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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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려면…
  • 이병기
  • 승인 2010.06.17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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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풀뿌리 지방자치다!] ②


 청학동 마을 공동체 학교인 '나눔의 교실'.

취재: 이병기 기자

글 순서
1. 인천지역의 풀뿌리 지방자치
2. 인천의 풀뿌리 운동
3.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한 소통…당선자에게 듣는다
4. 인천의 풀뿌리 지방자치…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지역의 풀뿌리 운동은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자신과 이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역 안에서 자치단위를 만들게 되는 거죠. 풀뿌리 주민운동은 성숙된 시민사회로 나가는 길입니다." - 윤종만 청학동 마을 공동체 위원회 위원장

청학동 마을 공동체는 인천을 넘어 전국의 주민운동 중 손꼽히는 모범사례다. 인천시사(市史)에도 기록될 만큼 그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청학동 마을 공동체는 지난 1998년 10월 청학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 내 주민 578명이 인천시 공영개발사업단의 부당한 감보율에 맞서 청학동재산권사수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윤종만 위원장당시 일각에서는 '바위에 계란 던지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듬해 12월까지 14개월간의 '부당감보율 철회운동'을 이어가며 자신들의 주거권과 재산권을 지켜냈다.

이후 지역 현안이 종결되고 승리를 자축하는 마을잔치에서 대책위가 해체를 발표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어렵게 만든 단체를 해체하기보다는 이를 발전시켜 마을 지킴이로 남기자"고 요청해 청학동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주민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공동체의 터전인 '나눔의 교실' 건립 운동이다. 이들은 주민총회의 결의를 통해 청학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대상지역 주민들이 마련한 미 매각 자투리땅과 감보율 청산비용 일부를 제공받아 인천시 도시개발본부에 의뢰해 2000년 9월 건물기공식을 거쳐 2001년 1월 '나눔의 교실'을 준공했다.

지상 3층, 연면적 185㎡ 규모로 지어진 '나눔의 교실'은 주민들의 애정으로 채워졌다. 윤종만 위원장은 "건물에 필요한 집기들은 주민들의 자발적 성원으로 들여놓았다"며 폐지와 고물을 수집해 생활하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보태준 꼬깃꼬깃한 오천원 지폐를 시작으로 주민들의 정성이 십시일반 모여 집행부의 시름을 덜어줬다"고 회상한다.

윤 위원장은 "마을공동체 운동을 통해 지역의 큰 현안 2가지를 해결했다"며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공간으로 나눔의 교실이 터전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공동체 활동 위한 사회복지 운동 활발


하모니카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청학동 마을 공동체 학교 아이들

2003년 청학동 마을 공동체는 보육사업의 첫 걸음으로 '청학동마을공동체학교'의 문을 열게 된다.

청학동마을공동체학교는 마을 공동체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지역의 저소득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운영해오던 '마을공동체 어린이공부방'을 마을공동체학교로 개칭해 만든 방과후 교실이다. 2003년 9월 등록아동 57명으로 정식 개교 후 다음 해 연수구청으로부터 '청학동 방과후교실'로 지정받아 나눔의 교실 3개층을 새롭게 개보수한다.

현재 마을공동체학교는 기초생활수급 가정과 차상위, 한부모 가정 등 저소득층 가정 40여명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 12시~저녁 8시까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등 기본 과목과 한자교육, 사물놀이, 인성교육, 미술심리치료, 체험학습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체학교는 2명의 보육교사와 조리사 1명, 25명의 지역 자원활동가 교사들이 지도하고 있으며 모든 아동들에게 수업에 필요한 교육비와 중식, 석식(유기농 우리 농산물), 간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마을의 특성상 한부모, 조손, 맞벌이 가정의 영유아 보육문제를 돕기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위탁운영에 응모, 선정됨으로써 지난 2007년부터 정원 99명의 구립 은빛나무어린이집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충남 홍성 유기농 재배농가와의 직거래를 통해 안전한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밤 10시까지 시간 연장보육과 장애아 통합보육으로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수인선 지하화, 주민 참여로 이끌어내


저학년 한자시험

청학동 마을 공동체는 사회복지 측면에서 지역운동뿐만 아니라 지역의 쟁점 현안에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문제를 해결했다.

대표적인 예로 수인선 건설사업을 들 수 있다. 이 현안은 철도청이 "인천의 청학지역 구간은 고가 및 지상으로 건설한다"는 실시 설계안 공식 발표 이후 지역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마을 공동체는 1999년 8월부터 2004년 1월까지 장장 54개월 동안 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 수인선지상건설반대 시민협의회 결성, 서명운동, 피켓시위, 도보시위, 주민궐기대회, 3보1배 행진, 주민공청회, 철도청 항의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청학구간 지상건설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윤종만 위원장은 "주민들이 힘들게 '부당감보율 철회운동'을 통해 마련된 녹지에 환경피해가 뻔한 고가가 세워지고 전철이 지나간다고 하니 막지 않을 수 없었다"며 "54개월의 투쟁 끝에 청학구간을 지하화할 수 있었고, 일부에 한해서는 노선이 변경되는 성과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마을 공동체는 청학지역의 수인선 건설이 지중화 방식으로 결정된 이후 해당 부지에 대해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가칭 연수종합문화·복지센터) 건립을 촉구한 상태. 6.2 지방선거에서 연수구청장으로 선출된 고남석 당선자도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다. 

이 밖에도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다양한 마당이 펼쳐진다. 곧 다가올 초복에는 마을 공동체 운영위원들과 후원자의 성금을 모아 가마솥에 삼계탕을 끓여 나눠먹는 잔치가 벌어진다. 이날은 노인들이 알아서 나무를 모아놓고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어 경로당 등에서 음식을 함께 나눈다.

500년 된 느티나무 할아버지.  청학마을 제공또 10월13일 마을 공동체 창립기념일에는 500년이 넘은 마을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생일잔치가 열린다. 작년부터 시작된 느티나무 할아버지 생일잔치는 올해 향나무 할머니 생일잔치와 함께 진행하는 것을 구상중이다.

12월에는 청학동 마을 공동체 학교 아이들의 학습발표회가 있다. 아이들은 사물놀이와 하모니카 연주 등 1년 동안 배운 솜씨를 동네 어른들에게 자랑하고, 주민들은 국수를 삶아 마을잔치를 준비한다.

작은 연구모임, 소모임 통해 공동체 운동 시작해야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5명의 바보가 필요합니다."

청학동 마을 공동체처럼 활성화한 주민 자치단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청학마을의 경우 최초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지역 현안이 있었기에 시작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수월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윤종만 위원장은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가진 바보가 필요하다"며 "서로 의지하며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윤 위원장은 "지역의 쟁점 현안으로 마을공동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민결합이 쉽지 않다"며 "동네의 작은 연구모임이나 소모임 등으로 힘을 모으고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타 지역 사례를 봐도 한 명의 공무원이 지역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노력과 더불어 공무원들의 발상과 의식 전환이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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