.

여선교사 합숙소 바로 옆으로는 지하주차장이 건설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건물의 안전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뿐만 아나라 창영교회 교육관으로 건설되는 비전센터가 건물의 외관을 특정방향에서 가려버리는 문제 또한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문화재 주변에 건축물을 지을 경우, 문화재보호구역 경계로부터 도시지역은 반경 200m 내의 건설공사를 할 경우 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2011년에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심의가 있었다. 그런데 심의가 소위원회에 넘겨져 너무도 쉽게 처리됐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소위원회 심의에서 첫번째 소위원회 심의 때는 위원장이 불참하기도 했다.

그날 첫 회의에서 한 위원이 "문화재 보호구역이므로 원형지 보전을 원칙으로 하여 과다한 형질변경과 수목제거를 하지 않는 쪽으로 설계할 것"을 지시하고 신축 건물이 너무 길고 거대하다는 지적과 함께 "지하층 부분이 문화재 부분과 너무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어찌된 일인지 현재의 공사에 별로 반영된 것 같지 않다.

차제에 문화재 주변을 어떻게 역사적 가치와 현세적 이익이 조화를 이뤄 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보다 엄밀한 대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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