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도 영웅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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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영웅을 꿈꾸는가
  • 이정숙 선생님(인천교육연구소)
  • 승인 2014.08.27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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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65)

여름에 창문을 열고 수업을 하다보면, 근처 산에서 내려오는 독한 모기들이 들어와 아이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김샘은 교실에 방충망을 설치해줄 것을 학교에 건의했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말은 예산 부족이라는 것이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나오는 말이다. ‘예산을 꼭 한꺼번에 집행해야 하나, 예산이 적으면 적은 대로 한 층씩 순차적으로 해 주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개학을 하자 학교 상담실만 설치하는 것은 비용이 적어서인지 상담사 샘의 끈질긴 요구에 힘입어 드디어 방충망이 설치되었다. 상담사 샘은 그 더운 여름 다 견디고, 선선해져서 별로 아쉽지도 않을 이때서야 설치해 주었다고 영 못마땅해 한다. 상담사 샘의 하소연에 김샘은 이제라도 얼마나 다행이냐고 위로를 보냈다. 이렇게라도 선임자가 해놔야 다음 사람이 할 일이 적어진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종일 징징거리고 떼를 쓰고 간혹 극단적인 투쟁을 해야 뭔가 얻어지기 일쑤다. 작년 내내 교실을 옮겨다니며 프린터가 없거나 고장난 교실에 가게 되면 끈질기게 얘기하고 징징거려 설치한 프린트만 몇 대인가. ‘가만히 참지’  못하는 덕분에 김샘은 늘 쌈닭이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착한 샘들은 ‘내가 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말해봤자 되지도 않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당신이 안 해놨기 때문에 그 다음 사람이 쌈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김샘은 며칠 전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었다면서 농성이나 하고 시위나 하고 있게 되나? 나라면 그저 묵묵히 내 직장에 복귀해서 내 할 일을 할 텐데..”하면서 작금의 세월호 가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동료를 향해 뭐라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이 사람 역시 ‘나만 참으면 된다’는 자신의 미덕에 만족하느라, 혹시 다른 쌈닭들의 수고로움을 잊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각종 혜택과 보상을 받으면서 늘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라고 하는 이 사람은 자기가 누리는 많은 혜택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 애쓴 땀이나 혹은 목숨 값을 치르고 누리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장지아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무도 찾지 않는 척박한 땅에 수 십 년간 도토리를 심어 숲을 만든 노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숲의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사람들은 숲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소위 여름휴가 시즌을 기획한 빅3영화 <군도>, <명량>, <해적>이 있다. 이 중 <군도>는 기대심리에 못미처 개봉 당시 분위기를 띄우기도 전에 <명량>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고 <명량>의 천국이 되어버렸고, <해적>은 뒤늦게 배를 탄 채 코미디라는 차별성으로 선전 중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중 영화 <명량>이 천만을 훌쩍 넘어 천 칠백을 향해 순항 중이라고 한다. 혹자는 2천 만을 넘본다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 관객 수를 마치 게임스코어를 매기듯이 ‘매일 기록을 경신해 나간다’는 주제로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의 경박함과 배급사의 횡포에 놀아나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더 영화를 질 낮게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영화 <명량>이 단시일 내 천만의 신화를 이룬 현상을 해석하면서 혹자는 리더십이 부재한 현실의 반영이라 말하고 혹자는 배우의 힘이라 말하며, 또 혹자는 방학이라는 틈새 시장과 배급사의 애국심에 호소한 마케팅전략과 여타의 대중심리가 맞물려 이루어낸 쾌거라 말한다. 그러면 왜 이 시기에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장면,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진 케케묵은 이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와 굳이 영화한 것일까? 여기에 연기력 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주인공은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빛바래진, 그래서 잊혀져 버린 것 같은 희생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단어를 끄집어내어 다시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고 근사한 발언을 한다. 감독은 시사회에서 패배감과 두려움이 가득 찬 조선 땅에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기적을 일구어낸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그리워졌고, ‘분열과 불통의 우리 사회에 화합과 통합의 메세지를 전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서’ 라고 역시 역사적 사명감을 가진 감동적 발언을 한 바 있다. 그에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란 무엇이었을까?

김샘은 그들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영화 <명량>을 굳이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는 그들의 말대로 감동적이었고 다시금 이순신의 업적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샘이 기대한 이순신의 캐릭터는 아니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공을 들였다는 영화의 반이 넘는 전투장면이 거슬렸다. 조선의 장기인 총통을 판옥선에 장착하여 함포로 당대의 유래 없는 선진적 전쟁을 치른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마다하고 일본의 장기인 백병전을 부각한 점이 아쉬웠다. 이순신은 일본이 백병전에 능하다는 점을 알기에 조선의 장기인 수군의 함포사격에 중점을 두어 거의 부하를 잃지 않는 전쟁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긴 해전 장면과 영화 포스터에 백병전의 모습을 부각하여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슈퍼맨 같은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하였는지, 김샘은 내내 영웅주의 같은 불편한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다.

어쨌든 한 편의 영화는 이순신이란 인물을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게 하였고 임진왜란의 역사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었으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라는 말이 최고의 유행어가 되어 광고 문구에 패러디되는 등 명실상부, <명량>은 작금 최고의 문화적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감독의 의도든 아니든, 영화의 퀄리티가 높든 아니든 이순신의 캐릭터가 허술하든 감동적이든 그 모든 것들을 떠나 <명량>은 최고의 관객 수를 동원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되어 버렸고, 어쨌든 이토록 영화가 폭발적 흥행을 한 이유는 ‘진정한 영웅’에 대한 목마름이라는데 동의하는 추세이다. 김샘도 현시대적 상황 속에서, 누구는 바다에서 나라를 구했는데, 그가 그렇게 애써 지킨 나라는 바다에서 무책임하게 생명들을 수장시킨 것에 대한 부채감과 달라질 것 없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 영화에 열광하게 한 에너지였으리라 일말 생각되었다.

‘영웅에 대한 목마름’이라니! 영화의 기현상에 대한 끄덕임도 잠시, 이 대목에서 김샘은 다시 묻고 싶어졌다. 아니,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이 영웅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21세기 민주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고작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라고만 있단 말인가.

고대신화나 전쟁의 일화, 암담한 시대에는 영웅이 늘 세상을 구원했다. 남보다 특별한 능력으로 활약하거나 숭고하게 희생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세우는 영웅주의는 옛 부터 자주 등장한다. 현대에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단순히 통쾌함이나 오락으로 영웅이 필요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영화에 열광한 마음 속에, 마치 고대의 영웅에 대한 기대처럼 특출난 누군가가 나타나 지금의 아픔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영웅을 단지 바라고 있다면 우리의 의식은 전근대적 의식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브레히트는 말한다. ‘영웅이 없는 나라는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을 갈망하고 호소하는 것은 그 사회의 무능력을 드러내며 구성원들이 부조리와 나태에 대해 변명하는 것이다’ 라고. 브레히트의 말을 극단적으로 빌어 온다면 이 나라 구성원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어서 이들이 할 일이란 불쌍한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을 고대하는 일밖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샘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래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전부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왜 가만히 앉아 영웅이 나타나 이 난세를 교정해 주길 기다리는가. 그것은 전근대적이고 원시적인 시대의 바람이다. 주인은 백성이며 주권은 그 백성이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 성숙한 시민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거리에 침을 뱉지 않는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자이다. 왜 내가 나서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모두 힘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대 왜 아직 영웅을 꿈꾸는 데에만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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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Kim 2014-08-28 09:10:44
영화 변호인을 보며 울던 사람들은 울지 않던 사람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왜?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연한 사실들에 울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그 노인 어른이 만나고 싶어진다.

이정숙 선생님, 글 너무 잘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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