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공감교육, 이한수 선생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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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공감교육, 이한수 선생님을 만나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0.30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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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과 담을 쌓고 있구나, 소통이 필요했다”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천시 교육청은 지난15일 혁신학교 준비교(초등+중등) 15곳을 지정하고 그 중 10개교를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혁신학교, 혁신학교 하지만 ‘아이를 위한 교육'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구체적인 방법론은 많지 않다. 혁신교육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피곤할 것 같다‘며 걱정하는 교사도 있다.

이한수 선생님(50. 인성여고)은 ‘공감(감성) 교육’을 강조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카카오톡을 이용, 아이들에게 소설을 보내고 자유롭게 느낌을 나눈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단편소설 한 편이 6-7페이지(A4기준) 정도 되지만 읽는 데는 15분에서 20분밖에 안 걸린다.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것에 다가가지 않으면 허물 있는 대화 나누기가 어려워요. 지금 아이들은 카톡 같은 네트워크에 관심이 많아요.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활동 공간이죠. 업무공지도 카톡이 젤 빨라요. 전달도 잘 되고요.”

반 아이들 20명이 모여 있는 단체카톡에 소설을 올리면 어떤 식으로든 자극 받은 아이가 ‘반응’한다.

“상황 상황에 맞게 제가 창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힘들고 발달단계에 맞는 소설을 찾았어요. 우리나라에 발표된 성장소설, 아동소설, 청소년소설을 읽고 케이스별로 작품을 구분했죠. 학교생활, 왕따, 가정에서의 갈등이나 고민을 다룬 소설을 찾아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읽는 거예요.”

처음에는 영화로 시작했다. 벌써 7~8년전 일이다. 시네마테라피로 아이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성인의 심리 문제를 다룬 것은 꽤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권할만한 것은 흔치 않았다. 아이들의 외롭고 아픈 마음을 달랠 영화를 구하기 시작했다.

“영화 ‘바람’에는 고등학생이 돼서 첫사랑에 빠지는 내용이 나와요. 학생으로서 이성과 교제한다는 게 아이들에게는 도전적 상황이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면 자연스럽게 고민 상담이 돼요.”

장편소설을 빌려 읽게 하거나, 직접 구입해서 선물하고, 소감을 나누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단편소설로 갔다. 단편은 시대를 많이 탄다. 지금 아이들의 고민은 10년 전 학생들과 다르다. 고전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아이들이 공감하기 어렵다. 이전에는 블로그에 책을 소개했고, 카톡으로 소설을 전달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블로그에서는 자기 케이스에 맞는 소설을 찾기가 수월하지 않다. 사업아이템을 공감하는 기업이 기술적으로 사이트를 구현하면 모를까.

“최근에 발표된 소설이나 수상작품을 다 뒤져서 자료를 수집했어요. 동화, 성장소설, 청소년소설, 아동소설 포함해서 우리나라 단편만 2,000여편이 되더군요. 외국작품은 배제했어요. ‘요즘, 여기’라는 장소성, 시간성이 중요하거든요. 우리 작품을 읽을 때 쉽게 공감할 수 있어요.”

‘아이의 마음을 읽는 지도 그리기’라는 타이틀로 책 발간도 준비 중이다. 도입 부분에 케이스별로 구분해서 쉽게 그 작품을 읽을 수 있게 구조화했다. 카톡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느끼고 깨달은 것도 실었다. 초안은 완성됐고, 현재 출판사를 찾는 중이다.

“고전에서 말하는 문사철 순서대로 책을 내려고 해요. 성장소설과 영화를 묶는 공감스토리텔링으로 ‘문학’을 시작하고요, 동서양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를 모아 ‘역사’편을 만들 거예요. ‘시네마 한국사’, ‘시네마 세계사‘ 이런 식으로요. 사극을 보는 게 역사인식을 트는 데 효과적이거든요. ’철학‘의 인식론이나 존재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영화를 통해 이해하면 수월해요. 영상을 활용해서 문학과 역사, 철학에 다가가겠다는 거죠.”

인간의 인식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게 인식론의 첫 번째 질문이다. 피부에 와 닿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철학적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걸 인식하지는 못한다. 체감하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 개념을 달달 외우고 몸으로 겪지 않은 개념을 읊조린다고 교육이 되는 게 아니다.

“인지주의 교육의 폐해가 심각해요. 더 이상 주입식, 개념 습득식 교육은 안 됩니다. 현재의 입시경쟁 교육은 심각해요. 단시간에 많은 개념을 소화시키려다보니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은 등한시되고 있어요. 몸으로 느껴야한다. 감성교육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나머지는 저절로 돼요.”

‘마마보이와 바리스타’라는 소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집중케어를 받으며 공부만 한 마마보이에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긴다. 커피숍에서 일하며 바리스타를 꿈꾸는 여학생. 모범생 마마보이에게는 그 여자아이가 문화적 충격이다. 자아정체감에 혼란이 생기는데...

이한수 선생님이 이 소설을 단톡에 뿌릴 때 염두에 둔 학생이 있었다. 부모가 이혼해 아빠하고 사는 아이였다.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해 살림에 보태느라 학교에 자주 빠지고 지각을 밥 먹듯 했다.

“힘들겠다는 짐작은 했어요. 알바 하는 데를 찾아가보니, 연안부두 횟집 서빙인데, 노동 조건 열악하더라고요. 오히려 학교에 나오는 게 대견할 정도였어요. 그 학생은 1,2학년 때 선생님들에게 자주 혼났어요. 학교에서 보면 별 볼일 없는 애,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아이일 수도 있죠. ‘마마보이와 바리스타’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 철없는 찌질이로 그려져 있어요. 그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 아이는 공감한 거죠. 느낌이 통하면 그때부터 아이는 나를 믿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요.”


“갈게. 내일 보자.”

나는 지평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지평이가 팔을 번쩍 들어 답례를 했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칭칭 두른 목도리를 뚫고 살 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혜지의 살결이 닿았던 목도리.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음 날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진짜 왔네?”
지평이가 테이블을 닦다 말고 멈칫했다. 정말 기대를 안 한 표정이다.
“그럼 진짜 오지, 가짜로 오냐?”
내가 면박을 주었다.
“니네 엄마가 허락 안 할 줄 알았는데. 너 엄마 말 잘 듣잖아.”

“이 자식이……,”
-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인 심은경의 ‘마마보이와 바리스타’ 일부

 

상담, 치유에 관심 갖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이 선생님은 “내가 힘들어서”라고 대답했다.

“교사도 직업병이 생겨요. 교사신문 등에 칼럼을 10년 정도 썼어요. 그러면 의식이 기자처럼 변해요. 어떤 상황을 분석적, 비판적으로만 보니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거죠. 그러면 고통이 생기는 거예요. 어떤 것에도 공감할 수 없거든요. 교사, 수사관, 기자, 목사 등은 비슷한 직업병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버릇없는 애들 보면 짜증나고, 20년 교직생활을 하다 보니 활력도 떨어져 예전만큼 학생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내가 아이들과 담을 쌓고 있구나.’ 변화가 필요했다.

선생님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위로받고 치유됨을 경험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아파하는 구나...’ 교사가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됐다. 예전에는 학생이 “아이 씨”라고 말하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발끈했다. 이제는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한 번 더 웃어주고, 손을 잡아준다. 독서를 통해 간접체험이라도 하면 대하는 게 달라진다. 짐작하려고 애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습관대로, 자기 성격대로 분노한다. 학생과 관계가 좋아지면서 이 선생님은 이전보다 상처를 덜 받았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의 마음은 바다 속보다 더 깊고 복잡하다’. 우리가 바다에 나갈 때는 공부를 많이 하잖아요. 안 그러면 죽으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들이 아이의 마음을 읽는 공부는 안 해요. 아이의 마음을 헤엄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도가 있어야 해요. 지도를 그리는 역할을 시작한 거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같은 또래들은 더 크게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 얼굴을 아는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죠. 제가 촛불집회 같은 데 나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 반응이 있어요. 그만큼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이 중요한 거예요. 흔적을 만지는 거죠.”

이한수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 [인천in]에 성장소설과 드라마를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미 발표된 작품을 중심으로 느낀 점, 교육에 활용하면 좋은 내용을 소개하는 형태다.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신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을 접하면 ‘동일화하면서’ 교감이 되거든요.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눈물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종국에 자기의 아픈 사연을 털어놓으면 큰 문제는 해결돼요. 단순 모방은 위험하죠. 소재에 안주해 비슷한 케이스를 제시하는 데서 그치면 안 돼요. 아이들을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은지 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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