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타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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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타령하다
  • 김기용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4.07.3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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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61)
 
체험학습이 즐거운 학생들
 
▲ 사랑【명】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 타령【명】말이나 노래를 자꾸 되풀이함. 또는 그런 말.
 
그렇다면 ‘사랑타령’은 ‘상대를 매우 좋아한다고 자꾸 되풀이 하는 것’ 쯤 되는가?
 
1950년대 격변의 혼란기, 이 남자는 혁명과 사랑에서 단맛, 쓴맛을 다 본 사람이다. 그의 동지이자 아내인 주세죽은 소련에서 다른 동지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그녀는 그가 1927년 일제 치하 감옥에서 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풀려나서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할 때 만삭의 몸으로 동행한 ‘필연의 사랑’이었다. 사랑을 잃은 그는 두 번째 부인 정순년을 만났지만 그가 지하로 잠적하면서 연락이 끊어졌고, 광복 후엔 북한 2인자가 되어서 26살의 젊은 윤례나와 결혼했다. 그러나 얼마 후 미제간첩의 혐의로 사형을 당함으로써 그나마 젊은 아내로부터도 떠나게 되었다. 남자만큼 곡절 많았을 정순년도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남한 사회에서 실패한 혁명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고달프고 힘겨웠을 것이다. 이 남자는 박헌영이다. 이렇게 사랑은 혁명만큼이나 이루기 어렵다.
 
사람들은 그녀를 ‘한국 고아들의 할머니’라고 부른다. 버서 매리언 홀트 여사. 그는 1955년 육이오전쟁의 참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충격을 받아 남편 해리 홀트와의 사이에 이미 6명의 자녀를 두고도 한국 고아 8명을 입양했다. 백만장자였던 부부는 그 뒤 한국의 고아 구호사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1964년 남편이 작고한 뒤 여사는 사업에 더욱 힘을 쏟아 7만여 명을 외국인 가정에 입양되도록 하고 1만 8000여 명을 국내에 입양시켰다. 또 입양사업을 세계 곳곳으로 확대했다. 그러다 2000년 96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타계한 여사는 생전의 소원대로 한국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묻혔다. 홀트 여사 부부의 금슬이 아름답고, 무엇보다 혈연과 관계없이 베푼 그 희생과 봉사와 인정이 아름답다. 이렇게 경계를 넘어선 끝없는 사랑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길이 남기 마련이다.
 
세간에 ‘꿈같은 사랑’이 화제다. 꿈같은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절절한 말인가? ‘꿈같은 사랑’이나 ‘끝없는 사랑’같은 말들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꿈같고 끝없는 사랑이라는 말에서 그 누가 무덤덤하게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학창 시절 그는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지 몰두하는 성격과 함께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들었다. 이러한 손재주는 훗날 그가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종교계와 기업 활동으로 축적한 재산도 엄청나서 그 일가가 보유한 가치가 약 2,4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2012년에는 프랑스 남부의 한 마을을 52만 유로(약 7억 7,000만 원)에 통째로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치계와 연예계에도 상당한 인맥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대참사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되어 도망 다니더니 사인 미상의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시신 주변에 있던 가방에서는 자신의 시집 제목 '꿈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 문구에는 개인 삶의 깊은 흔적이 묻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무엇인가? 나에게 아름답고 절절하다면 타인에게도 그런 것이다. 책임을 피해 도피 중에 종국을 맞은 그의 사랑은 얼마나 황당스러운가? 그 꿈같은 허황함에 세간의 이목이 주목하는 것일 게다.
 
방학 전 교실의 파일들을 정리하다보면 묵은 글 파일들이 더러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2012년 11월 21일(수)’라는 걸 보니 몇 해 전 쓴 교단 일기의 한 부분인가….
 
오늘 3교시, 6학년 8반 수업이다. 음악실로 사용하고 있는 수업연구실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웅성웅성 한다. ‘먼저 수업의 경계를 세운 후에 수업 구성이던 디자인이던 해야 한다.’는 상식에 따라 집중시키려 애를 써보지만 오늘따라 유난하다.
“여러분, 안되겠어요.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군요. 모두 하던 일 멈추고 자리에 눈 감고 엎드리세요. 조용히 수업할 수 있는 진정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그래도 “쑥덕쿵, 히히히, 깔깔깔”이다.
“아니, 요것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요?”
돌아다니면서 솟구친 머리통들을 꾹꾹 눌러준다.
그런데 저쪽 분단의 정민이는 용감하게 머리를 높이 들고는 계속 속을 긁는다.
“얌마, 잠시 엎드려 있으라니까!”
뒤통수를 콱 누르는데, 이런, 뭔가 이상하다. 똑 부러져 떨어지는 안경테 하나.
아뿔싸, 안경을 쓰고 있었구나. 일순 분위기는 냉랭해지고 그 후로 수업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고요하게 끝이 나고.
“여보세요. 정민이 아버님이시군요. 오늘 정민이 안경 오른쪽 테가 음악시간에 부러졌는데요. 저는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어쩌고저쩌고…”
“정민이가 잘못을 했겠죠. 네.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와는 이렇게 정리를 하고는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4교시 중에 차에 태워 안경점으로 갔다. 가장 비슷한 거로 골라달라니까 마침 딱 맞춤이라며 추천해 주었는데, 정민이 눈치를 보니 다른 생각이 있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는 말,
“선생님, 다른 색깔로 하면 안돼요?”
얼굴은 이미 환하게 밝아져 있다. 생각이 이미 엉뚱한 욕심에 가 있으니 당연….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
“밥도 먹고 들어가자. 네 덕분에 점심을 밖에서 다 먹어보네.”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 고르라니까 ‘나들이김밥’을 먹겠단다. 라면을 시켜 김밥은 같이 먹자니까 자기는 라면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김밥 세 줄. 그리고 서비스 국물 두 그릇을 함께 먹다먹다 배불러 한 줄은 거의 남겼다. 다정하게 서로 많이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 좀 하고. 네, 알겠습니다. 중얼중얼, 쩝쩝쩝…. 다른 사람이 사정이라도 알면 우습게도 그렇게 지내다 다정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나는 음악 전담선생이다. 학교 밖에서가 아니고 교실에서 음악을 하며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해야 할…. 갈 길이 아직 멀고도 멀었다.
 
선생을 하다 보면 매일 아이들과 찧고 빻고 별일이 다 있지만 만족하며 지낼만하다. 식자들은 요즘 같은 시절, 웃음 짓고 지낼만 하면 그게 행복한 거라고 말할 것이다. 어쨌든 모든 것이 다 아이들 때문이다. 고맙다, 좋아한다, 천 번을 불러대도 성에 안 찰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 응석덩어리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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