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에 가려진 ‘비운의 리듬체조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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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에 가려진 ‘비운의 리듬체조선수’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4.11.03 23: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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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청 소속 김윤희, 전국체전 금메달로 선수생활 마감하다
 
‘실업 체조선수’ 행로 개척... 체조계 최고의 모범 선수
“스포트라이트 받지 못했지만 관심 가져주신 국민들에게 감사”

인천시청 소속 체조선수 김윤희가 제주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에서 대학/일반부 부문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날 김윤희의 연기는 그녀가 17년의 체조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펼치는 무대였다. 그녀는 메달을 목에 걸고 다시는 흘릴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기자와 김윤희는 ‘인연 아닌 인연’이 있다. 2009년 김포지역의 한 지역 언론사에 잠시 몸담았던 당시, 인턴이었던 후배에게 그녀와의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보라는 미션을 줬었고, 후배 기자가 완성해 온 인터뷰 전문을 수정하며 당시 큰 꿈을 그리던 김 선수에게서 ‘고등학생으로서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국내의 체조 요정’ 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TV에도 모습을 많이 드러낸 손연재에게 집중하지만, 사실 김윤희는 그녀 못지않은 실력을 검증받은 ‘숨은 체조요정’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신수지가 일반부에서 활약할 당시 고등부의 최강은 바로 김윤희였고, 그녀는 손연재와 함께 체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던 특급 선수였다.

2009년경부터 만개하기 시작한 김윤희의 기량은 대학부와 일반부를 거치면서 국내 정상의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그녀가 출전하는 전국리듬체조대회와 전국체전에서 그녀는 정상 혹은 ‘적어도 2위’ 등의 성적을 마크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해 냈다. 그녀가 체전에 출전해 정상의 자리에서 수상을 할 때마다 고향인 김포지역이 축제 분위기였다. 얼마 전 폐막한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인천시청으로 소속을 옮긴다던 그녀의 소식에 인천 지역 언론은 물론 스포츠 언론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한 바 있다.

사실 국내 체조 인프라에 있어 김윤희는 어쩌면 손연재보다도 더 큰 공헌이 있는지도 모른다. 국내에는 실업 체조팀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은 대학을 마치면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윤희는 졸업 후 인천시청을 선택,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최근 선수들의 행보 중 대한민국의 체조계가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윤희의 ‘실업팀 체조선수’라는 타이틀이다. 후배들에게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사실상 ‘개척’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김윤희 선수

그러나 소위 ‘메이저 스폰서’를 두고 연예인 급의 인기를 누렸던 동료 손연재에 비해, 김윤희는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선수 생활을 했다. 고등부 시절 김포시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에도 김포지역 체육인들은 “김윤희 선수가 선수생활 여건이나 트레이닝 연수에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지역사회가 애정과 성원을 쏟아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연신 했을 정도였다. 이는 지난 해 인천시청으로 소속을 옮긴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큰 대회를 앞두고 종종 찾아왔던 부상 역시 그녀를 좌절의 문턱 앞까지 가게 했었다. 가장 최근의 경우가 바로 아시안게임이었다. 올해 터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을 마치고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도중 발목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단체전’이라는 종목은 그녀의 이를 더욱 악물게 했다. 손연재를 비롯해 이나경과 이다애 등 후배들이 단체전에서는 그녀만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후배들을 가장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아는 선수”라는 안팎의 평가를 끝까지 지켜가려 하는 듯, 그녀는 발목의 아픔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듯 경기에 임했다. 그러나 후프 종목에서 후프를 잘못 날리는 실수가 나왔다. 물론 그 실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김윤희는 자신의 실수로 후배들에게 혹여 불이익이 갈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은메달 획득에 성공한 후 그렇게 눈물을 쏟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아시안게임의 최종 성적표를 장식했다. 그리고 지난 1일, 제주서 열린 전국체전 리듬체조 대학일반부 결선에서 후프 13.950점, 볼 16.400점, 곤봉 16.300점, 리본 16.300점을 획득해 4개 종목 합계 62.950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유종의 미를 장식했다.

김윤희는 향후 지도자의 길을 걷을 예정이라고 한다. 조만간 있을 지도자 면접을 통과하면 지도자 2급에 해당하는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희는 일단 “당분간 휴식을 좀 취하고 진로를 확정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아시안게임에서 실수를 했음에도 성원을 많이 보내주셔서 전에 없던 팬들도 많이 생겨 감사히 생각한다”며 “지도자 생활을 하든 어떤 길을 가든 그 감사함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항상 스포트라이트의 밖에 있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조 하나만 바라봤던 김윤희. 우크라이나의 안나 베소노바 선수를 존경한다던 그녀는 어쩌면 손연재를 비롯해 스타 반열에 있는 스포츠 선수들만큼, 우리가 주목해야 했을 선수가 아니었을까. 아시안게임 이후 새로운 길을 가는 그녀의 행보는 어려움으로 가득했던 선수 시절보다는 더 탄탄한 대로가 펼쳐질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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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2014-11-09 22:01:14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서 김윤희라는 체조 선수도 알게되었네요.

문경숙 2014-11-04 12:00:59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우리들 스스로도 스타에만 연연하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길을 가는 사람에게 더 큰 응원의 박수와 관심이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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