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세속적인 인간이 우주의 성스러운 존재를 찾아 나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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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세속적인 인간이 우주의 성스러운 존재를 찾아 나서는 길"
  • 이희환 기자
  • 승인 2015.02.06 0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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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시집 [E 입국장, 12번 출구] 출간한 정민나 시인

산 멀리 바다 멀리 길을 켜 놓으면 넓은 설원을 지나가는 청어떼 항구도시 오오타루

구름을 꺼버리면 눈총도 직선적이라 이곳 창가에서 황야지대까지 아키다 코인 같은 경치는 숨쉬기 단조로워

슬리퍼 신고 한밤을 오갈 때는 기온차가 커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삿뽀로 맥주 삿뽀로 건포도

삿뽀로 난타 같은 눈 눈…… 눈의 뒷골목을 열면 주름이 다 펴지도록 하염없는 발자국……

한 사흘 눈사람으로 살아 보려면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해요 한 칸 다다미 맛있든 싱겁든 네비게이션은 길만 켜 놓으면 가라고 하니까

맛을 음미해서 먹는 거죠 손가락 마디만큼 이것이 침묵이다 하고 그 고봉밥을 다 먹는 거예요

설경은 쌓이고 쌓여 옥수수 옆에 옥수수 천마 옆에 천마 가방 안에 한 모금 피로 회복제 챙겨 넣고

그 길에 서면 부엉이도 고양이도 안 자고 카스미저택 닌자쇼처럼

밤새 눈이 내려요

― 「E 입국장, 12번 출구」전문


인천에 시작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 정민나 시인이 두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2003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만 12년만에 두번째 시집을 낸 것이다. 다소 늦에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해 불혹 어름에서 첫 시집을 냈던 정 시인이 지천명의 나이를 살아가면서 펴낸 두번째 시집이다.

그러나 시집을 읽어보노라면 50대 여성시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중후한(?) 시세계와 달리 여전히 감성이 푸른 시세계를 보여준다는 평이다.

최근 국정교과서에 시인의 시 「길이 된 섬」이 수록돼 주목을 받기도 한 정민나 시인의 두번째 시집 제목은 [E 입국장, 12번 출구]이다. 이 시집은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에게 어떤 감성의 신세계로 안내할 것인가.

정민나 시인과 이번 시집의 시세계와 근황에 대해 이메일로 소식을 나눠봤다.
 

- 이번에 출간한 시집이 두번째 시집인데요. 만 12년만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신 것 같습니다. 시집이 뜸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이 번에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도에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2003년도 [꿈꾸는 애벌레]를 첫 시집으로 내고 한동안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첫 시집에 대한 애착을 가질만한 시간이 없었는데 최근, 국정교과서에 「길이 된 섬」이라는 시 한편이 실리는 것을 계기로 다시 시를 자식처럼 끌어당겨 애지중지 살펴보고 있습니다.(웃음)

 

- 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시고 이번에 현대시학사에서 시집을 내셨으니 고향에 돌아오신 느낌일 것 같습니다. 인천과의 인연도 깊으시죠?

[현대시학]이 모지(母誌)이므로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은 물론 결혼도 인천에서 해서 줄곧 살고 있는 도시죠.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인천에 뿌리를 두고 달려 왔기에 저에게는 고향과 다름 없습니다. 인천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인천작가회의 사무국 등의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인천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창작 글쓰기 강의를 담당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 시집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E 입국장, 12번 출구」가 시의 제목이기도 한데, 어떤 의미로 표제로 삼으셨는지요?

얼마 전에 라디오 DJ가 숫자 '12'에 덧붙인 여러가지 재미있는 의미를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기독교의 12제자와 불교에서 싯달다의 핵심 12제자, 올림프스의 12신 외에 3×4=12의 숫자 3은 신을 의미하고 4는 '인간'을 의미하는 수 개념 등 그것들은 모두 세속적 대상과 성스러운 존재가 화합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 대다수였습니다.

물론 저의 시 '12번 출구'가 그런 의미들을 전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닙니다만 '12번 출구'는 사실 일본 훗카이도 설국으로 통하는 출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직도 많은 일을 벌입니다. 그러나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몸이 지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학기 일을 마치면 일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듯 여행을 갑니다. 세속적인 인간이 우주의 성스러운 존재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일본 삿보르 지역은 정말 눈이 많이 오는 곳입니다. 신이 산다면 그런 곳에 살지 않을까 싶을 만큼 하얀 설국이 펼쳐지는데 그 곳에서 신을 만난 것처럼 제 시집의 숫자 '12'는 신성함을 뜻하는 신비의 숫자가 되었습니다. (웃음)

 

- "세속적인 인간이 우주의 성스러운 존재를 찾아 가서는 것"이 곧 시의 길이기도 하겠군요. 이번 시집을 통해 주로 담으려고 한 시적 정서는 무엇인가요?

저는 시업도 공부도 늦게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시 쓰기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기왕이면 최근의 문물과 정서를 받아들이자. 삶의 존재에 대한 통찰도 이왕이면 활달한 언어 구사로 하고, 발칙한 감각으로 개성껏 표현하자. 그러나 살아온 연륜도 있으니 과장된 이미지나 허장성세를 피하고 일상의 미세한 부분을 경직되지 않은 내면적 사고의 흐름에 맡기자. 자연스러운 상상력으로 신선한 시를 쓰자. 온갖 좋은 내용을 가져와 나름대로 아우트라인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니 오히려 시 쓰기가 수월해졌습니다.
 

- 발문을 쓴 전해수 문학평론가는 ‘긍휼의 시 쓰기’라고 표현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시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긍휼의 시 쓰기'는 아마 제 연배의 시인들에게 해당될 법합니다. 몸적인 삶과 마음적인 삶의 일치가 안 되고 부조화일 때 그 사이에서 현실을 구체화하고 삶의 음영을 관조하는 시는 필연적으로 이런 이미지나 정서가 배여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인천작가회의에서 여러 시인, 작가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시고, 또 인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에 몸담고 공부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세계를 계속 탐구해나가시겠습니까?

학교에서는 근현대를 아우르는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 쓰기는 계속해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시시때때로 의식과 무의식을 멀리 내보내 자유로운 호흡을 해야 할 시인이 공부를 하다 보면 치밀하게 파고 들어야 하는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해 균형을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저에게 공부도 일상도 문학으로 채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문학정신 하나 만큼은 아직도 반짝인다고 자부합니다. (웃음)

 

- 끝으로 인천이란 도시에 대해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지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인천에서는 대학이나 제도권 밖에서 소외된 시민들을 위한 문화와 문학 아카데미가 열려져 있었습니다. 문학의 인접 장르인 예술과 철학 등과의 연대로 상호 소통하는 강좌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천의 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에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에서 이루어지던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지원이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실질적인 것이 필요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시민들의 삶의 정서를 개발하고 시대 정신을 일깨워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가끔 저희 [인천in] 지면에도 문화컬럼이나 반짝이는 감성의 시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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