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의 문자 “한번만 봐주겠다” 괴물 같은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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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의 문자 “한번만 봐주겠다” 괴물 같은 학부모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2.10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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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⑧-학습지교사

성미소(44. 가명) 선생님은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 직장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혼 전 어린이집 교사, 학원 강사를 했고 그 경력으로 어렵지 않게 보습학원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학생 관리 겸 학부모 상담, 초등교육을 담당하며 약 6년을 일했다. 방과후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저렴한 가격에 학교에서 추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학원생이 줄기 시작했고 성 선생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가 ‘학습지 해볼지 않을래?’ 제안했다. 알바식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지국장의 권유로 ‘정식’ 교육을 받고 입사해 올해로 3년째 일하고 있다. “학원에서는 한 군데만 있어야 해서 답답했는데 오히려 가가호호 방문하는 게 좋았어요.”

하루에 방문하는 집은 보통 15 가구 내외. 한 아이가 두세 과목을 하는 경우도 있어 평균 30과목 정도를 가르친다. 지역마다 수업을 원하는 요일이 달라 바쁜 날은 숨 돌릴 틈도 없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동선을 잘라서 두세 명의 선생이 나눠한다. 빌라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일하기 편하지만 선생이 지역을 정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그만두면 신입교사가 그 자리를 메우는 일이 많다.
 


“애들한테 집중해서 부족한 부분을 캐치하는 게 먼저예요. 한두 번 보면 이 아이는 뭘 잘하고 뭐가 부족한지,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어요. 가정에서 직접 아이를 보니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다르게 쉽게 노출되는 부분도 있고요. 아이와 엄마의 성향을 알면 이런 스타일로 진행해야겠다는 감이 오죠.”

보습학원은 워낙 ‘박봉’이었다. 학습지교사가 조금 낫다. 열심히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에 따라 다른데 과목당 교육비의 최고 64%, 최저 34%까지 가져갈 수 있다. 처음 입사하면 기본 40%를 주는데 일을 잘하면 퍼센티지가 올라간다. 처음 1년 동안은 40% 수준을 유지시켜주는데도 그 안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절반 이상이 1년을 못 버텨요. 아는 선생님 중에 가장 오래된 분이 10년을 했는데 고집 있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학부모에게 싹싹하게 대하는 것도 좋지만 비위 맞춘다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하다보면 견디기 힘들죠.”

엄마가 성 선생을 믿고 고민이나 아이 문제를 상담할 때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구나. 열심히 하고 있구나’ 뿌듯한 마음이 든다. 반대로 툭하면 아이에게 윽박지르거나 감정기복이 심한 엄마들은 버겁다. 어떤 학부모는 성 선생이 다른 집에서 수업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계속 전화를 걸어 자기 아이를 ‘지금 당장’ 상담해야 한다고 고집 부린다.

엄연한 ‘교사’ 자격이지만 아이들을 엄하게 잡을 수는 없다. 한두 달은 아이의 성향, 가정 분위기 등을 지켜보고 웬만하면 아이 성격에 맞춰 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들렸다. 말썽꾸러기 아이를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 엄하게 하거나 똑바로 앉으라고 주의를 주면 어떤 얘기가 들리는 줄 아세요? 제가 애를 잡는다고 해요.”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잘 할까.

“아무래도 싹싹하고 엄마들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이겠죠. 돈을 내는 사람은 엄마니까요. 가끔 지국에서 ‘애한테는 대충해주더라도 엄마 비위를 잘 맞추라’는 뉘앙스로 말하기도 해요. 학부모가 지국에 전화해서 불만을 제기하면 지국도 감점을 당하거든요. 지국끼리의 경쟁도 상당해요. 선생들은 우스갯소리로 전단지에 인쇄된 전화번호를 지우자고 하기도 하고...”

수업이 궁금한 학부모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줄 때가 있다. 동료 교사 중에는 “우리 손녀 얼굴 누가 함부로 찍으랬냐. 아이한테 전자파가 얼마나 해로운지 모르냐”는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평소에는 다정했는데 갑자기 트집을 잡거나 예상외의 반응을 보이면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친절했던 엄마가 다짜고짜 ‘학습지 끊을 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뒤통수 맞은 것 같아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

상담 포함, 수업은 15분이다. 집중적으로 원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5분 간격으로 시간을 잡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교재를 잔뜩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고, 수업은 바닥에 앉아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습지교사 대부분은 허리와 엉덩이 통증을 호소한다.

초등부보다 유아 교육비가 좀 더 비싸고, 유아용 ‘한글깨치기’ 과정이 인기가 높다. 교사 수업 외에 부모가 틈틈이 교육시키는 경우 빠르면 1년 만에 한글을 떼는 아이들도 있다. 보통은 1년 6개월을 한다. 부모가 방치하면 ‘한글깨치기’ 과정이 끝나도 그저 그런 수준이다. 부모 역할이 크다.
 


가장 힘든 점은 뭘까. 의외로(?) 돈 문제였다.

“보통 수업료는 선불이에요. 한 달까지는 괜찮지만 두 달째 연체되면 교사 월급에서 나가요. 연락 없이 이사를 가거나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저희들이 손해를 보게 되죠. 다음 달 교재가 이 달 10일에 나오는 식이에요. 이번 달 10일 이전에 그만하겠다고 말해야 하죠. 상담할 때 미리 말을 해도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어요. 고의로 그러는 것 같은 어머님도 계시죠. 선생이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다거나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안 나오거나 하면...”

‘일방적 중지 통보’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사은품을 받기 위해 학습지를 갈아타는 케이스도 있다.

“영업도 하고 수업도 해야 하는 게 힘들죠. 1과목만 줄이는 게 아니라 몇 과목씩 하던 애가 그만두면 그야말로 ‘왕 우울’이에요.”

선생들이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팀장, 지국장 월급이 깎인다. 지국장은 팀장을 불러 교육을 시키고 팀장은 교사들을 불러 잔소리를 하는 연쇄 구조. 지국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다. 드물게는 ‘가라’로 회원 수를 늘려서 선생하고 지국이 반반씩 부담하기도 한다고.

성 선생님은 언제 보람을 느낄까.

“한글을 알게 돼서 못했던 발음을 하고, 조금씩 책 읽는 모습 보면 행복해요. 수업을 재미있게 하고 애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엄마들도 알아주죠.”

하지만 이걸 계속 할까 말까 고민도 많다. “방과후가 잘 돼있고 돌봄교실도 있어서 아이들이 점점 줄거든요.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늘어나니 (자가 부담과 회원모집 등이 염려돼) 그만두는 선생도 많고요. 적게 일하고 적게 벌자고 마음먹을 수 없는 게, 회사에서 압박을 하고 책임을 물으니까요. 그런 스트레스만 없다면 좀 더 다닐 텐데...”

“제가 당한(?) 건 아닌데 아까 손녀 얼굴을 왜 함부로 찍느냐, 전자파 해롭다고 말했다는 할머니 있잖아요. 그날 밤, 아니 새벽 5시에 메시지를 보내 ‘이번만 봐주겠다. 한 달 더 하는 거 지켜보겠다’고 했대요. 정말 괴물 아닌가요?”

 

[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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