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인천에는 재즈의 역사가 흘렀다“
상태바
“그날 인천에는 재즈의 역사가 흘렀다“
  • 배영수 객원기자
  • 승인 2014.07.21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텀라인 주관 ‘한국 재즈 1세대 밴드’ 공연 [낭만 인천, 음악에 빠지다] 관람기
 
“사실 재즈 1세대 분들이 연주하는 공연은, 작은 공연이든 큰 공연이든 항상 역사에요. 차가운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이분들이 삶 속에서 언제든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번 공연하면 역사가 되고, 그 다음 주에 공연하면 그건 또다시 새로운 역사가 됩니다. 그들의 연주에서 의미가 있고 기대가 되는 것이라면, 이분들의 공연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목격하고 있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속칭 ‘한국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으로 일컬어졌던 한국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의 생애와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감독 남무성)에서 재즈 평론가 김현준이 했던 코멘트다. 한국전쟁 이후 미8군을 중심으로 연주생활을 하면서 ‘재즈’라는 의미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토양을 일군 1세대 연주자들의 노력은 (조금 과장하자면) 수백 년을 돌밭을 일구며 개간에만 매달려야 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고통과 맞먹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의 재즈 음악 축제들이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고 한 달에도 상당한 양의 재즈 앨범들이 제작되는 현재의 풍토는, 바로 이 선배들의 ‘개간’과도 같은 고통의 작업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 20일 송도국제도시 트라이 볼에서 열린 ‘한국 1세대 재즈맨’들의 콘서트는 한국의 재즈사에서 그런 의미로 ‘역사’가 되는 공연이었다. 1999년 인천에서 연주를 가졌던 적은 있었지만 1세대 뮤지션들의 연주회가 인천에서 열리는 것은 재즈를 좋아하는 팬들도 상상을 잘 할 수 없었던 그림이었다. 더군다나 노령으로 인해 언제 은퇴를 하고 무대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위대한 음악 거장들의 연주를 인천에서 아무런 금전의 대가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인가는, 사실 가늠 자체를 할 수 없는 수준의 경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관웅 선생을 비롯해 클라리넷의 이동기 선생, 색소폰의 김수열 선생, 트럼펫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진 최선배 선생, 드럼에 임헌수 선생, 그리고 1세대 베이스 연주자들이 모두 고인이 된 관계로 베이스에는 2세대 연주인에 해당하는 장응규 선생으로 이루어진 1세대 재즈 밴드는, 아트 블레이키 앤 재즈 메신저스(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의 연주로 가장 유명한 베니 골슨(Benny Golson) 원작의 ‘Blues March’를 연주하며 등장했다. 이들은 이날 공연에서 딕시랜드 재즈의 고전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과 ‘Moon Glow’ 등의 스탠더드 재즈 넘버들을 너무나 여유로운 분위기 아래 풀어냈고,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의 원곡 ‘Caravan’을 연주하면서는 젊은 연주자들보다 더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공연장 가득 뿌려댔다. 이날 연주한 곡들 모두는 과거 이들이 서울의 콘서트와 클럽 등에서 자주 선을 보였던 것이기도 했지만, 같은 곡을 연주함에도 한 번도 똑같은 연주가 나오지 않는 재즈의 짜릿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20대 시절 1세대 재즈맨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적으로 성장했기에 분위기 자체는 꽤 익숙해져 있는 글쓴이 역시도 그 짜릿함이 느껴졌거늘, 인천에서 이들의 연주를 처음 접했을 다수의 관객들은 오죽했으랴.


 
중후반부에 등장한 재즈 보컬리스트 김 준 선생의 무대는 이날 관객들에게 익숙한 감성을 전달해 주기에 충분했다. 과거 ‘빨간 마후라’로 유명한 자니 브라더스 출신이기도 해 나이 지극한 관객들 다수가 알아보기도 했던 그는,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로 잘 알려진 ‘What A Wonderful World’를 비롯해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그리고 줄리 런던의 곡이자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리메이크로도 잘 알려진 ‘Fly Me To The Moon’ 등을 노래했다. 한국인들이 연주보다 보컬 곡에 익숙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이날 관객들에게는 그가 노래했던 시간이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김 준 선생의 다소 투박한 영어발음이 오히려 정감 있게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테렌스 블렌차드의 연주곡이자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연주곡 ‘Mo’ Better Blues’를 연주하고 열화와 같은 앙코르를 받아 베니 굿맨의 오리지널인 ‘Sing Sing Sing’이 피날레를 장식하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앞서 언급한 재즈 평론가 김현준의 코멘트처럼, 이들의 공연은 요즘 시대엔 정말로 매번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 이들의 연주를 직접 경험하며 성장한 글쓴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역사는 보다 뼈저리게 다가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삼성동의 섬유센터 건물에 위치한 재즈 파크 공연장에서는 이들의 공연이 자주 열리기로 유명했다. 공연관람에 비용이 들지 않았거나 1천원 정도의 문화진흥기금 정도가 걷히는 게 전부여서 시간이 할애되는 직장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글쓴이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한두 달에 한 번씩 1세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1세대 멤버와 현재의 1세대 멤버는 차이가 생겼다. 2007년 트럼본 주자 홍덕표 선생을 시작으로 이듬해 드러머 최세진 선생을 비롯해 이후로도 많은 1세대 재즈 연주자들이 세상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3년 고희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던 트럼페터 강대관 선생은 연주 중 이가 부러지며 무대에서 사라졌고 현재 경북 봉화에서 농사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 등 은퇴를 한 경우도 있다. 트라이 볼에서 공연한 멤버들도 언제 연주가 멈춰질지 알 수 없다. 색소폰과 클라리넷, 트럼펫은 모두 이가 온전하지 않으면 연주가 불가능한 악기들인데 클라리넷의 이동기 선생은 이 치료를 받기 위해 연주를 쉬는 적도 많았다. 보컬리스트 김 준 선생과 피아니스트 신관웅 선생은 과거 암으로 인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80년대 이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고 [Jazz At The Janus]라는 음반까지 냈던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선생 역시 나이로 인한 건강문제를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그나마 아직도 건강한 1세대 연주인이라면 드라마 ‘수사반장’의 테마곡을 만든 주인공이자 국내에서는 ‘타악기의 1인자’로 유명한 류복성 선생이나, 이날 트라이 볼 무대에 오른 김수열 선생, 프리재즈의 달인 강태환 선생과 재즈이론가 이판근 선생 정도일 텐데, 이판근 선생은 재즈 이디엄 등 이론연구와 후학 양성 등에 집중하고 있어 원래부터 무대에서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고, 류복성, 김수열 선생 등을 포함한 1세대 연주인들은 현재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없다보니 재즈를 아무리 많이 좋아하는 팬들이라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피아니스트 신관웅 선생이 운영하던 서울 홍대 인근의 재즈 클럽 [문 글로우]가 영업할 당시엔 그 작은 무대에서라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 [문 글로우]가 작년 폐업하면서는 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때문에 한국재즈 1세대의 연주는 어떤 무대에서 어떻게 연주를 하던 역사가 되고, 관객들은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인천에서 또 한번의 획을 그었다. 이들의 공연을 현재 시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몇 명의 1세대 동료들이 고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복(福)이었다. 때문에, 글쓴이는 바라건대 조만간 이 1세대 연주인들의 콘서트가 인천에서 다시 한 번 열릴 수 있길 기대한다. 더불어 누군가 그들이 은퇴하고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연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볼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굴러온 문화적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우매한 행위를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역사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하여도 핸드폰 컨트롤 부재와 허가되지 않은 사진촬영 등 수준 이하의 에티켓을 보였던 관객 풍토는 앞으론 좀 변화될 수 있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