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대’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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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에 미치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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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54개 돈대 기록으로 남긴 오정식 사진가

▲ 작가가 좋아하는 돈대 중 하나인 오두돈대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물을 말한다. 방어를 위한 성벽과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여장을 갖추고 내부로 진입하기 위한 문과 적을 공격하기 위해 대포를 설치한 포좌를 포함한다.

우리나라에 돈대는 강화밖에 없다. 임진강에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17세기말 병자호란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 숙종 때 80일만에 48개의 돈대가 만들어졌다. 그 후 5개를 증축해 모두 53개가 된다.(54개로 보는 학자도 있다) 돌을 캐서 다듬고 운반, 쌓는 일까지 그저 사람의 손에만 의지한 작업이었다.

돈대에는 ‘곶’이 붙은 이름이 많은데 ‘곶’은 장산곶, 호미곶처럼 툭 튀어나온 곳을 뜻한다. 지대가 높고 경치 좋은 자리에 다수 설치됐으며, 현재까지 군사시설로 활용되는 곳이 많다.

돈대는 문화재다. 강화 돈대는 전부는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지정’이나 ‘등록’ 문화재가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가정하면 안 된다. 문화재는 후손에게 물려줄 만한 역사적, 미술적,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므로 300년 이상 돈대들은 당연히 여기에 속한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과장은 “제주도에는 34개의 ‘연대’가 있다. 연대는 공수, 망보는 게 전부고, 포가 설치된 돈대는 강화뿐”이라며 “강화는 제주의 1/3크기인데도 돈대가 54개나 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유정복 시장이 지난달 발표한 10개 정책과제 중에는 강화에 있는 군사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지형, 위치, 돌의 모양, 보존상태, 규모, 보수 정도 등이 제각각 다른, 1년간 강화 54개 돈대를 모두 돌아본 오정식 사진가를 만났다.
 

어떤 계기로 돈대를 찍게 됐나.

교동도 옆에 무태돈대가 있다. 배 시간을 기다리다가 가보게 됐는데, 지리적 위치와 돈대가 생긴 배경에 관심이 갔다. 강화도에 자주 가는 편이라 돈대를 자주 보게 됐다. 돈대 근처에는 언제나 철조망, 초소가 있더라. 이들 돈대가 방치되고 허물어져가는 게 안타까웠다. 더 훼손되거나 사라지기 전에 강화에 있는 돈대를 기록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미적 감각을 살리는 쪽으로 접근했다. 사실적인 걸 보이기보다 약간의 미를 추구하고 싶었다. 검암돈대를 찍은 사진을 보면 무너져 내리는 나무 그림자가 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 많이 전시된 편이다.

하지만 자료를 찾고 배성수 과장의 논문을 찾아 읽은 뒤 기록적 관점에서 접근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17세기 조선의 군사시설인 강화도 돈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곽구조와 역사적 의미를 상기하며, 외형과 특이점을 기록했다. 아카이브적 관점에서 파괴되고 사라진 돈대 터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남겼다. 어떤 사명감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흑백으로 작업한 이유는.

언제부턴가 흑백의 느낌이 좋았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데, 흑백모드로 전환해서 작업했다. 이전 사진들도 흑백이 많다. 칼라는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흑백은 은근하게 드러내고 은근하게 숨기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전시는 흑백으로 하고 책은 칼라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흑백으로 하면 정보가 묻힐 것 같았다. 기술적으로, 또 시간도 부족해서 흑백으로 하게 됐다.

타이틀에 붙은 ‘매미소리’는 무슨 의미인가.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고향 영광에 내려가 아버지의 점방 ‘광영상회’를 지켰다. 온종일 앉아 있어도 손님이 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신작로에는 귀가 찢어질 듯 매미소리만 가득했다. 아버지는 몇 해 전 기력이 쇠해져 장사를 접었다. 치매를 앓아 하루하루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

돈대를 찾을수록 돈대가 지닌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돈대에서 어릴 적 아버지의 점방에서 들었던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뭣에 홀린 듯 강화도 해안가 곳곳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작업하면서 느낀 점이나 가장 좋아하는 돈대를 말해 달라.

돈대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고즈넉해진다. 미루지돈대를 가장 좋아한다. 마냥 누워있고 싶고 힐링이 된다. 먹구름이 낀 날도, 바람이 부는 날의 느낌도 좋다.

미루지돈대 외에 건평돈대, 오두돈대도 좋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관광지처럼 변한 곳과는 다르다.

사진에는 감정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우울할 때 찍은 건 우울하고 밝을 때 찍은 건 밝다. 돈대에 가면 서정적 감정이 많이 올라온다. 개인적인 감정, 생각들이 많아진다. 아무리 기록적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하지만 멋있어 보이는 구도 같은 걸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돈대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이번에 사진집을 냈지만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기술하고 설명을 곁들인 안내서 형식의 책을 또 한 권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책은 11월부터 인터넷에서 구입 가능하다.

‘돈대, 매미소리’는 사진공간배다리에서 전시 중이다. 갤러리 이상봉 관장은 “사진가들은 주제 찾기가 쉽지 않은데 오정식 사진가가 굉장한 작업을 했다”며 “강화의 돈대를 모두 찾아서 기록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번에는 사진 위주의 책을 냈지만 이 단계를 넘어 고증, 연구가 들어간 전문적인 책을 펴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갤러리2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참여한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부장은 “12년 전에 강화도 돈대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때 내가 다닌 것보다 작가가 훨씬 많이 다닌 것 같다. 지금 갈 수 있는 돈대는 30개가 채 안 된다. 돈대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런 걸 잘 잡아서 찍었다.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 없다. 연구하는 사람도 실제 그 돈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문연구자도 쉽게 하지 못한 오정식 작가의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돈대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려졌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인천지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돈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며 저평가되고 있는 돈대의 가치가 재고되길 희망했다.

-> 전시안내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6998&thread=001001000&m_no=1&se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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