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앙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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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면 앙돼요!
  • 이정숙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 승인 2014.07.17 15: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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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59)
 
교사들은 본성적으로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집단에 속하는 듯하다. 성실함을 무기로 조용하고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된다. 그래서인지 뭔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상황을 견디며 참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도 하다.

이런 참을성 덕분에 3월이 되면 김샘은 옮기는 자리마다 뭔가를 마련해야 했다. 프린터가 없으면 왜 여기는 프린터가 없냐고 여기저기 하소연을 해서 프린터를 마련한다. 주변 샘들은 거긴 원래 그렇다고 한다. 김샘은 컴퓨터가 거의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시 주문을 해 달라고 또 여기저기 하소연을 한다. 그러면 또 주변 샘들은 거긴 원래 그렇다고 심드렁하게 이야기 한다. 과학시간 실험기구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면 이 학교는 원래 그래왔다고 한다. 별로 문제를 삼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참고 있다.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참아왔던 걸까? 그렇게 참으니 그 다음에 그 자리에 온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나쁜 사람이 되거나 쌈닭이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참을성을 기른 이유를 알만도 하다. 아무리 아무리 얘기해도 바뀌는 건 없고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건 짜증섞인 반응들 뿐이니 '차라리 서로 건드리지 말고 지내자'라는 소신을 점점 더 갖게 되는 지도 모른다.

작년 겨울, 김샘은 영하의 날씨에 호호 불며 수업을 하다가 히터를 켜달라고 여기저기 행정실로 교장실로 전화를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피크에 걸려 다운되기 때문이라는 대답 뿐, 참으라는 얘기만 듣게 되었다. 해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만 늘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늘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할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생각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어떤 관리자는 교육청에서 난방비를 절감한다는 명목 하에 난방비 많이 쓰는 학교를 서열을 매기기 때문에 함부로 히터를 틀 수 없다고 책임을 미룬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은 설치만 되어 있을 뿐 제 능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천정에 매달린 에어컨이 장난감이라 작동을 못한다고 한다. 언젠가 직원회의 때에는 폭염이 계속되는데 틀어줄 수 없는 이유를 ‘교장샘이 오늘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권한은 교장샘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에도 불평 하는 사람 하나 없다. 참는 게 생활화 되어 있기만 하다.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뭔가를 요구하면 늘 예산이 문제라고 한다. 그 많은 예산은 어디로 간 걸까? 스마트 연구학교에 그 비싼 기기들은 전부 지원하면서도 일반 컴퓨터가 고장 나 업무나 수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학습준비물이랄지, 아이들 학급 경비랄지 난방 등은 관리자의 생색이 나는 덕목이 아니다. 그러니 관리자들은 기본적으로 써야 할 예산보다는 ‘00연구학교’나 ‘00특색사업’ 등 자신이 생색나고 뭔가 실적이 될 만한 것에 예산을 쏟아 붓고는 아이들의 일상과 학습지원은 나 몰라라 식이다. 그러면서 그런 데에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한다. 교육자들이 행사를 만들고 대내외적으로 뭔가 번듯한 일을 치르는 행위에 교육을 덧입혀 신념에 가득 차 있다. 학교 예산이 진정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의견이 늘 다르다면서도, 이런 상황을 샘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십년을 그런 저런 이유로 버텨낸다. 문제를 확대시켜 봤자 바뀌는 건 없고 자신만 피곤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교사들은 깰 수 없는 바위를 향해 달걀 던지기를 멈추고 차라리 참고 만다. 그래서 길러진 참을성은 모든 일을 무심하게 만들거나 나만 보신하면 그만이라는 보신주의로 변질된다.

세월호 참사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고 그것을 참아낸 자들의 지옥이었다. 그 혼돈 속에서도 참고 기다린 대가가 삼백 명의 목숨이었다.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야 말았다. 학교라는 곳은 ‘가만히 있으라는 곳’이다. “빨리 의자에 앉아!”, “똑바로 의자에 앉아”를 줄곧 외쳐 대지 않는가. 가만히 앉아 조용히 있으라고? 예전에 의자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왕의 자리, 양반의 자리, 00의 자리...... 그 의자들은 일반 사람들이나 천민들이 앉는 자리는 아니었다. 물론 의자라는 물건이 권력만을 상징하고 있지는 않다. 소박한 의자는 휴직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의자는 일과를 마치고 고단함을 털어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던가.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고 물건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고정된 자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고정시키기 위한 의자는 그 자리에서 고정된 자세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일조하는 틀이 되었다. 그리고 점차 고정된 자리는 사무실과 학교로 확산되어 갔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고정된 틀 속에 갇혀 일정한 행동과 사고를 하게 되었고, 그 의자들에 앉아 수동적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 특히 학교란 곳은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실행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자발적인 질문보다는 수용을 강요하는 사회가 당연한 듯이 되어버렸다. 어느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이미 타성에 젖어버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우리가 빠져 버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양산하고 계속 수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그것들이 서서히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벗어나지 못하게 견고하게 쌓고만 있다. 아직도.
 
1968년 봄. 68년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기숙사 출입 규제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시위는 냉전과 베트남전 등의 시대적 문제와 결부되면서 프랑스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당시 컨베이어벨트에 묶인 숨 쉴 수 없는 대량 생산체계로부터 삶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학벌과 돈이 권위를 낳는 획일주의, 권위주의, 학벌주의, 남성주의에 반발하였으며 반체제 반문화를 외치면서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였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도대체 저 철없는 것들은 뭐가 가치 있다고 피까지 흘리며 저 난리들을 치는 것인가? 먹고 살만하니까, 전쟁을 안 겪어봐서, 배가 불러서?"라고 젊은이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계속해서 주입식 교육, 획일적 강요, 불안정한 고용과 미래, 억압과 권위에 저항했으며 불의를 애써 모른 척하는 이 꿈쩍도 않는 사회에 저항했다. 마침내 학교 안에 경찰이 투입되고 구타당하는 학생들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방관했던 시민들이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일부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몽상가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의 주장과 행동은 계속해서 확산되어 나갔다. 68학생운동으로 단시간에 프랑스 국회가 해산되고 독일에서는 긴급조치법이 발효되면서 학생운동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치열함이 결국 정권을 바꿀 수도 없었고 어떤 전복을 실행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혹자는 그것을 실패한 혁명이라고도 말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의 각 방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당시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점차 조금씩 제도화되어 사회 변화의 초석으로 작용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규범과 학문의 흐름조차 그 시점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만큼 인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인식되었으며 오늘날 유럽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부조리와 모순, 억압과 폭력, 획일과 불평등, 금전만능과 학벌주의는 지금도 이 땅에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이 변화되는 것은 누군가 해야 할 일도 언젠가 할 일도 아니다. 바로 지금 내가 맞닥뜨린 이 일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저항하는 사회, 비판의식들이 모여들 때 그 사회가 바뀌고 나아가는 사회가 된다. 사십 여 년 전의 그 치열함이 있었기에 오늘 도시자치운동, 여성운동 등이 생겨날 수 있었으며, 소수의 권리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바라는 것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그런 것들이 바뀌거나 우리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요즘 김샘은 아이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조용히 하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기다리라고 하는 말들을 차마 하지 못한다. 더 이상 소리 없이 침몰하지 않기 위해. 올해에는 그 말을 금기어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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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원 2014-07-18 08:20:31
인천 인 뉴스를 접하면서 첨으로 의견을 올립니다..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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