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참여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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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참여민주주의
  • 박병상
  • 승인 2010.06.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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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눈에 잘 띄는 펼침막 하나를 만들어 붙인 뒤 떼어내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까. 자동차와 보행자의 이동이 많은 네거리가 전국에 몇 군데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번 선거 전후로 네거리에 펼쳐진 펼침막의 수와 그 비용이 상당하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개인에게도 부담이 꽤 컸을 텐데, 인천의 한 교육감 후보는 자신의 의지를 접어야 했다. 펼침막의 선정적 구호 말고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유권자에게 능동적으로 전할 수 없는 선거판에서 뜻을 같이 하는 이의 획기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네 거리마다 소리 잃은 펼침막들은 여전했다. 그 옆으로 당선사례를 알리는 펼침막이 새로 붙더니 다음 선거를 기약하고픈 펼침막까지 자신을 알리려 기를 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펼침막이 전국을 뒤덮었을까. 상상하기 어려운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직도 철거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펼침막 업자들은 이번 기회에 한밑천 단단히 잡았을 텐데, 4년 뒤에도 이러려나. 출마를 계획하려는 자는 펼침막 비용부터 확보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보가 자신을 알릴 수단은 펼침막과 벽보 이외에 알량한 명함이 있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으로 보내는 유인물이 추가되지만 큰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 자신의 장점만 늘어놓은 유인물을 액면 그대로 믿는 유권자가 몇이나 되겠나. 뜯지 않은 유인물이 내버려지는 현실을 보라. 연설 현장과 인터넷 누리집을 일부러 찾아가 비교한 유권자는 드물었을 테고, 대개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을 게다. 지난번처럼 바람을 반영한 선거 결과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노릇이지만, 짧은 선거 운동 기간 안에 후보의 됨됨이와 정당의 차별성도 제대로 인식할 방법이 현재까지 없다.

승리에 환호하고 패배에 당혹해 하는 정치권과 별도로 유권자, 다시 말해 시민들이 어리둥절한 건 언론마다 다투어 발표한 여론조사과 다른 결과를 자신들이 이끌어내었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선거처럼 한 정당에 당선자들이 몰린 데 다소 불편해 할 것이다. 단체장과 의원의 소속 정당이 일방적일 때 빚어지는 독선과 오만의 폐해를 진저리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현 지방정부의 실정을 심판의 차원에서 한표 행사한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민, 다시 말해 시민이 헌법에 보장된 주권을 행사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런 민주주의는 쉽게 형성된 게 아니다. 왕이나 독재정권의 압제를 허물고 주권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시민들은 투표일을 제외하면 노예에 불과하다고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냉소한다.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더러 있지만 저들이 끼워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나 끼워주는 게 아닌데, 끼어보아도 별 구속력도 없다. 민원을 띄워도 수렴, 해결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시민들은 소외될 따름이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실망한 뒤 표로 심판하고 다시 실망하는 일이다.

선거 결과를 놓고 정치권은 말버릇처럼 두렵다고 했는데, 이번엔 성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심판 이외의 시각으로 후보와 정당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유권자들은 후보로 나서는 인물의 됨됨이와 정당의 차별성을 진작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와 관계없이 시민이 정상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 체제가 늘 열어 있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당원으로 참여해 정부 보조금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정당을 키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시민의 힘으로 정당을 키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다양한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뿐 아니라 배려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시민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순수하게 작동하겠지만 참여하려는 자가 많으면 그만큼 번거로울 것이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스위스 같은 국가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효율적 정책 결정을 위해 시민들이 흔쾌히 유권자가 되어 대의원을 선출한다. 정책 결정에 앞서 대의원은 자신을 선출한 시민의 의견을 들어야하는 바로 그 대의제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의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다. 지방의회와 국회가 그렇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선출된 자들은 반드시 유권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논의에 들어가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그렇게 민의가 수렵된 정책은 불편부당하게 시행해야 한다. 한데 현실은 어떤가.

정치권은 걸핏하면 국민이 어쩌고 민의가 어쩌고 들먹이며 자신들의 태도에 정당성을 과시하려들지만 과문한 탓인가, 사전에 시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묻고 정책에 반영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대의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는 선출된 자는 투표 행위를 마친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 적반하장이다. 이럴 때 대의제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참여민주주의다. 한데 주권자가 직접 참여하므로 민주주의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학자들이 말하는 참여민주주의에 누가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 시민운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시민단체는 회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에 맞는 단체에 스스로 찾아와 가입하고 행동할 수 있다. 한 개인이 같은 마음을 가진 시민들과 모여 의기투합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고 깊은 국가들은 시민단체가 참여민주주의의 역할을 기꺼이 맡고 정치권은 투명하게 배려한다. 선거 기간과 관계없이 정당과 정부의 정책들을 살펴보며 질의하고 그 대답을 공개한 뒤 대응한다. 시민단체의 종류는 다양하다. 여성정책을 모니터링한 뒤 진정성을 인물과 정당별로 차별화해 공개하면 회원들은 선거 전에 파악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이고 환경과 노동, 복지와 평화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시민단체가 그렇게 행동하는 한, 어떤 정당도 시민사회에서 불신의 대상인 자를 후보로 내세울 수 없다. 지지받지 않는 정책을 선보일 수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회원이 유권자의 수와 비슷한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시민단체의 역사가 일천하고 뿌리도 깊지 않다. 언론이 제몫을 다하지 못하는 마당에 시민단체의 행동이 미약하니 우리의 참여민주주의는 아직 불충분하다. 그래서 시민들은 중앙과 지방정권에 반복적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평소 민의를 파악하고 반영하려 정치권이 노력해왔다면, 시소를 타는 선거 결과는 심각하게 빚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않아 그런지 아직 대의제민주주의에 대한 준비와 연습도 부실하다. 언제까지 반목할 겐가. 소통을 차단한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한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의사 결정 과정에 투명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민원을 띄워 정부나 의회의 답변을 듣는 정도에서 그칠 수 없다. 참여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 어떤 절차로 누가 어떻게 논의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의회나 정부에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약하다. 시민단체의 일원이 되어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에 참여는 편이 강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강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제 목소리를 가진 시민단체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내일의 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한계를 가진 대의제민주주의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세금을 내는 시민은 참여의 자격이 충분하다. 종교나 정치 성향과 무관하고 인종과 계층을 구별할 이유가 없다. 공무원이라도 관계가 없어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부모도 오늘보다 내일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 시민들은 대의원을 뽑았지 군림하려는 자를 선발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 사실을 새삼 강조했지만,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나 권력으로 재단될 수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역시 시민이 한발 더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일을 위해, 가입할 시민단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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