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없이 가게 이름만 넘실거리는 깨끗한 삼치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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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없이 가게 이름만 넘실거리는 깨끗한 삼치거리 이야기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07 2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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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거리 사람들> 펴낸 최희영 작가를 만나다

최희영 작가는 인천사람이 아니다. 인천은 교과서에 나온 정도밖에 알지 못했고, 개항 도시, 노동자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2001년도에 <파이란>과 <고양이를 부탁해> 두 편의 영화를 보고 ‘투쟁의 도시’ 인천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도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인천이 궁금해졌다.

이따금 배다리에 들러 책을 사곤 했다. 특별히 아는 데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와 책만 사들고 갔다. 겨울에 주로 온 탓인지, 인적 드문 평일에 방문 횟수가 많았던 탓인지 최 작가는 ‘배다리’를 스산함과 황량한 마을로 기억하고 있었다.

‘삼치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출판사 '밀물과썰물' 편집장에게 들었다. 편집장은 몇 번 삼치거리에 막걸리를 먹으러 왔고 원조 격인 ‘인하의 집’ 사장 얘기를 들었다. ‘좋은 기획’이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건너 건너 최 작가를 소개받았다.

집필 여부를 확답하기 전, 최 작가는 삼치거리를 한 번 둘러볼 생각으로 인천에 왔다. 봄이었고, 계절이 시작되는 느낌과 거리가 주는 정서적 포근함에 반했다. 소박함과 평온이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모습이 아닌 여유가 있는 그림이 보기 좋았다. 삼치 집을 돌고 돌며 새벽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6-7군데의 가게를 둘러보면서 거리가 주는 진정성을 느꼈어요. 책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주제에 대한 확신이 있고 현장에서 느낌이 오면 글이 잘 써지는 법. 기획에서 출판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복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술 한 잔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요.”


충남 아산이 고향인 작가는 ‘태생적으로’ 술(막걸리)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밭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드릴 막걸리를 날랐고, 가는 길에 한 모금, 할아버지가 따라주면 또 한 모금 그렇게 막걸리를 마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원샷할 정도’가 됐다. 작가는 삼치거리를 취재하면서 ‘원 없이 막걸리를 마셨다’며 활짝 웃었다.

최 작가는 십 년 전 북경에서 민족학(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든 공간, 어울려 사는 것 등에 대해 연구했고, 그런 시각이나 접근을 책 <삼치거리 사람들>에도 투영했다. 단순한 여행자와는 다른 각도로 삼치거리와 인천을 봤다고 자부한다.

<삼치거리 사람들>은 최희영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은 라오스의 생활과 사람에 관한 ‘생활문화보고서’. 라오스는 매력이 많은 나라다. 7, 80년대 개발논리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가난했지만 인정 많고 소박한 모습을 되새기게 해준다. 최 작가는 행복이 ‘불행하지 않다’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하다는 말만 하지 않아도 행복한 것 아닌가요?”

2년간 라오스에 머물며 일상에 지친, 잘 살고자 하는 욕망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모습을 찾았다. 삶의 소중함을 반추하는 시간이었다.

<삼치거리 사람들>은 원조 ‘인하의 집’ 정신을 이어받은 ‘삼치거리’를 살리고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덜 갖겠다며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민 것,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 따듯한 마음과 훈훈함을 전하고 싶었다. 최 작가는 책을 통해 삼치거리가 좀 더 알려지고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책에는 쓰지 않은 얘기를 해드릴게요. 1968년 홍재남, 이초자 부부가 간판도 없이 시작한 가게가 인하의 집이 됐다는 건 많이들 알고 계실 거예요. 이초자 씨가 돌아가신 뒤 홍재남 사장은 매일 술에 빠져 지냈죠. 아버지를 1년만 돕겠다던 아들 홍종태 씨는 가게를 15년이나 운영했어요. 그런데 2011년에 제삼자에게 가게를 맡겼어요.”

“어릴 때 홍종태 씨는 마음 둘 데가 없었대요. 거실과 안방까지 손님이 들어차 매일 담배 연기 속에서 잠이 들고 아파도 부모가 제대로 돌봐줄 수 없었거든요. 끙끙 앓는 엄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유년시절이 상처로 남았죠. 부모의 장사가 잘되는 만큼 외로웠던 거예요. 가게를 이어받아 장사를 하면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어요. 가게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건 아픈 아이의 영향이 컸다고 해요. 내 아이에게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충분히 놀아주고 돌봐줘서 지금은 건강해졌다고 하네요.”

‘인하의 집’ 맥이 끊기지 않았다면 좀 더 ‘스토리’가 풍성한 책이 나왔겠지만 최 작가는 그 점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처음 의도와 달라지긴 했어도 20여 가게, ‘삼치거리 사람들’의 사연과 인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책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물었다.

“인천 사람은 삼치거리를 4, 50년간 다녔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새삼 다시 알게 돼 좋았다, 긴 시간 위안이 되고 소소한 행복을 줬던 곳이 이대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고 외지 사람은 거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분이 많아요. 한 번 오면 새벽까지 서너 군데를 순례(?)하면서 이 거리가 주는 낭만을 즐기죠.”

최 작가에게는 세 가지 꿈이 있다. 고향 마을 이장이 되는 것,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는 것,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의 꿈이 값지게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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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근 2014-11-22 13:42:29
책을통해 인천을 많이 알게되었지만. 현지 답사를 통한 궁금함을 해소코저. 이웃 지인들과 주말에 짬을내서 전철과 도보로( 인천역.공원.삼치거리.동인천역앞 떡볶기집등)직접 확인했다. (시간상 아쉬움이 있어 차후에 다시한번 가볼예정)
보고느낀것은. 여러가지것들중 서민삶의 애환이/남을배려함이/욕심없는 상술등은 인천시민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하여 후손 대대로 축복받기를 기도해본다. 특히 홍재남부부의 정신을...
읽고 또읽어도 흥미있는 이 책을보면서. 60대 중반인 나의눈가가 촉촉할때가 여러번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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