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교육과정 개정안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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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교육과정 개정안을 바라보며
  • 김국태(인천교육연구소, 부평초)
  • 승인 2014.10.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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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69)
KTV 캡쳐화면 

교육부가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해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새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창의·융합형 인재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인재를 기르겠다는 교육과정의 핵심은 융합과목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도입해 공통과목으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절대 명제이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의 키워드로 ‘혼융화’을 자주 언급한다. 혼융화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것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학문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절대로 하나의 학문으로 합쳐질 리는 없지만 서로의 벽을 낮추고 만나고 있다. 그래야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분과 학문의 시대를 넘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과 ‘통섭’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문과와 이과의 장벽을 허물고 폭넓게 학문을 섭렵할 수 있도록 교육도 개혁해야 할 것이다.
 
미래사회의 요구와 함께 새로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개정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의 선택교육과정으로 생긴 ‘문·이과 칸막이’를 들 수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공통교육과정을 없애고 선택교육과정으로 갔다.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한 선택 교육과정은 개별 학생의 흥미, 적성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와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기준은 실제로 적성과 진로가 아니라 오로지 대학입시에 두고 있다. 결국은 자기가 볼 수능시험 과목에 맞춰 교육과정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여 응시하는 문과와 이과 사이의 칸막이가 분명하게 그어지게 되었다. 지금 인문 사회 계열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수학·과학을 기피하고, 소위 ‘이과 진학 학생’은 사회탐구 영역에 대한 의미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로인한 지식의 편식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과정에 관련된 과목들에 무관심을 일으켜 자신의 사고와 진로를 문과형이나 이과형으로 고착화한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균형적 발달과 진로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의 교육과정은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에 의한 과목의 편식으로 모든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핵심 ‘공통소양’을 함양하는데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며, 특히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통합적, 융합적, 복합적 사고’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미래사회의 요구와 기존 교육과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문 이과 통합 교육과정’은 모든 고등학생이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기초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공통과목’이 도입된다. 공통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과학탐구실험이 된다. 그리고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융합형 과목으로 개발된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대주제’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통합사회는 행복한 삶의 의미, 정의와 사회 불평등, 시장 경제와 인간의 삶, 세계화와 인간 생활 등의 주제로 지리, 일반사회, 윤리, 역사 등의 사회과목의 기본 내용을 통합하여 사회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토의, 토론, 프로젝트 학습 등의 체험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다. 통합과학 역시 과학의 기본 개념과 탐구방법을 바탕으로 현행,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내용을 대주제로 에너지와 환경, 신소재와 광물자원, 태양계와 지구, 생명의 진화 등의 대주제로 통합된다.
 
이런 시안의 발표에 대하여 환영보다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교육단체들은 이념의 성향을 떠나 한 목소리로 ‘이런 방식의 개정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개정 시기와 절차상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정진후(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2000년 7차 교육과정을 시행한 이후 14차례나 바뀌었다. 1년에 한 번 꼴로 계산이 가능하지만 2012년에는 세 차례나 개정되었다. 그렇다 보니 올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교 1학년까지 8개 학년 학생들은 3개의 교육과정을 적용받을 예정이다.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교 졸업까지 2007개정 교육과정, 2009개정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 등 3개의 교육과정을 적용받게 될 전망이다. 현재 중1부터 고1까지 4개 학년은 이미 3개 교육과정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다. 또한 2016년부터 초,중,고 12년 과정 모두 2009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공부하게 되지만 2017년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돼 단 1년만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모든 학년이 학습할 뿐이다.
 
정진후 의원은 “교육과정은 인간상과 방향, 교육목표와 편제 등을 가지고 있는 큰 그릇이다. 한 학생이 여러 개의 교육과정을 배우는 점이나 자주 개정되는 점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분명히 따져봐야 하는 부분이다”고 밝혔다. 교사들조차 자기가 가르치는 게 어떤 교육과정이고 어떤 교과서인지 헷갈려 한다. 거의 전면에 가까운 수시 개정을 하는 수준이라 그 혼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물론 교육과정 개정이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충분한 검증이 있었는가에 있다. 지금의 교육과정 개정은 검토도 없이 뒤집는 방식이라 걱정이 더욱 크다.
 
사실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의 나침반 구실을 한다. 학교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그런 만 기존 교육과정의 결과나 효과를 분석하고, 사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 대해 일선 교사들 10명 8명은 모르고 있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한겨레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무엇 때문에 이리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교육 문제에 대한 ‘임기 내 실적’이라는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라는 말이 교육과정 개정에도 반영되기 바란다. 서두르지 않고, 보다 긴 호흡으로 추진되길 바래본다.
 
시기와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또 다른 걱정은 바로 ‘문, 이과 통합형’이라는 용어가 혼란을 준다. 사실 개정의 시안을 보면,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용어는 부적절하다.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모든 고등학생들이 똑같은 교육과정을 배우고 문과 이과 구분없이 대학에 지원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통합사회나 통합과학 등 일부 과목만 공통으로 배우는 수준이다. 오히려 이전의 ‘국민교육기본교육과정’이 필수 과정으로 있었던 제7차 교육과정 및 2007 개정 교육과정과 많이 닮았다. 지난 이명박 정부가 2007 개정 교육과정을 시행하기도 전에 졸속으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강행했는데,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이다.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명칭을 강조한다면 시안에서 예정하고 있는 1년이 아니라 최소한 2년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안처럼 공통과정을 1년으로 하고, 선택과정을 2년으로 한다면 문서상으로는 문이과 통합이라고 하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1학년은 공통과정후 2학년때부터는 여전히 문과와 이과의 분리과정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을 ‘문이과 통합’ 그 자체보다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추후 개발이 진행되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이전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교과의 우려가 크다. 통합교과를 가르친다고 교육과정에서 기대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가 길러진다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연구로 검증된 바도 역시 없다. 대주제 중심으로 구성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교과목별 주요 개념과 원리가 대주제로 한데 통합될 수 있을지, 성취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개별 과목 교사가 연수를 받아서 융합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따라서 교과서 개발이나 교사연수, 창의적인 통합교과의 기획 등에 충분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2011년도에 융합과학 교과가 생겼을 때 교사들이 멘붕을 했다. 자기 전공 분야는 깊이 알지만 다른 과목까지 엮어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 교과서는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얘기 한다. 이처럼 충분한 검증 과정 없이 실험하듯 학교 현장에 강제하면 결국 교과별 교사가 번갈아 들어가는 ‘짜집기 분절형’ 수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앞선 비전과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자질을 의미하는 ‘기초 소양’을 염두에 두고 각 교과 내용의 수준과 범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 이기주의’에 의한 시수 다툼을 하는 질 낮은 논의보다는 우리의 학생들이 학습 과정에서 진로와 진학을 행복하게 꿈꿀 수 있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창의 융합능력의 기본은 ‘전문성’이다. 교육과정의 80% 이상은 기존 학문을 깊이 있게 배우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분야와 소통도 가능하다. 학문끼리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간 학문적 역량과 창의성이 융합교육의 핵심이다”고 융합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한국교육개발원의 김주아 박사는 말한다. 이처럼 학생들이 창의 융합형 인재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제공되는 학습 경험의 질에 좀 더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외형적인 틀을 크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기존의 틀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학습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정 운영의 보다 많은 자율권이 단위 학교와 교사들에게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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