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이 아름다운 월미산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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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이 아름다운 월미산전망대
  • 이창희 시민기자
  • 승인 2015.03.2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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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전망대, 올림픽 성화봉 닮아


 
월미도는 1900년대 초까지 부천시 영종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9월 1일 인천부에 편입되었다. 원래는 인천역에서 서쪽으로 1km 거리에 있는 면적 0.66㎢의 섬이었으나, 1920년대 초 돌축대를 쌓아 내륙과 연결되면서 세관검역소·측후소·무선전신국을 비롯한 각종 기관들이 들어섰다.

현재 해안도로에는 놀이시설과 유흥시설이 늘어서 있으며, 1987년 7월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래 문화예술 공연과 월미축제 등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현재 소월미도와 함께 인천 내항(內港) 북서쪽의 방파제 구실을 하는 이 섬은 역사적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1895년 영국 순양함이 월미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군인 448명이 익사한 사건이 있었으며, 1904년 2월 9일 소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전함이 일본 전함과 부딪쳐 침몰하면서 러일전쟁의 발단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인천항의 개항 전후로는 외세의 각축으로 수난을 겪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한때 군사기지로 이용되었다.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지였으며, 1950년 이후 오랫동안 국제연합군이 주둔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인천 앞바다에 정박했던 프랑스 함대의 대장 이름을 따서 한때 외국 지도에 로즈섬(Rose Island)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1895년에는 영국 순양함이 월미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군인 448명이 익사했던 사건이 있었다. 1904년에는 소월미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전함이 일본전함과 부딪쳐 침몰하면서, 러일전쟁의 발단을 일으킨 역사적 장소로도 유명하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연합사령부 집중 포화로 벚꽃놀이를 할 만큼 무성했단 숲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산높이 마저 깎여 내릴 만큼 포화를 맞았던 장소라고 한다.

월미도 면적은 자유공원의 9배 크기다. 월미특구 중심에는 해발 108m의 산이 있으며, 그 주위에 이민사박물관과 한국전통마을 등이 들어서 그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기도 하다.



그 중 월미전망대는 월미산 정상에 위치한 높이 23.75m로서, 멀리서 보면 종이컵에 촛불을 붙인 형상 또는 올림픽봉화 횃불 형상과 같아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축물이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천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부른다.

특히 저녁무렵 원형계단을 올라 전망대 꼭대기에서 서해를 바라보면서 노을을 감상하는 장면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치다.

또 야간에 형형색색 바뀌어가면서 빛을 발하는 경치는 오색무지개가 옷을 갈아입고 뽐내는 장면과 흡사하다. 연인들이 월미전망대 정상에 올라 "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최근 연인들이 많이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야간에 전망대까지 접근하기 위하여 으스스한 숲속길 구간을 힘겹게 찾아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정상부근에 주차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한 자전거 접근도 금지하고 있어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올라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월미전망대 하부도로에 대형주차장을 만들고, 전망대까지 직선으로 오를 수 있는 계단식도로를 설치하면 관광객들이 더욱 쉽게 월미전망대까지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민기자 이창희 lee90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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