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총각’과 ‘호구’가 만든 감성코믹SF연애판타지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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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총각’과 ‘호구’가 만든 감성코믹SF연애판타지 "개봉박두"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8.06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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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수상 후 3년 만에 전국개봉하는 ‘숫호구’ 백승기 감독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사랑 한 번 못해본 욕구불만 청년 숫호구 ‘원준’은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또래 친구들 다 하는 번듯한 직장생활, 연애, 결혼도 원준은 쉽게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생명공학 박사가 진행한 비밀 생체실험으로 자신이 맘껏 조종할 수 있는 완벽한(?) 몸매와 얼굴의 슈퍼 섹시 아바타를 갖게 되고 원준은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쾌락을 맘껏 누리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중 동네 헌책방 아르바이트생 ‘지나’에게 반하지만 그녀는 원준의 본 모습이 아닌 아바타를 사랑하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 공간들, 소품들에 상상력만 더해지면 어떤 영화라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배워 본 적이 없다. 대신 영화로 놀아본 적은 있다. 영화 만들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다.”

미술교육 전공. 전직 미술교사. 영화가 좋아서 친구들과 영화사를 차리고 망하기 직전에 첫 장편영화를 찍었다. 친구와 후배를 배우로, 주변 물건을 소품으로 활용하고, 고향 인천을 마음대로 배경에 삽입했다. 의욕은 넘치지만 열등감과 무기력 때문에 외로운 청춘들에게 던지는 희망 코미디. 오는 8월 7일 개봉하는 ‘숫호구’ 백승기 감독을 만났다.

 

방황하는 친구들 모아
B급보다 낮은 C급 영화사를 만들다


- 2005년에 ‘꾸러기 스튜디오’라는 영화사를 만들었다. ‘C급 전문 영화사’를 표방한다고 하는데 백 감독이 생각하는 C급 영화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B급보다 낮은 급이다. 소위 저예산 독립영화를 B급이라고 하는데 요즘의 독립영화는 ‘저예산’도 아니고 ‘독립’도 아닌 준상업영화가 돼 버렸다. 한 마디로 수준이 너무 높다. 우리는 캠코더 한 대 가지고 영화를 찍는데 B급에서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해서 한 단계 내려가자 싶었다.

또 다른 해석이 있다. ‘숫호구’를 찍고 나니 묘한 공식이 생겼다. 캠코더Camcorder(촬영용 카메라 아님)-일반 컴퓨터 편집Computer(맥 아님)-온라인 커뮤니티Community(오프라인으로 좀처럼 나오지 못함), 다 C가 들어간다. 거기다 한창 단편을 많이 찍을 때는 아침에 기획해서 오후에 찍고 밤에 상영하기도 하면서 ‘급’하게 만들었다. ‘C+급’, 그렇게 C급이기도 한다.

- 연출, 제작자 중에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하는데 ‘꾸러기 스튜디오’의 주요 멤버는 어떻게 구성했나.

대부분 대학 동기들이다. 미술교육과를 다녔는데 과에서 방황하는 친구들을 모았다. 올 4월까지 중학교 기간제 미술교사로 일했는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적응하기 싫어하는) 학생들과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다. 재활 프로그램 만드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주요 촬영지는 인천. 배다리가 주요 무대다. 그밖에 용화반점, 인천집, 화도진공원, 자유공원, 홍예문. 지금은 없어진 ‘더 술’이라는 주점과 화수동에 있는 부모님 가게 ‘백억상회’도 나온다. 자주 가던 곳, 단골 술집, 중국집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돈 없고 백 없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꾸러기 스튜디오’는 6개월 만에 통장잔고 100만원을 남기고 쓸쓸히 후퇴할 준비를 한다. 그러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후배와 지인들을 설득해 ‘숫호구’를 찍기 시작한다. 대본도 콘티도 없었다. 대본쓰기에 자신이 없어 그 에너지를 영화 만드는 데 쏟아 붓자고 생각했다. 주연을 맡은 본인은 물론 다른 배우들도 대본, 콘티가 없는 것에 토를 달지 않았는데 모두 ‘연기 초짜’, ‘영화 경험 초짜’였기 때문이었다.


2011년 1월과 2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중간에 바뀌어 이미 찍은 장면을 다시 찍는 등 고생도 많이 했다. 그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는데 스텝들과 제자들이 힘이 돼줬다. 아쉽게도 ‘숫호구’는 ‘청소년 관람불가’. “성적욕구 불만인 캐릭터가 나오긴 하지만 정말 정말 에둘러서 표현했는데... 제자들과 같이 보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워요.”

 

'숫호구' 포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서른살에 처음 시작하는 영화 만들기>라는 책도 실제로 그가 쓴 것이다.
 

 

야한 제목 붙여서 인터넷에 뿌릴까...
타락하기 일보 직전에 앳나인 정상진 대표가 구해주다


- 201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외국에 초청도 받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할 때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작은 규모의 영화제에서도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부천에서 연락이 왔다. 이후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도 초청 상영을 했다.

지난해 아트나인이 기획한 ‘제1회 추석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소개된 것은 진짜 큰 행운이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기획된 영화제였는데 ‘숫호구’가 매진이 됐다. ‘숫호구’ 배급사인 ‘앳나인’ 정상진 대표가 우연히 이 영화를 봤고 배급을 자처했다.

부천에서 (관객들이 선정한) ‘후지필름이터나상’을 받을 때만 해도 금방 개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잘 안 됐고, 작년 가을에는 스텝들과 공중낙하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왕 찍은 거 하드디스크에서 묵힐 수는 없었다. 야한 제목을 붙여서 인터넷에 뿌릴... 타락하기 일보 직전에 정 대표가 구해 준 거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 런닝타임이 80분이다. 원래는 몇 분짜리였나.

처음에는 3시간 10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2시간 10분짜리로 편집한 걸 보여줬다. 그걸 또 줄여서 부천영화제에는 1시간 45분짜리로 출품했다.(줄이길 잘했다) 이번에는 80분으로 편집했는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족한다.

 

결핍, 열등감, 트라우마...
숨기려고만 할 게 아니라 반대로 그걸 내세워 즐기고 싶었다


- 어릴 때부터 영화를 찍고 싶었다면서 왜 미대에 갔나.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댄스가수였다. 그 다음이 영화감독. 미술도 좋아했다. 그런데 댄스가수와 영화감독은 나 같은 사람은 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일만 같았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마침 인천예고가 생긴다는 소식이 있었고 예고에 입학하면 미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술은 길이 보였다. 그래서 미술교육과에 갔다.

-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 연출을 했다. 실제 성격과 얼마나 비슷한가.

연애는 하고 싶지만 서툴고, 잘 표현 못하고, 밀당도 못하는 게 나랑 비슷하다. 왜 좋으면 좋은 티가 나고 싫은 티도 잘 못 감추는 성격 있잖나. 그게 바로 나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내성적이고,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다.

우리사회는 솔직한 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할까. 나쁜 남자를 바라는 심리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솔직한 게 왜 나쁜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인 통념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아무리 영화라지만 자기 얘기를 드러내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가까운 데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내 안에도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것 같았다. 멋진 주인공의 얘기가 아니라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박한 스토리를 담고 싶었다.

나에게도 결핍, 열등감, 트라우마가 있다. 숨길 게 아니라 반대로 그걸 내세워서 즐기고 싶었다. 소재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작은 것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내가 창조하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물론 용기가 가장 필요했다.



두 번째 장편영화는 ‘시발놈’-始發, 인류의 시작
산과 바다 찾아 해외 로케도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인가.

작품은 다 찍었고 편집만 남았다.(‘숫호구’도 편집만 1년이 걸려서 이 영화도 금방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진화가 된 첫 번째 인간 이야기다. 제목이 ‘시발놈-인류의 시작’인데 이런 소재를 갖고 오게 된 사연이 있다.

‘숫호구’ 찍을 때 차량통제가 너무 힘들었다. 적은 인원으로 촬영하다보니 스텝이 부족해 차량을 통제하지 못했다. 한 장면에 (차 때문에) 서른 번 NG를 낸 적도 있다. 두 번째 영화는 차 없는 곳에서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대사 쓰는 게 어려워서 말 없는 영화로 가자고 했다. ‘시발놈’은 산에서 생활하는 원시인 이야기다. 정상진 대표가 지원해준 1천만원으로(우리한테는 엄청 큰 돈이었으므로) 네팔, 태국으로 해외 로케도 다녀왔다.



백승기 감독은 대한민국의 영화판은 틀이 짜여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천만이 넘은 영화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가족영화로 부모 세대와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게끔 중년배우와 꽃미남을 적절히 배치하고 웃음과 눈물, 액션을 적절하게 섞는다. 그걸 원하는 대중은 그걸 보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 다양성을 만족시켜주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얘기가 다르다.

“우리 영화가 당장은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욕은 넘치는데 욕구불만인 분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사회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숫호구를) 추천하고 싶다. 내 작품을 보고 용기를 얻어 젊은 감독들이 패기 넘치는 도전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투자만 기다리고 있지 말고 저예산으로 전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백 감독은 독립영화 극장에 활기가 생겨 준상업영화를 표방하는 독립영화가 아닌 ‘리얼 독립영화’의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숫호구’는 7일 영화공간주안과 CGV인천에서 개봉하며 10일(일) 오후13:30, 18:10 CGV인천에서 감독과의 대화(GV) 시간을 갖는다. GV 후에는 지난해 댄스그룹 'Risky(위험한)'를 만들어 음반을 발매한 감독의 댄스 타임도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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